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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Feb 09. 2020

독일의 여론조사는 공정할까?

여론을 조장하는 자들이 싸운다

여론! 독일 관련 사례를 드는 신문기사나 정치인의 어젠다를 볼 때 자주 들었던 생각인데, 통계 자체가 방법에 따라서 약점이 천차만별이거니와 그 죄 없는(?) 통계를 입맛대로 고르고 뽑고 해서 주장에 끼워 맞추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점에 통탄하여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학문의 길을 좀 더 오래 걷게 된 건데, 이런 계기라면 계기를 동료에게 얘기했던 옛날에 굉장히 신선하다고 칭찬해준 기억이 생생하다. 칭찬인지 격려인지 모르겠지만 직업적 정체성이란 것이 있다면 한때는 그것이었던 것 같다. 


통계나, 경제학에서 보듯 경제적 문제의 원인이나 동향을 예측하기 위한 방법들은 현실을 상상 이상으로 단순화시켜야 작동하는, 아주 바보 같은 기계들과도 같다. 예를 들어 "인간은 항상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라든지 (특정 경제학파를 비판할 의도는 전혀 없다) 하는 것들을 "가정"이라고 쓰고 "사실상 비현실적인 시나리오"라고 읽는다. 그런데 이런 한계를 경제학의 문제, 혹은 통계의 문제라고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 혹자는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학자는 과학적 접근의 장단점을 배우고 다스려야 하는 자들이 아닌가? 통계는 죄가 없다. 경제학을 포함한, 일부분 사상적으로 남용되는 분석 방법들도 죄가 없다. 내가 컴퓨터로 멋진 나비를 창조해내지 못하면 컴퓨터를 탓할 건가? 학자까지 되어가지고 생명력도 없는 추상적 발상 결정체인 "분석방법론"을 탓할 오류를 의식적으로 범할리는 없다. 다양한 조미료를 위한 요리가 있듯이 적절히 사용해야 할 뿐이다. 우리에게는 조미료 배척이 아니라 재능 있고 위생관념 투철한 요리사가 필요하다. 


하여튼 통계를 사용하는 언론 등 의견 메이커들이나 결정권자들이 있다면 통계 자체를 제공하는 원천이 있다. 고로 연구기관이거나 연구업체일 텐데 여론조사도 그중에 속한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꽤나 제도화되어서 이름 대면 알만한 곳들이 많다. 신뢰할 자료를 거래하는 곳들이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들 간에 정치가 팽배하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오늘의 기사를 보면 당연히 그러겠거니 싶다. 


어쩌다가 절차적 신뢰와 결과의 정확성의 아이콘이 된 독일과 독일인. 엔지니어나 자동차, 시간 엄수와 근검절약 등으로 이미지가 일부 형성되어 있지만, 정치란 투쟁이기 때문에 정치가 섞이는 이상 어딜 가나 비슷한 것 같다.


2019년 10월 9일에 독일 정치인과 기자들에게 다소 별난 이메일이 보내졌다. 여론 조사 기관인 포르사가 새 통계자료를 발송하는 이메일 수신 목록을 통해서 전송됐기 때문에 별난 것이다. 이메일의 제목은 "헛소문, 가짜 뉴스, 그리도 조작"이었다. 내용은 새로운 통계가 아니라 경쟁자를 향한 분노와 질책이었다. 분야의 신생 기업인 씨비라는 업체가 "비과학적으로"일하며 "실증적 사회 연구가 힘겹게 일군 인정을 극도로 위협"한다는 내용이었다. 포르사의 사장인 귈너 교수가 직접 서명했다. 


본 이메일은 몇 달 전부터 불타오르는 갈등의 하이라이트였다. 여론 조사의 올바른 방법들에 대한 논쟁으로 시작됐다. 이것이 와전되어 명예 훼손과 익명 고발, 음해 캠페인, 스파이 의혹에까지 번져버렸다. 분야 전체의 정체성을 뒤흔드는 것이다. 


여론을 거래하는 사업은 수십 년 간 약 네 개의 저명한 기업들에 의해 영위돼왔다. 하지만 요즘은 온라인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하는 신생 기업들이 끼어들었다. 씨비는 그중 하나로서 2015년 창립된 스타트업이고 "설문조사의 개혁"을 선언했다. 전쟁 선언인 셈이다.     


귈너 교수는 이것이 여태껏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귈너 교수를 동베를린 본사에서 만났다. 그는 씨비에 대한 비판 이전에, 현재 사민당의 상황에 대한 사족을 건네며, 의원들이 당 대표들을 영 탐탁지 않아하는 것을 지인 의원에게 들었다고 알려준다. 그는 78세이지만 아직 주요 소식통이다. 씨비에 대한 이야기로 주제를 바꾸니 그는 장황한 반론을 시작한다. "나치 치하에는 여론 조사가 유대인의 과학으로 폄하되고 실증주의자들은 추방당했어요." 여론 조사는 2차 대전 후에 결국 국가의 "민주화 과정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고 그는 말을 잇는다. "그런 와중에 저런 사람들이 나타나서 일궈낸 걸 파괴했다고요." 


귈너 교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권력이나 시장 점유율이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가 문제라는 거다. 


베를린 정치계에서 귈너 교수는 빛나는 인물이다. 수십 년째 그는 독일의 가장 막강한 여론 연구자로 통하며 그만큼 본인의 소견도 무수히 발언해왔다. 몇 년 전 그는 독일이 "녹색 독재"의 위협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2017년 의회 선거 전에 그는 사민당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사민당 본부에 아예 연기를 피워서 다 몰아내야"한다고 언급했다. 


귈너 교수는 딱히 소극적인 사람인 적은 없던 것이다. 그런데 왜 지금 경쟁자를 공개적으로 공격하는 것일까? 


그의 비판에 의하면 씨비가 사용하는 방법들로는 과학적으로 제대로 된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씨비는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발굴하기에, 설문 응답자들은 주로 큰 뉴스 사이트를 타고 와서 설문에 응할지를 직접 결정한다. 귈너에 의하면 이런 방법은 궁극적으로 특정한 사람만 설문하게 되어, 영영 조절이 불가능한 불량 데이터를 창출한다. "씨비의 행실은 연구와는 더 이상 상관이 없습니다." 그의 말은 모든 여론 연구자의 기반을 향한다. 그들은 무분별한 임의 추출 견본을 통해 일반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 즉, 적은 수의 사람을 조사하여 전국에 대한 결론을 내는 것이다. 


5년 전 씨비의 창립 이래 국가 및 산업이 몇백 유로를 투자했다. 포르사 같은 기존 기관은 콜센터를 크게 운영해야 하고 설문 응답자들을 얻기 위해 노고를 감행해야 한다. 반면에 씨비는 경쟁사들보다 빠르고 저렴하기를 약속한다. 인터넷 상에서는 응답자들이 자발적으로 오기 때문이다. 


2017년 9월에 이미 귈너 교수는 씨비의 방법을 공개적으로 "아주 저급한 수단"이라고 힐난했다고 뮈쩨 양이 말한다. 뮈쩨 양은 29세이고 씨비의 경영인이다. 그때쯤에 공격이 시작했다고 그녀는 말한다. 


귈너는 씨비에 대해 "위험한 범죄자 집단"이라고 표현하고 언론 협회에 컴플레인을 걸고 씨비를 비난하는 이메일을 뉴스레터 수신자 목록을 통해 전송해댔다. 다른 경쟁사도 거부와 비판을 표해왔지만 포르사가 제일 공격적이었다고 뮈쩨 양은 말한다. 


2018년 봄에 방법론에 대한 논쟁이 음해 캠페인으로 번진다. 트위터에 익명 계정인 "씨비 워치"가 개설되고 자기소개란에 "씨비는 쓰레기 기관", "우리가 지켜본다"라고 적혔다. 목적은 한눈에 뻔하듯이 명예 훼손이다. 


이 계정은 그 이후로 1100개가 넘는 트윗을 올렸다. 뉘앙스는 항상 공격적이고 자주 모욕적이다. 씨비의 통계는 "가짜"거나 다른 기관에서 "훔친" 것들이고 경영진은 "거짓말"을 하며 "씨비의 고객은 대부분 씨비만큼 멍청하다". 


2018년 가을에 이 계정이 온라인 설문조사의 내부 화면을 첨부하며 거짓 비난을 올리자, 뮈쩨 양은 놀라게 된다. 누가 내부 데이터를 이 계정에게 전달했던 것일까? 그녀는 사내 전산 부서 전문인에게 추적을 부탁하고, 본 인터뷰 실행 중에 그중 한 명이 함께 앉아 있다. 그는 화면을 통해 어떻게 점차 혐의자를 파악할 수 있었는지 설명한다. 혐의자는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뮈쩨와 동료들은 그가 이전에 포르사에서도 일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씨비는 그를 해고하고 고발했다. 베를린 검찰은 범행을 확인했지만 공공의 피해가 적음에 따라 기소하지 않았다. 


해당 대학생을 만나기 위해 베를린 시내의 아파트를 방문했다. 그는 얘기할 때 불안해하고 범행의 여지를 열심히 반론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나중에 그는 연락을 해와 아무 발언도 인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귈너 교수에게 물어보니 그를 안다고 한다. 그는 포르사 콜센터에서 일했고 현재 직접 여론 조사 기관을 차렸다고 한다. "근무 태만 때문에 그를 해고했어요"라고 한다. 


하지만 뮈쩨 양에 따르면 이상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포르사 베를린 본부에서 씨비 웹사이트를 지속적으로 접속한 것으로 드러난다고 한다.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다. 주의회 선거 직전에만 해도 해당 설문조사에 몇 천 번 접속했다. 거의 5분마다 접속했던 시기도 있다. 밤에도 말이다. 뮈쩨는 이쯤 되면 씨비 사이트에 무엇이 있는지 감시하도록 자동 프로그램을 돌리고 있다고 파악한다. 


귈너는 이에 대해, 포르사 직원들이 경쟁사의 사이트를 읽을 수는 있다고 한다. 밤 중에도 5분마다 읽느냐니까, "우리 직원들이 언제 취침하는지 모른"다고 답한다. 그와 같이 온 부사장이 갑자기 처음 말을 꺼낸다: "그런 걸 일일이 신경 쓰는 건 직업병과 같죠. 체계적으로 감시하지는 않아요." 그는 말이 없다가 씨비의 감시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 갑자기 개입한다. 그의 이름은 티호프 씨다.


포르사 네트워크의 유저 중 한 명이 유난히 씨비 직원들의 눈에 띈다. 그는 "티이 씨이"라는 이메일 아이디로 로그인하여 사이트의 설문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읽는다. 아침에 사무실에서, 핸드폰으로, 퇴근 후 저녁에도. 300회 이상 접속하는 하루도 있다. 그의 동선은 전산 기록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티이 씨"는 씨비에 집착하는 걸로 보인다. 


이 의혹에 관련된 단서가 이 말고도 있기 때문에 (*생략함), 티호프 씨에게 그가 "티이 씨"인지 단도 입적으로 묻는다. 그는 부인한다. 실제로 독일에서 가장 저명한 여론 조사 기관 중 하나가 익명의 트위터 계정과 협업하여 경쟁사를 해치우려고 한다는 상상은 좀 지나친 것 같다. 귈너 교수는 황혼을 바라보고 있다. 알트마이어 총리실장은 그에 대해 "국가의 자산의 일부"라고 한 적 있다. 뭐하러 그의 명성을 이런 걸로 실추할 위험을 택할까? 


씨비에 대한 귈너의 비판은 일부 사회과학자들의 공감을 산다. 응답자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을 채택하는 설문조사는 신빙성이 없다고 여론 전공 교수들이 말한다. 반면 기존 기관들이 응답자 한 명을 얻기 위해 10명 이상의 대상에게 문의해야 하는 문제도 약점이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있다. 독일 경제 연구소의 연구자는 이에 대해 "당연히 비판 가능한 방법이지만 씨비는 본인의 방법에 대한 추가적 강화에 대해 혁신적이고 개방적이다"라고 말한다. 공통적으로 거의 모든 연구자들이 이 논쟁의 거친 뉘앙스에 대해 짜증을 표한다. 


귈너 교수를 오랜 시간 알아온 엘리트 정치인은 그에 대해, 그의 목적이 실증 사회 연구의 방법에 대한 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귈너는 정치가 하고 싶다." 다른 사람은 또 말하길 "귈너는 영향을 끼치고자 하고 그럴 때 다소 공격적으로 변할 수 있다"라고 한다. 귈너는 자신에 대해서 옛날에 슈뢰더 총리의 "주차 도우미"라고 표현했다. 슈뢰더는 "귈너는 사람들이 6주 후에 무슨 생각을 할지 오늘 말해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여론 연구자들은 관찰자이지만 컨설턴트기도 하여서, 분위기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부여하기도 한다. 그들은 연정을 끝내버릴 수도 있고 장관을 추락시킬 수 있다. 씨비에 의한 경쟁은 정통 여론 조사의 사업 모델뿐만 아니라 귈너 교수가 정치에 취하는 영향에 대한 위협 또한 가한다. 


귈너 교수는 여론 조사 의원회에 항고를 제출했다. 대표성에 대한 논쟁에 이어 씨비의 데이터 보호 정책에 대한 것이다. 씨비가 설문 조사와 마케팅을 뒤섞는다는 주장이다. 씨비는 이를 부인한다. 몇 주 후에 열리는 학화에서 뮈쩨 양과 귈너 교수는 한 무대에 같이 앉아 있을 것이다. 여론 조사의 미래에 대한 토론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들은 처음 만날 것이다.


흙탕물 싸움이다. 단서는 단서뿐이고 평판은 평판일 뿐이라 뭐라 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건 여론 조사 기관과 마찬가지로 교수도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본인의 평생의 업이 위협받으면 본성이 드러나는 것도 어느 인간이나 같을 것이다. 사람이란 참 일생에 짐을 많이도 업고 다니는 것 같다. 우리라고 별반 다를까. 하지만 어찌하리. 


"견제와 균형"이란 정치나 국제관계를 설명할 때 참 많이 등장하는 개념이자 슬로건 같은 건데, 이는 쉽게 말해서 인간이나 결정자나 그 어떤 고결한 전문인이나 제도적 국가 기관이라도 자신을 완벽히 통솔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에서 유래하는 최소한의 조치 같은 것이다. 내 왼손이 죄를 행할 때 오른손이 내일의 밥줄을 걱정하지 않고도 왼손을 칠 수 있는 조건들을 보장하고 유지하고 수시로 이행하는 것이다. 소위 철밥통이라고, 혹은 세금 무덤이라고 일컫는 모든 공직자 유형의 종사자들에게 일차적으로 해당되는 기능적 철칙이다. 그러니 종신을 누리는 교수도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이카루스가 추락한 이유가 있다. 사회 일원과 사회적 정책, 중요한 공공적 결정들이 달려있는 일을 할수록 개인은 아주 특정한 부분에서 겸허해야 한다. 그 사람의 성격이나, 인품이나, 겉으로 보이는 (혹은 "보이려" 내심 의도하는) 행실과는 또 완전 다른 부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인격의 마케팅에 너무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결혼하면 다 똑같다고 유경험자들이 그러던데, 혹은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똑같다는 말도 있는데, 우리가 중책을 위임하고 신뢰를 선사하는 공인이나 공직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사실 통계의 올바른 사용을 일일이 확인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연봉받으며 그것만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일반인이 도대체 그걸 왜 하고 앉아 있어야 하나. 그런 걸 잘하라고 공직자들을 뽑아주는 것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완벽한 잣대, 어디서 유래했을지 모를 이상향적인 선함의 잣대를 대는 것이 아니라 "뽑아준 역할에 적절한" 잣대를 들이대고 요구해야만 한다. 그 외의 특징들은 사실상 불필요하고 아마 방해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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