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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루워커 Jul 18. 2019

미식(美食)이란 무엇일까?

알아갈수록 깊어지는 맛의 세계

미식(美食)이란 무엇일까요?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미식가를 나누는 차이는 무엇일까요? 음식은 누구나 좋아하지만, 누구나 미식가로 불리지는 않습니다. 많이 먹거나 오래 먹거나 돈을 많이 들여서 먹어도 딱히 미식가라는 호칭으로 불리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미식가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기준이 있어서 그 항목을 충족시켜야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미식가 인증 협회 같은 단체가 있어서 자격을 부여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해결을 위해서는 먼저 미식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아봐야 하겠습니다.


 미식의 의미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한자로 구성된 ‘美食’이라는 단어는 핵심적인 힌트를 제공합니다. 한자어로 미식은 아름다울 미(美), 먹을 식(食)이 조합된 단어인데, '미'에는 맛있다, 경사스럽다, 즐기다, 기리다 등 여러 뜻이 함께 포함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미'는 양(羊)과 대(大)가 합성된 것으로 주로 설명되는데 '크게 살찐 양이 좋다.'라는 의미를 내포하여 재료의 모양새나 품질을 가늠하여 맛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뜻이라고 생각해볼 수가 있겠습니다.


 미식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았을 때도 단순히 먹는 행위 자체보다는 식품의 다각적인 관점과 충분한 이해도를 가지고 음식을 먹거나 만들거나 탐구하는 과정에 큰 비중을 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식[美食]


 1. 음식과 문화의 관계

 2.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접대하는 기술

 3. 특정 지역의 조리 방식 등에 관한 연구

 4. 좋은 음식. 또는 그런 음식을 먹음




 이 개념을 더 정확히 하기 위해서 ‘음식을 먹는 것’과 ‘음식을 탐구하는 것’의 개념을 일정 정도 분리해보았습니다.

 일단 ‘음식을 먹는다.’라는 것만 떼놓고 보면 이것은 누군가 노동과 자본을 투자해 만들어낸 최종 결과물을 서비스받는다는 의미와 같습니다. 재료 수급부터 저장, 관리, 가공, 서비스 등 음식이 먹는 사람에게 제공되기까지의 과정은 알지 못한 채 표면으로 드러난 음식의 맛과 향, 시각 질감, 소리 등 섭취 시 느껴지는 몸의 느낌만을 통해 음식을 감지하기에, 감각 이상의 음식에 대한 이해는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 최상의 재료와 기술자가 만든 요리를 먹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식품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없다면 맛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됩니다.


 음식에 들어간 재료나 가공 기술, 만든 사람의 철학 등, 식품의 총체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식품의 구성 요소들을 알고 식품을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야 합니다. 훑어보는 정도라도 생산의 과정을 알고 먹는 음식을 대하는 관점에 분명한 차이점을 보이게 되죠.


요리를 하면 맛을 더 잘 느끼게 된다!


  다들 많이 먹는 음식을 예를 들어본다면 냉면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침 시즌이기도 하죠. 냉면은 육수를 차갑게 식혀 제공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섬세한 향을 느끼기가 어렵고 식초나 겨자 등을 첨가하기 때문에 어떤 재료로 맛이 구성되어있는지 감지하기가 어려운 편입니다. 냉면 육수에 대한 지식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은 국물을 마시고 ‘시원하고 맛이 좋다.’, 또는 ‘더위가 싹 가시는 맛이다.’ 정도로 냉면을 음미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냉면의 육수는 보통 쇠고기 양지와 보리새우(혹은 멸치) 등의 건해산물을 기본으로 각종 채소를 넣어 육수를 만듭니다. 닭을 같이 넣어 담백한 맛을 내기도 하고, 사골을 넣어 진한 맛을 내는 육수도 있습니다. 말린 홍합, 바지락을 넣어 시원한 향을 내기도 합니다. 최근에 먹은 최*면이라는 곳은 식초 대신 레몬즙을 사용해 상큼한 느낌을 내는데 먹고 난 후에도 굉장히 깔끔하고 속이 편했습니다. 육수를 내본 사람은 복합적인 맛을 가진 육수라도 대략 어떤 재료를 주로 사용했는지 자동으로 느낄 수가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경험적 지식이 음식을 먹을 때 연상되어 더 다양한 맛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죠. 이것은 지식과 감각이 함께 작동하는 맛의 감지 기능입니다.


  사실 이는 육수 같은 복잡한 조리가 아닌 달걀 하나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수란은 뜨거운 물에 껍질을 제거한 달걀을 넣어 중탕하는 요리로 노른자는 최대한 익지 않되 흰자는 단단하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익혀야 하는 상당한 테크닉을 요구하는 조리 방법입니다.

  완벽하게 매끈한 표면을 가져 물풍선 같으면서도 살짝만 건드려도 터져 나올 것 같은 연두부 같은 질감을 가진 수란을 대접받았을 때 콩나물국밥에 달걀을 섞듯이 터트려 비비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수란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을 확률이 높습니다. 이런 완성도 높은 수란을 발견했다면 반으로 갈라 노른자가 어떻게 터져 나오는지 감상한 후 흰자에 베인 간을 느껴줘야 제대로 먹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당한 기술이 들어가는 음식이기 때문에 자동으로 관찰하게 됩니다.


  미식 활동을 한다는 것은 몸으로 느끼는 감각과 탐구한 지식을 결합하여 미각의 깊이를 한 차원 높이는 행동입니다. 지식을 통해 맛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알게 되면 ‘맛있다’, ‘진하다’, ‘달다’ 등으로 단순하게 느꼈던 감각들이 ‘해산물 육수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칠맛과 농축된 달달한 향기가 느껴진다.’와 같이 구체적인 맛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육수에 대한 지식을 얻거나 체험함으로써 냉면 육수 미식가가 된 것입니다. 달걀 하나를 먹어도 수란의 매끄러운 표면과 완벽하게 베인 간에 감탄할 수 있다면 달걀 미식가인 것입니다.


   저는 커피 로스팅을 직업으로 하고 있는데 이 분야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커피를 잘 모르는 사람은 쓰다, 부드럽다, 신맛이 난다 등의 표현 이상을 하기가 어렵고 맛을 느끼는 감각도 한정적으로 사용합니다. 저도 커피를 직업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맛이 쓰다, 쓰지 않다 정도의 맛 외에는 표현하지 못했고 맛을 느끼는 예민함도 그 이상을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직접 커피를 추출하고 생두를 가열하여 원두로 만드는 로스팅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커피의 맛과 향들을 점차 감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딸기향이 나는 커피도 있다.



   커피에는 상상도 못 했던 향기들이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스트로베리, 라즈베리, 블루베리 같은 베리류 과일, 오렌지, 자몽, 귤 등의 시트러스 류 과일, 라벤더, 로즈메리, 레몬그라스 같은 허브 계열의 향기, 심지어 삼(Ginseng)이나 몰트(Malt) 향도 있습니다. 기분상 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천연 재료에 존재하는 동일한 향 성분이 들어있기도 하고 향 간의 조합에 의해 비슷한 향이 나기도 합니다. 향 물질인 Diacetyl(C4 H6 O2)은 버터 향을 내고 beta-Damascenone(C13 H18 O)는 딸기향을 나게 하는데 이는 실제 버터와 베리류 과일에 들어 있는 천연 향 성분이면서, 커피에도 동일하게 포함된 물질입니다.


   미식을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합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고생스러울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얻게 되는 풍성한 맛의 경험은 고생을 자처하게 할 정도로 강렬합니다. 만일 미식을 위해 고생을 감내할 결심이 있다면 저는 커피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어떤 식품보다 다채로운 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커피이고 미세한 변수에 의해 완전히 다른 맛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직접 만들어볼 수 있고 엄청난 비용적 투자가 필요하지도 않은 것이 커피이죠.


    저도 아직 미식가란 무엇인지 명확한 답을 얻지는 못하였습니다. 어쩌면 평생 답이 없는 모호한 것일 수도 있고, 시대에 따라 변화를 가지는 개념일 수도 있습니다. 다만 알게 된 지식과 견해를 이곳을 통해 공유해 나가려 합니다. 이 글을 읽게 되는 분이 있다면 미식이란 어떤 것인지 스스로 찾은 답을, 혹은 생각하는 바를 공유해주신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ARK International 한누리




저서 '다 알려주는 커피 기술 Coffee Skill'

워커들을 위해 만듭니다 '트루워크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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