진부한 와인과 위스키는 안녕, 지금은 소주와 테킬라의 시대
소주값이 금값이라고, 제일 싼 가격은 5천원, 심하게는 7천원까지 달하고 있다. 술자리를 위해서는 지인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 ‘n빵’을 해야한다. 물가가 도무지 잡히지 않는 시점에서 이제는 소주도 ‘서민의 술’이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아야 할 것 같다.
그렇지만 세상이 아무리 살기 어려워진다 해도 즐거움까지 포기하기에는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듯, 술을 잔 당 1000원씩 판매하는 ‘잔술 판매’도 도입되었다. 꼭 만취하지 않더라도 음식을 안주삼아 기분 좋은 쓴맛으로 함께하는 기쁨 만큼은 허락해주고 있다.
굳이 이렇게까지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인지 의문에 휩싸인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진또배기 전통식 소주는 한 두번의 증류를 통해 원료의 풍미가 느껴져 술을 음미할 수 있는 반면에, 처음처럼과 참이슬 같은 희석식 소주는 그러기 힘들다. 알코올과 물을 섞어 만들고, 연속적인 증류로 알코올 냄새만 남고 풍미는 사라지고 없다. 그저 화학품을 마시는 느낌만 날 뿐이다. 게다가 소주를 연상하면 우울하고 부정적인 상황 속에서 깡소주를 들이 붓는 이미지가 상징적이니 소주 자체가 긍정적인 인상을 주진 않는다.
소주가 좋지 않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 쾌락 때문일까.
최근들어 소주는 색다른 모습으로 많은 탈바꿈이 일어나고 있다. 편의점 진열대를 보면 오리지널 소주보다 맛이 가미된 소주들이 더 눈에 띌 정도다. 단지 ‘취하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하기에는 즐기기 위한 소주들이 너무나 많다. 크고 작은 소주 팝업도 열리면서 소주 한 잔이 즐거운 파티 분위기를 형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빠르게 취하기 위한 역한 술이었지만, 지금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술이 되어가고 있다. 특히 경제력이 부족한 20대에게는 아직까지 다른 술들보다 소주가 장벽이 낮다. 술에 특이 취향이 있지 않은 이상은 대부분 소주를 찾다보니 소주는 어느새 청춘들을 위한 술이 되었다. 젊은 사람들의 손길이 닿는 소주는 그들과 더 가까워지기 위해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이 시도들은 ‘취한다’는 행위가 단순히 망각만을 지칭하지 않도록 한다. 소주를 통해서 음식, 공간, 사람을 즐긴다는 문화적인 수단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멕시코의 증류주, 테킬라도 소주와 비슷한 흐름을 겪고있다. 데킬라는 저렴한 술로써 취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다. 원샷으로 한번에 훅 가는 테킬라는 사람들에게 ‘독주’였다. 그래서 노동의 고통을 한번에 잊기 위해 멕시코 노동자들은 늘 테킬라를 찾았다. 마치 <기생충>에서 기정이가 박사장집에서 Patron 테킬라를 원샷하는 장면처럼. 비록 그 독한 테킬라를 원샷하는 모습은 아찔하게 느껴지지만, 기정이의 테킬라를 소주라고 생각하면, 주변에서 흔히 병나발을 부는 모습과 겹쳐보인다. 멕시코의 테킬라와 한국의 소주, 서민들이 힘든 현실을 잠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술이라는 점이 서로 닮았다.
힘든 현실에서 음미는 커녕, 술꾼들에게도 장벽이 높은 술이었던 테킬라. 이제는 위스키, 와인을 제치고 사람들의 술잔을 차지하고 있다. 소주가 청춘들에게 즐기는 술이 된 것처럼 테킬라도 점차 대중들에게 사랑을 얻고 있다.
올해 초 국내를 뜨겁게 달궜던 캔달 제너의 818 테킬라. 캔달 제너는 테킬라에 진심인 만큼 818 테킬라도 숙성법에 심혈을 기울여서 깊은 풍미로 탄생시켰다. 단순히 브랜드 홍보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맛과 품질을 위해 4년을 걸쳐 818 테킬라를 완성해냈다. 풍미에다가 그녀의 무드와 센스가 더해져서 818 테킬라는 감각적이고 고급진 브랜드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0 세계 테킬라 어워드’에 익명으로 참가해 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테킬라에 진심인 그녀. 누구보다 테킬라가 대중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받길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818 테킬라의 인기는 그녀의 애정에 보답 하였다. ‘테킬라와 키스’를 하며 818를 제대로 음미하는 방법과 칵테일을 선보인 점도 테킬라 인기에 한 몫했다. 원샷에 훅 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다양한 음용법으로 활용될 수 있는 테킬라의 특징을 살려서 본연의 매력을 알리는 데 성공했다.
아가베 선인장으로 만들어지는 테킬라. 가시가 돋아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원료처럼 테킬라도 시도하는 것 조차 부담스러운 술이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음용법들이 소개되고 시도되면서 테킬라에 대한 편견은 서서히 깨지고 있다.
말만 들어도 울렁거렸던 소주와 테킬라, 즐기는 술로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는 점이 일맥상통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소주와 테킬라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일까?
술을 마실 때 우리는 여러 요건들을 생각한다. 어떤 술을 마시고 싶고, 어떤 술집에 가고 싶으며, 어떤 사람들과 함께하는지 고려한다. 이국적인 파티 분위기를 원한다면 이태원 바를 선택할 것이고, 시끌벅적한 젊음을 느끼고 싶다면 홍대를 선택할 것이다. 그렇게 최상의 술자리를 위한 선택지들을 마련한다.
저마다의 선택지들은 너무나도 다양하지만, 결국 모두 무드와 직결된다. 그 날의 분위기와 태도, 감정에 따라서 먹고 싶은 술들, 가고 싶은 술집,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달라진다. 그렇게 우리는 관심 있는 이성과 더 가까워 지기 위해 분위기 좋은 이태원 바를 서칭하거나 친한 친구들과 정신없는 번화가에서 시끌벅적 즐길 술집들을 찾는다.
아마 지금 시점에 비유하자면, 밤공기가 달라진 늦여름, 분위기에 젖을 수 있는 바, 적절한 에너지를 함께 나눌 사람들, 이 조건들에 부합한 술자리를 한번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적절한 에너지와 분위기에 젖을 수 있는 녹사평의 한 재즈바를 방문해 통통 튀는 재즈 음악과 잘 어울리는 상큼한 마가리타 한 잔을 기울인다면, 바랬던 감성대로 모든 감각들이 극대화된다.
자신의 무드와 술집의 무드, 심지어 술의 무드까지 3단계가 모두 들어맞는 순간 ‘술이 달다’라는 말이 절로 입밖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자신의 감정에 최적화된 술과 그 술을 가지고 있는 공간을 찾는 것, 그것이 완벽한 술자리를 위한 핵심이다.
소주와 테킬라는 어떠한 상황에도 그 자리를 최고의 술자리로 만들어줄 수 있다. 일단 이들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소주는 저렴한 술로 이미 인식이 되어있지만, 양주인 테킬라는 소주만큼은 아니더라도 다른 양주들에 비해서 저렴하다. 그래서 음용법이 다채롭고 활용할 수 있는 범위가 넓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직접 커스텀을 하여 본인에게 맞는 술을 제작할 수 있고,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레시피를 따라만 해도 맛있는 술로 둔갑시킬 수 있다. 싸기 때문에 고급진 술을 마음껏 흉내내는 것도 가능하다.
다른 종류의 술들에 비해서 자유도가 높다. 자체의 풍미를 즐길 수 있는 와인과 위스키가 점차 이들에게 밀리고 있는 이유도 이 부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와인과 위스키는 클래식한 주류라서 진부하고 제한적으로 느껴진다.
당장 미쉐린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복장이 캐주얼하면 입구컷을 당하게 된다. 바에서 위스키나 와인잔을 들기 위해서는 우선 마음가짐부터 달라져야 하고, 복장과 지갑사정 모든 것을 고려해야하는데, 그에 비해 소주와 테킬라는 어떤 상황이든 자유롭게 취할 수 있다. 음용법에서도 차이가 드러난다. 과거에는 역한 술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무한한 변신이 가능한 술이 되었다. 우리가 원하는 무드로 이들을 연출할 수 있고, 술자리도 이에 맞게 구성할 수 있다. 취하려고 마시는 술들이 오히려 분위기에 취하도록 하는 주인공이 된 것이다.
술, 당연히 우리에게 건강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잔을 기울이는 이유는 어쩌면 무엇보다 우리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한 술들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국도 2002년에 비슷한 현상을 겪었다. 바로 월드컵 베이비들의 탄생이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월드컵에서 4강의 기적을 겪은 그 상황에서 치열한 응원끝에 얻어낸 감동과 흥분은 많은 사람들의 건배를 이끌어냈다. 그리고 그 건배들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들로 이어졌다.
술은 우리의 감정에 늘 함께한다. 흥이 넘칠 땐 상큼한 주스나 리큐르를, 심적으로 고요할 땐 그 자체의 쓴맛을 느끼거나 커피나 잔잔한 향을 곁들여 마신다. 적당한 알딸딸함과 나의 감정이 깃든 맛이 목을 넘길 때, 그 감정은 어느때보다 솔직해진다. 감정을 삼키며 살아가야하는 순간들 속에서 술잔을 채우는 순간만큼은 무장해제가 가능해진다. 물론 민폐를 끼치는 순간 그것은 낭만이 아니라 진상짓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무드에 흠뻑 젖어 한껏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술은 가끔씩 필요하다. 그리고 소주와 테킬라가 그런 존재다.
늦여름 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신나는 분위기를 원할 때, 마가리타와 팔로마를.
Magarita
테킬라와 라임주스, 오렌지 리큐어의 트리플 섹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마가리타는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특징이다. 잔의 가장자리에 소금을 뿌려 마시는 게 가장 클래식하지만, 딸기와 망고 향을 곁들여 다양한 맛을 표현하기도 한다.
팔로마는 테킬라와 자몽 소다, 라임 주스와 소금으로 만들어진다. 마가리타와는 또 다른 달콤, 상큼을 지닌다. 라임과 소금을 첨가해서 더욱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센치하면서도 잔잔한 기분에 빠지고 싶을 때엔 차분한 테킬라 아포가토와 카페 테킬라가 제격.
테킬라, 바닐라 아이스크림, 에스프레소, 초콜릿 시럽으로 구성되는 술. 카페에서 마시는 아포카토에 테킬라가 들어갔다고 보면 된다. 바닐라 아이스크림 위에 뜨거운 에스프레소와 테킬라를 붓고 초콜릿 시럽으로 장식하면 완성. 커피와 테킬라가 아이스크림과 어우러져 풍부하고 달달한 맛을 느낄 수 있다.
테킬라, 에스프레소 또는 진한 커피로도 대체 가능하며 커피 리큐어 (깔루아 등) , 설탕을 넣은 커피 칵테일이다. 에스프레소만의 쌉쌀한 맛에 테킬라와 커피 리큐어로 더욱 커피의 진한 맛을 느낄 수 있다. 쓴 맛에 약하다면 설탕이나 시럽으로 당도를 조절해 기호에 맞게 즐길 수 있다.
헤비하지 않은 낮술을 은은하게 즐기고 싶을 때, 블루레몬에이드 밀키스주와 레몬주와 함께.
소주4, 밀키스3, 블루레몬에이드3 비율로 섞으면 된다. 편의점 뽕따 그 자체의 맛이다. 초반에는 달달하지만 칵테일스럽게 끝맛에는 소주의 쓴맛이 살짝 느껴지는 소주 칵테일. 취하고 싶은 정도에 따라서 소주의 비율을 조절하면 된다.
소주4, 레몬맛 탄산음료6 으로 구성해주면 완성.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아무 레몬 음료나 상관없다. 맛은 토닉보다 더 달콤한 맛이다. 달달한 술을 원할 때 편의점을 찾으면 금방 만들 수 있다. 스파클링 레몬음료를 기분 좋은 알딸딸함으로 즐기고 싶다면 레몬주를 말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