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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Feb 25. 2020

독일의 폴리페서는 어떤 사람일까?

본업의 성공, 정치적 번외는? 

들어가기 전에, 요즘 독일 신문 기사들은 확실히 여성에 관한 것이 많다. 그렇다고 "성공한 전문직 여성의 사회적 역경 스토리"를 통해 내가 전부 대변되는 것도 아니다. 성공한 전문직 이민자 여성이라면 모를까, 혹은 성공한 전문직 동양인 이민자라면 모를까. 여성 혹은 이민자가 성공해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동료와 후대의 앞길에 장애물이 일부 제거될 수는 있겠건만, 만약에 여성 승진 가능성이 넓어지는데 상대적으로 이민자 승진 가능성은 그대로라면 나의 승진이 가까워진다는 보장이 없다.


왜 남의 나라에 존재하는 기회의 창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약 두 가지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첫째, 한국인의 교육열과 고소득화, 그리고 특유의 돌파 정신으로 인해 가족이나 지인들, 혹은 미래의 자녀들이 세계 곳곳에 분포해 있을 확률이 낮지 않다. 그들이 마주할 도전들이기에 아주 남의 얘기는 아니다. 둘째, 남의 나라와 나의 나라를 비교할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디 나라는 안 그런다더라" "어디 나라는 그렇게 살기 좋더라더라" "우리나라도 그렇게 만들자"등의 단순화를 피할 수 있고 그것은 좀 더 정확한 개선점을 짚어내는 데에 필요한 출발점이다. 불만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불만이 향하는 목표를 허공에, 혹은 돈키호테처럼 상상의 괴물을 향해 헛조준하는 아까운 에너지 낭비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바이다.


오늘의 기사는 여성 의사로서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는 자리에 오르고 최근에 정치에도 관여한 인물에 대한 것이다. 


"여기 절단!" 키실레 씨는 메스를 피부에 밀어 넣고 오른쪽 가슴을 둘러서 깊은 자국을 자른다. 산부인과 의사인 그녀의 절단술은 정확하고 출혈이 적기로 유명하다. 그녀 앞에 뉘어진 건 51세의 묵직한 남성 신체이다. 병명은 유방암, 남자도 걸리는 병이다. 이 환자는 너무 늦게 병원을 찾아왔다. 


키실레 씨는 종양으로 점철된 가슴을 잘라낸다. 그녀의 손길은 빠르고 지시는 간략하다. 


"갈고리." 조수가 두 개의 무거운 강철 갈고리를 사용해서 가슴의 구멍을 늘린다. "전기 다시 넣어요!" 수석 의사가 긴 핀셋에 전기를 넣고 피를 흘리는 혈관을 경화시킨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와 연기가 나며 태운 살은 검고 악취를 풍긴다. 


키실레 씨는 절단한 가슴을 꺼낸 후 열린 상처를 더 깊숙이 작업한다. 겨드랑이에서 탁구공만 한 림프샘 여러 개를 꺼낸다. 그러고서 날렵한 바느질로 남자를 꿰맨다. 목숨을 살리는 것이 이렇게 쉬워 보일 수가. 


59세의 키실레 씨는 뮌헨의 대학병원 여성학과 원장이다. 독일에서 산부인과 교수직을 위임받은 첫 여성이다. 2000년에 위임이 됐으니 모든 의학과를 통틀어 가장 여성적인 분야 치고 놀랍도록 늦다. 오늘까지 키실레 교수는 꽤나 외롭게 정상에 서 있다. 전국의 여성의학과 교수직 48군데 중 7곳만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반면에 전국의 산부인과 의사 중 3분의 2가 여성이다. 


이런 현상은 의학 곳곳에서 보인다. 학과의 강의실에는 이미 여학도들의 수가 남학도 보다 많다. 졸업 성적도 더 우수하다. 하지만 지도층으로 가는 길 어딘가에 여성들은 막혀버린다. 독일 대학병원의 최상위급 의사들 중 8명이 남성이면 1명이 여성이다. 이유 중 하나는 병원 밖의 삶이 없다는 것이다. 주말, 야간, 불규칙 근무는 가족과 화합되기 어렵다. 아이를 낳을 때가 되면 여성 의사들의 승진이 느려지는 반면 남성 의사들은 가족적 의무를 외주 맡기며 수석 의사가 된다. 


키실레 씨는 정상에 선 대신에 값을 지불했다고 본인이 말한다. 세 번 이혼한 것은 그녀의 직업적 성공과 연관이 있다고 그녀는 믿는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그녀가 뮌헨에 병원장이 되던 순간에 이별을 고했다. 그는 그녀에게 "너의 커리어가 나와 안 맞아"라고 작별할 때 고했다. 그녀가 산부인과 의사로서 수천 명의 생명의 탄생을 도울 때 그녀 자신에게는 자녀가 없었다. "저도 아이가 갖고 싶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하지만 첫 번째 남편은 자기 자신도 감당 못했고, 두 번째 남편은 아이를 원하지 않았다. 세 번째 남편과는 결혼하자마자 기겁해서 이혼했다. 50세가 되어 스포츠 기자와 네 번째 결혼을 했을 때 이미 함께 아이를 만들기에는 늦어버렸다. 대신 남편이 전처 두 명과 낳았던 아들 세 명의 "전리품 엄마"가 되었다. "전리품 엄마"는 그녀 자신의 표현이다. 


키실레 씨는 녹색 집도 유니폼을 벗고 흰색 의사 가운으로 환복 한다. 곧이어 러시아에서 직접 찾아온 48세의 러시아 여성 환자가 상담실에 들어온다. 왼쪽 가슴에 7센티의 종양이 자라며 림프샘까지 엄습했다. 키실레는 험난한 치료 과정을 설명하며 또렷이 말한다: "환자분의 가슴을 아마 잃게 될 거예요." 환자는 통역사의 말을 들으며 바닥을 쳐다본다. 요즘 뛰어난 보형물이 많다는 말을 해줘도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다. 


왜 상시로 삶과 죽음 사이에 서야만 하는 직업을 택할까? 그것도 하필 외과의사가 백의의 신이었지만 여신은 드물던 시절에? 


키실레 씨는 남부 독일에서 자라며 수능 수석, 장학 대학생을 지낸다. 엔지니어가 되고 싶어 하지만 사업가인 아버지는 여자를 위한 직업이 아니라며 반대한다. 그래서 18세에 우선 현지 병원에서 조무사로 아르바이트를 한다. 부서는 남성의학과였다. "병실을 들어가면 환자들이 포르노 잡지를 펼치고 어떤 환자들은 제 엉덩이를 쳤어요"라고 그녀는 기억한다. 그래도 수술을 하고 싶다는 그녀의 결정은 완고했다. "선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의대 공부 중에 비뇨기학과 수습을 거쳤다. 한 번은 그녀와 똑같이 20세인 환자를 대면했다. 병명은 고환암. 병동 주임 의사가 그에게 수술 후에 인공 고환을 원하는지 묻자, 환자는 얼굴이 빨개지며 아무 말도 못 했다. 환자실의 다른 환자가 짙은 사투리로 큰 소리를 질러왔다: "의사쌤이 플라스틱 불알을 원하냐고 묻잖아!" 이 체험은 그녀에게 너무 수치스러워서 남성의학과는 지양하는 게 낫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된다. 


여성의학과 의사가 된 그녀의 커리어는 눈 깜짝할 새에 정상까지 전진됐다. "제가 성공한 이유는 최고를 요구하기 때문이에요. 상사가 고함을 지르고 다녀도 바로 오줌을 싸지 않았죠. 그런 건 집에서 익숙했어요." 그녀는 형제 둘과 가끔 언성을 높이던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결정적 순간에 남성 경쟁자에게 패할 뻔한 적은 있다. 뮌헨 공과대학교에 교수직이 났었다. 임명 위원회는 전부 남성 수석 의사였고 유일한 여성은 투표권이 없었다. 그들은 남성 후보를 선호했지만, 결국 공과대학교 총장이 그녀를 지지한다. 오늘 그에게 물어보니 그는 "그녀의 연구 업적에 깊게 감탄했고, 그녀는 종양 연구에서 세계적으로 뛰어났다"라고 답한다. 그는 여성을 양성하기로 알려진 인물로서 바이에른의 과학 장관을 설득하여, 결국 1999년에 키실레 씨는 고작 39세에 산부인과 교수직에 오른다. "난생처음으로 여성인 것이 단점이 아니었어요."라고 그녀는 말한다. 어쩌면 장점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쟁의 서막이었다. 경쟁자를 선호했던 원장은 그녀를 호출하여 두 시간 동안 그녀가 왜 저열한 후보인지를 설명했다. (그에게 물어보자 그런 기억이 없다고 한다.) 틈만 나면 장애물을 그녀 앞에 던졌다고 한다. 남성 의사들이 무리 지어 그녀를 미워하는 분위기를 형성했다. 키실레 씨는 그녀의 방식으로 방어한다. "복수했어요."라고 그녀는 말하며 그녀 나름대로 여성을 집중 양성했다. 만삭인 동료를 그녀가 지지한 적이 있었다. 그녀를 미워하는 원장이 만삭인 사람을 데리고 뭘 할 거냐고 다그쳤다. (그는 이에 대한 기억 또한 없다고 답변했다.) 키실레는 "저는 우연히 임신에 대해 좀 아는데요, 9개월이 지나면 끝나는 겁니다."라고 답변해서 통쾌한 승을 거둔다. 


키실레 씨의 강철 같은 자신감은 선천적이지 않지만 일찍 갖춘 소양이다. 여자 고등학교에서 수녀님들이 여자도 다 성취할 수 있음을 가르친다. 젊은 의사 시절에 상사가 그녀에게 언젠가 독일의 첫 산부인과 교수가 될 거라고 예언해준다. 오늘날 그녀의 결론은 이렇다: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넌 할 수 있다고 말해줘야 해요."


키실레는 그녀의 직업에서 모두 이뤘지만 정치는 덜 성공적이었다. 2018년에 과학과 예술을 위한 국무 장관으로 임명됐고 이는 바이에른 국무총리의 현대 여성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녀의 역할은 연예인 남편을 가진 멋진 교수로서 선거유세에 화려함을 더하는 것과 기존 지지자층 외의 여성 유권자들을 포섭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전까지 전혀 비정치적이었지만 수백 명 직원을 거느린 병원장이 수상청 정도는 문제도 아니겠다고 여겼다. 


하지만 외부에서 영입된 많은 정치인들이 겪는 어려움은 그녀에게도 자비가 없었다. 모든 행동과 발언이 공개적으로 찢김 당했다. 국회에서 타 정당 의원의 연설에 박수를 쳤다고 혼났다. 맥주 축제의 공개 행사에서 바이에른 애국가를 부르지 못하자 비판을 받았다. 


키실레의 관할인 예술인들은 그녀가 도대체 왜 예술정책에 개입하는지 의아해했다. 인터뷰에서 음악 성향에 대한 질문을 받자 키실레는 모차르트, 마이클 잭슨, 롤링 스톤즈를 나열했고, 그것 때문에 그녀가 문화적 문외한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렸다. 키실레가 패션 매거진 인터뷰에서 주름 레이저를 맞고 핏줄을 제거하는 주사 시술을 받는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다시금 비아냥거리가 되었다. 그럴 만하다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여성 정치인들의 외모에 대해 모두가 입을 놀릴 수 있지만 그녀 자신들은 그러면 안된다는 모순을 피할 수 없다. 


키실레 씨는 "공정한 기회가 없었다"라고 회고한다. 하지만 여러 충성에 동시에 응해야 하는 직업인 정치를 다소 과소평가한 티가 난다. 그녀는 공개 석상에서 정당의 정책에 대해 지나치게 솔직하게 실언한 실수에 대해 회고하며 말한다: "뭐가 마음에 안 들 때, 안 그런 척을 못 하겠어요. 정당 논리는 질색이에요."


결국 8개월 후에 그녀는 교체된다. 이해되는 결정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다른 의원들을 "먼저 챙겨야"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다르게 보면 국무 장관으로서 별다른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그녀는 하루 후에 병원장으로 복직했다. 그녀의 직업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정계에 대한 미련이 보인다. 그녀가 올리는 글과 해시태그는 아직 그녀가 국무 장관인 듯이 느껴진다.


정치의 매력은 무엇이길래 자기 분야에서 명실상부 톱클래스가 된 이후에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할까?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엄청난 매력이라도 있단 말인가. 직접 그 입장이 되어보기 전에는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똑똑하신 분들이니 내가 비루한 비평을 얹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자기 분야에서 그렇게 똑 부러지고 산전수전 겪은 수장인 사람이, 완전 다른 경험과 재주가 소요되는 분야에서 갑자기 어리바리해지는 현상은 사실상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다. 


자신감이라는 요소도 있겠다. 위의 인물은 한 분야에서 일군 근거 있는 자신감에 기반해서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착각"을 했다. 하지만 사회는 때로는 "착각"하는 인물들을 필요로 할 때가 있다. 모두가 몸을 사린다면 이끄려고 나서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본인의 여성이어서, 이민자여서, 특출 난 배경이 없어서든, 교과 과정을 선두에서 완주하지 못했어서, 자신과 본인이 속삭이는 의심의 목소리가 항상 나를 감싸 왔다면 이것을 돌파하고 진전해버리는 것 자체로 "착각"이 "현실"로 둔갑하는 현상이리라. 


하지만 사회에서 착각과 현실의 차이는 얄팍하다. 실력 없는 자가 당연한 듯이 누리는 특권도 착각이고, 그런 자를 떠받드는 추종자들의 이유 또한 착각일 수 있다. 역으로 내 잠재력을 남이 폄하하고 방해하는 것도 착각에 기반하고, 내가 나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것도 남들의 착각의 연장선일 수 있다. 이렇게 사회는 착각으로 이루어졌다.


이렇듯 착각으로 점철된 사회에 대한 유일한 무기는 개개인이라도 착각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남들이 착각으로 내 인생과 사회를 정의하고 재단하기도 하는 세상인데, 나 자신이라도 나에게 그리고 사회에게 그러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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