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惟 - 네 가지 생각에 관하여
이번 ‘四惟 - 네 가지 생각에 관하여’의 주제는 ‘3.1 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1919년, 일제에 의해 식민지가 되고 강압적 무단통치 아래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낸 후 일어난 3.1 운동은 후일 임시정부 수립 등에 영향을 준, 우리나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굉장한 사건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될 정도로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가 특별합니다. 국경일로 지정되어 매해 3월 1일에 기념식을 비롯한 여러 행사가 열렸지만, 특별히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는 3.1 운동 외에도 그 이후 임시정부의 수립 과정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으며, 그만큼 다채로운 콘텐츠나 행사로 그때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경험했던 관련 전시회, 책, 영화, 필사에 관한 네 가지의 생각을 하나씩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현대사를 다루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3.1 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회인 <대한독립 그날이 오면>을 2019년 첫 특별전으로 개최했다. 2월 28일에 전시회를 다녀왔는데 3.1 운동 100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건너편 광화문 광장은 기념식 행사 준비로 분주했고, 사방에 있는 거대한 빌딩에는 다양한 형태의 대형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평일이지만 많은 사람이 전시회를 보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 같았다. 전시회는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멀리 떨어져 있지는 않지만, 각각 다른 위치에서 전시하고 있으니 참고해서 다 돌아보면 좋을 것 같다.
1부 전시회 ‘1919년을 가슴에 품다’에서는 3.1 운동에 관한 다채로운 인물과 기록을 소개한다. 당시의 독립선언서, 3.1 운동 당시 체포된 이들의 모두 기각된 항소심 판결문 등의 문서들이 전시되어 있고, 다음으로 3.1 운동 이후 다양한 길로 나아간 사람들의 내력을 소개하고 그들이 남긴 유품 등을 전시하는 자리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에서 3.1 운동은 모두에게 잊기 어려운 날이었다고 말한다.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함께 목소리를 높였던 자리였지만 이후에는 그만큼 많은 갈래의 길로 각자 나아갔다. 전시회가 담아낸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생각보다 더 다양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학 중 만세 소식을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던 이야기, 제정 복원을 꿈꾸며 황제를 다시 추대하려 한 이야기, 3.1 운동에 참여했지만 후에 친일에 앞장선 이야기 등이었다. 그런 와중에 잘 몰랐던, 새롭게 주목할 수 있었던 인물들과 그에 따른 평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어서 신선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정당함과 저항, 참여의 상징이 된 3.1 운동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되새기는 전시로 1부는 마무리된다. 앞서 소개했던 대한민국 헌법 전문도 있으니 참고해서 보면 좋을 것 같다.
2부 ‘임시정부 사람들 조국을 그리다’에서는 3.1 운동 이후 세워진 임시정부에 주목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가장 많이 알려진 무대인 상하이에서의 생활부터 마지막 무대인 충칭에 이르기까지, 27년간의 그들의 일상에 주목해서 볼 수 있었던 전시였다. 임시정부의 조직이나 그 안에서의 주요 사건 등은 역사 교과를 통해 많이 배우지만 그곳에 펼쳐진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았다. 특히 눈길이 갔던 것은 건국훈장 수여자 목록에 있는 조지 루이스 쇼(George Lewis Shaw, 1880~1943)를 비롯해 그 외에도 정말 많은 외국인이 임시정부에 도움을 준 내용과 그저 발행했다는 내용만 알았던 독립신문에 관한 내용이었다. 특히 독립신문 기자가 임시정부 사람들과 한인들에게 바른말로 일침을 가한 칼럼인 [군소리]에 대한 이야기는 특히 인상에 남았다. 많은 이들의 간절함을 담은 독립운동인 만큼 당연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바른말을 할 사람이 필요했을 것이다.
3부 ‘고향, 꿈을 꾸다’에서는 삶의 터전을 국외로 옮겨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흔적, 후손들의 이야기를 담은 김동우 사진작가의 사진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는 중국부터 미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인도, 멕시코, 쿠바에 이르기까지 정말 곳곳에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었고 그들의 후손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사진에 나온 장소들을 보며 나중에 이 근처를 여행한다면 들러 보아도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진 전시 등을 통해 조국과의 거리가 멀다고 해서 그들의 독립운동을 위한 열정을 기억하고 바라보는 우리의 관심이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4월 13일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고, 전시회는 9월까지 열리는 만큼 많은 사람이 전시를 통해 기억하고 돌아보는 시간, 새롭게 배우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국가기록원, 3.1 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전시 기간: 2.22 ~ 9.15
관람 시간: 오전 10시 ~ 오후 6시
관람료: 무료
창비에서는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김소월, 한용운, 이육사, 윤동주, 이상화 시인의 시집을 담은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를 출간했다. 당시의 느낌을 살리고자 노력했다고 한다. 다섯 시인은 워낙 유명하기에 한 번쯤 들어본 시가 적지 않다. 그러나 다섯 시인의 시집을 모두 다 읽어본 것은 아니기에 한 번에 읽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각 시인의 시집을 한 권씩 읽는 것과 이렇게 모음 형식의 시집을 읽는 것은 각자마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 시인의 시를 담은 시집은 온전히 그 시인의 생각과 세계에 깊이 녹아들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된다고 본다. 그리고 이 책처럼 여러 시인의 시집을 한 권에 담아낸 책은 ‘생각의 연장선’을 놓아준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한 시인에서 다른 시인으로 시집이 이어지면서 시상도 이어지거나, 비슷한 시상도 다르게 보는 등 더 다채로운 관점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독립에 대한 열망, 봄, 가을 등을 주제로 해도 시인마다 다른 표현의 특징을 눈여겨볼 수도 있고 이러한 다채로운 관점에 물들며 우리의 정서와 생각도 더욱더 풍요로워지는 것 같아서 좋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한용운의 <님의 침묵>, 윤동주의 <서시> 등 대표적이고 익숙한 시들도 반갑게 보았고 김소월의 <여름의 달밤>, 윤동주의 <눈 오는 지도> 등 새롭게 알게 된 좋은 시에도 주목할 수 있는 계기였다. 펜 끝에서 아름다운 표현으로 녹여낸 시들을 읽으며 마음의 양식을 채우고 그들의 꺾을 수 없던 독립 의지를 기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스포일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 2월 27일에 개봉한 ‘항거: 유관순 이야기’는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중 한 분인 유관순 열사에 관한 영화이다.
유관순 열사를 연기한 배우 고아성 씨가 유관순 열사가 겪은 참혹한 현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 내면과 정신에 대해서는 정말 알지 못했다는 것, 독립운동가분들이 죽음보다 삶으로 기억되는 그런 인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인터뷰한 기사를 보았는데 그분들이 내면과 삶을 들여다보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가 될 것 같았다.
먼저 영화 배경은 만세 운동 이후의 서대문 감옥이다.
영화에서 계절의 변화 등을 표현하며 서대문 감옥을 보여준다. 대개 감옥을 아래에서 위로 보는 시선으로 담았는데 차단, 한계, 이런 이미지가 근대화된 것을 보여준다고도 생각했다. 영화의 대사에서도 종종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일제는 문명국의 입장인 자신들이 조선에 베푼다는 태도, 근대화된 사법제도 속 정당한 절차 등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논리가 결국은 지배 정당화, 조선은 많은 것이 부족하니 일본이 근대화를 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지곤 한다. 하지만 감옥 안의 실상은 그것이 허울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잔혹하고 비윤리적인 행태들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았다. 감옥은 테두리만 근대화인 공간, 그리고 그 껍데기 뒤의 실상을 강조하며 그것을 밖에서도 못 보도록 하는 동시에 안에서도 드러내지 않으려는 모습을 담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 나오는 감옥은 실로 폐쇄적이다. 굳게 잠긴 큰 문, 감시하는 데에 쓰이는 작은 구멍, 벽 쪽의 작은 창살만이 존재한다. 그 창살 사이로 보이는 밤하늘을 담은 장면이 잠깐 지나가는데 영화 <동주>에서 보던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라는 시구가 나오는 장면과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를 연기한 고아성 배우의 연기도 매우 인상 깊었다. 앞서 언급한 소감도 기억에 남았는데 영화에서 고문으로 몸과 마음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지만 빛나고 생생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열사의 강함을 잘 표현한 것 같았다.
유관순 열사를 고문한 정춘영이라는 인물에게도 주목했다. 친일 행각을 보이는 인물이지만 그 행각이 어딘지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모양새다. 마음속 바닥에는 죄책감이 조금은 남아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게 한다. 자기 손에 피를 묻히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상관의 고문 명령에 우물쭈물하다가 실행에 옮기고, 영화 후반부에 상상 이상의 잔인하고 참혹한 폭력으로 피가 흥건한 채로 쓰러진 유관순 열사의 주변을 치우라는 명령을 받지만, 그는 도리어 아랫사람을 불러 치우라고 소리친다. 불편함에서 도망치려 한다. 그 순간만이 아니라 친일 행적이라는 꼬리표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일까. 어찌 되었건 친일과 무자비한 행동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고독과 유대 사이에 있는 이방인이다. 조선인과 일본인 사이 결국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감옥으로 들어와 일본 관리들에게서 주입되는 내용과 행동을 받아들이고 실행하는 것을 보고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루었던 악의 평범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했던 인물. 엔딩에도 잠깐 언급되는 이 인물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스크린에서 확인하자.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가장 주목하게 했던 것은 앞서 언급한 소감에서도 언급되었던 부분인 그분들의 내면과 삶의 모습들이었다. 종종 독립운동가분들의 영웅적인 순간에만 주목하기 쉽다. 만세에 앞장서고, 폭탄을 던지고, 총을 쏘는 모습들…영화의 대사에도 나오듯 “내가 아니면 누가 합니까”로 대표되는,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영향을 가져오는 당당한 모습과 그것을 하게 했던 용기, 애국심, 독립을 향한 열망은 실로 엄청난 것이고, 그 이후 역사에 가져온 영향과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생각하면 충분히 존경받아야 하고 주목해야 한다. 그런데 한 발짝 더 나아가 생각해볼 점은 그분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어떤 행적이나 성격 같은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는 입체적 존재이다. 그분들의 삶에 있어서 독립운동 행적이 가장 영향이 컸고, 용기 있고 존경을 받을 내용이기에 마땅히 주목해야 하지만 그 행적만이 아니라 그분들의 내면이나 삶의 맥락에 관한 관심의 시선이 부족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수 있었다. “독립운동가분들도 우리처럼 고뇌나 고통이 없고, 일상에 대한 고민이 없고, 작은 소원 하나가 없었을까?”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그러한 점을 균형 있게 대사나 행동으로나 잘 담아낸 것 같다.
3.1 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는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1월에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를 펴냈다. 읽기가 조금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원본을 누구나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하려고 고친 것이다. 지난 3월 1일 3.1절 100주년 기념식에서도 이를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어 최근에는 ‘독립선언서 필사 챌린지’라고 하는 캠페인 역시 이루어지고 있다. 이처럼 독립선언서를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역사에 관심은 많았지만, 독립선언서 전문을 적어본 적은 없었기에 이번 필사가 문장을 곱씹으며 기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활동이 될 것 같아서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담아 적어보았다.
문장을 하나씩 읽고 쓰다 보니 3.1 운동에 대해 눈을 뜨게 되는 기분이었다. 이 운동이 어떠한 성격을 가졌고, 우리의 의사를 어떻게 표현했는지 말이다. 비록 선언서를 둘러싸고 다소 온건했다는 시각도 있고, 당시의 문맹률 등을 고려해 대중적 공감을 얻기에 어렵지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있으며, 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이 후일 친일의 길로 들어선 것에 대한 논란도 있지만, 이 독립선언서라는 텍스트 자체에 주목해서 이것이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보고, 100주년을 기념해 원문보다 어려움 없이 읽어볼 수 있는 만큼 많은 이들이 읽어보는 시간이 된다면 좋을 것 같다.
이렇게 네 가지 활동을 경험하고 생각해보니 과연 그 많은 사람이 각자 다양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신분제에 따른 차별의 잔재도 남아 있던 쉽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만세운동이라는 커다란 함의 아래 함께 일어설 수 있었을까? 에 대한 고민의 답을 조금은 얻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당함과 변화를 염원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정당한 권리와 처우가 보장되는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가 그 당시에는 일제의 억압에서 벗어나 독립하는 것, 그것이 가장 간절했고 우선이 되는 단계였다면 10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더 나은 사회로의 변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지 많이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또한, 만세운동이라는 커다란 함의 아래 존재했던, 많은 사람의 많은 생각에 주목해서 그것을 정확하게,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더 많은 인물의 손길을 주목하고 그분들의 단편적인 행적만이 아닌 삶과 내면까지도 다시금 돌아보고 기념할 수 있는 이번 100주년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