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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Apr 14. 2020

독일의 학계는 공정할까?

나라의 문제, 학계의 문제, 개인의 문제

아무래도 나와 상관이 있는 사회문제에 마음이 가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과도하게 휩쓸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 내가 잃을 게 있다고 느낄수록 더 예민하게 반응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너무 예민한 반응은 피해의식과 맞닿아 있을 수 있기에 판단을 흐리고 감정을 소모한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쓴 표현에 핵심이 담겨 있기도 하다. 내가 잃을 게 있다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여하튼 그래서 두 지점 사이의 균형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중요하기도 하다.


학문을 처음 하게 된 내 계기는 좀 특이했다. 독일의 대학원에서 박사 1학년이 되었는데, 오리엔테이션 개념으로 박사 후 연구원 중 한 명이 우리를 데리고 전체 면담을 해줬었다. 그때 박사를 하고 싶은 이유 및 하게 된 계기를 물어보면서 아주 자유롭게 대답하라고 용기를 복둗어 주었었다. 예를 들어, "내가 친하게 지내고 싶고 끌리는 사람들은 전부 다 박사이거나 박사를 하고 있더라"같은 이유는 아주 솔직하고 그래서 더 동기부여로서 완벽한 이유라고 말이다. 나는 큰 고민 없이 답할 수 있었다. 워낙 뚜렷한 동기를 가지고 입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스스럼없는 대답을 들은 연구원은 다소 당황하는 기색을 보였고, 나는 아차 싶었다.

"정치와 정치인이 너무 싫어서 아예 정치학 박사를 해야지 싶었어요."

영어로 했던 말이니 사실 반말이었지만 말이다. "-해서 그랬거든~~" 정도.


사실 내가 한 말은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평범한 이유는 아니지 싶다. 그렇다고 나와 비슷한 동기를 가진 사람을 아주 못 만나본 것도 아니다. 그리고 박사를 하는 이유가 어떤 문제에 대한 일종의 답답함에서 비롯하는 원리는 그다지 드문 것도, 놀라운 것도 아닐 것이다. 답답함의 성격이 꽤 추상적인 쪽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결국 성향의 차이지 싶다. 나 같은 경우는 논리적 균형이 느껴지지 않으면 고구마 10개분의 답답함을 느낀다. 그러면서 증오나 기쁨 같은 감정도 꽤나 쉽게 느끼는데 그 대상이 다소 추상적이다. "누구를" 콕 집어서 싫어한다기보다는 "사회를 이렇게 되도록 만드는 것들", "정치인을 이렇게 행동하게 이끄는 장치들" 등을 향해 사실상 짜증에 준하는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지적 차원이 외부 세계를 향해서 부리는 오지랖이라고도 부를 수 있겠는데, 아무튼 나는 외부 세계를 향한 실질적 짜증과 이성적 중심 잡기에 대한 강박 사이에서 논리적 실수를 범하기가 싫었다. 이 설명을 짧고 간략하게 하면, "정치와 정치인이 너무 싫어서 아예 정치학 박사를 하기로 결심했다"라는 말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나는 꽤나 뚜렷한 학문적 동기를 가지고 그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남들과 아주 다르지도 않지만 웬만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나름의 만족감을 가지면서. 미대를 졸업한 DNA가 그래도 있기는 할 터이니 특별함에 대한 기쁨이 자존감의 여전히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박사 후 연구원 3년 차에 접어들어서 내 생각은 약간 바뀌었다.


동기는 평범할수록 본 체제 내에서의 순응에 유리하다. 동기로 인해 모든 결정과 기준, 구체적으로는 연구 방향과 논문 스타일, 토론의 근거 선정까지 달라지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서, 논문이나 연구계획이 통과되어야 하는데 심사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생각 체계가 비슷해야 좋다. 내가 생각하는 요점과 포인트가 그들과 다르다면, 애초부터 관점이 빗나가게 되더라 (나의 경우가 그렇다는 가벼운 서술이니 절대 낙심하지 말기를. 하지만 독자가 학문의 길을 걷고 있는 중이라면 섣부른 일반화를 날려버릴 자질은 이미 넘치도록 보유했다고 믿는다.)


그러나, 동기가 평범해야 유리하다는 것은 아직 결정적 결론이 아니다. 진짜 결론은 따로 있다. 동기가 평범한 것이 핵심이 아니라, 해당 연구에 대한 관심과 즐거움이 (혹은 행복이? 연구 얘기는 때로는 감성적 언어와 어색한 조합을 이룰 때가 있다) 동기여야 한다는 것.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나의 동기는 확실히,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부분적으로는 틀렸다. 아마 단기간 내에 박사를 끝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기일 테고 (실제로 내가 그랬다) 막상 그 후의 본 게임인 학문 장기전에 들어가기에는 뒷심이 부족한 동기일 테다. 동기와 상관없이 연구 그 자체에 대한 기쁨이 샘솟는 우물이 뒤늦게 발굴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는 내 개인적 이야기다. 내 케이스는 학문의 끝판왕인 박사를 시작한다는 것이 얼마나 개인의 서사에 뿌리내린 사건인지 (꼭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보여준다. "다른 무수한 현실적 여건이 있지만 그런 건 우선 아무 상관없어. 우선은 나에게 이게 가장 중요해."라는 말의 실천이자 내 젊음을 한 덩어리 썰어내어 바치는 행동과도 같다.


그래서 그런지 학계에는 문제가 많다. 특히 반지의 제왕의 반지와도 같은 역할을 하는 듯한 종신 교수직을 거머쥐기 전까지는 워낙 교수에 대항할 권력의 불균형이 심한 데다, 일부 대학원생 내지 연구원은 순수한(?) 나머지 착취에 취약하기 때문에 한국의 경우만 해도 "교수" 대신 "괴수"라는 신조어가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졌다.


학자는 특권층이면서도 취약계층이다. 나 자신만 해도 코로나가 판을 치는 세상에 재택근무를 하며 월급을 꼬박꼬박 받을 수 있을 정도의 3년 계약을 누리고 있는데, 이건 어떤 관점에서 봐도 특권이다. 준 공무원 혹은 비교적 안정적인 비정규직으로서 정리해고를 당할 위험도 없다. 고도로 유동적인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 월급은 환상적이지 않지만 그 대신 안정적이고 자율적인 이런 직업보다 좋은 것은 아마 드물 것이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을 정도다. 동시에, 왜 취약계층인지에 대해 썰을 풀기 시작하려면 끝도 없다.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안다고 생각해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알만큼 경험했음에 감사하기도 하다. 취약층이 되어보는 것은 사람답게 되기 위해 필요한 관문일지도 모른다. 이민자 여성 비정규직 학자로서 (박사 후 연구원을 비정규직이라고 칭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맞는 표현일지는 몰라도 사실 불필요하게 어필을 과장하는 느낌이다) 나는 아마 좋은 사람이 될 것이다.


오늘의 기사는, 서론이 길어져서 주객전도 됐지만, 나 말고도 다른 중간급 학자들의 (중산층의 하층쯤 되는 것일까?) 근로환경에 대한 솔직한 발언들을 모았다. 나도 읽다가 흥미로워서 (남의 얘기인 마냥...) 들고 왔다. 읽다 보니 모두가 내 나이대이고 결국은 내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뭐 어쩌겠나. 이게 현실인데. 그래서 약간은 시원한 마음으로 기사의 일부를 발췌, 번역한다. 기사의 제목은 "압박, 시간과의 경쟁, 두려움의 쳇바퀴에 갇혔다"이다. 와우. 2015년 기사이고 근로조건이 개선되었다고는 한다. 내가 졸업한 이후의 얘기라 정책 변화가 있었다 할지라도 직접 체감하지는 못했겠다. 조교수직을 늘렸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종신을 추구하는 시간이 제한된 직책이라 결국에는 박사 후 연구원보다 책임만 많은 착취 대상을 늘린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지나가다 풍문으로 여기저기서 들었다고 해두자).


그들은 연구를 사랑하고 그들의 졸업 논문은 전국적 상을 수상할 정도로 뛰어났다. 그럼에도 독일의 최우수 연구자들은 대학에서의 미래 전망을 발견하지 못한 채, 대학을 떠나거나 외국으로 이직해 버렸다. 나머지 연구자들은 본질적 질문과 대면하기도 한다. 이런 삶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지?


쾨르버 재단 배 차세대 우수 연구상의 수상 후보 11명이 대학과 연구 기관의 악조건에 대해 발언하기 위해 우리 신문사에 연락해왔다. 그들의 희망은 정치에 있다. 정치는 연구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이미 알아챘다. 다만 돈이 부족한 것이다. 그로서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규직을 어떻게 창출해낼 수 있을까? 적어도 7500개의 교수직을 창설해야 한다는 독일연구위원회의 조언이 2014년에 있었고, 사회민주당은 차세대 연구자들을 위한 미래 펀드를 조성하여 절반을 국가가 부담하게 할 것을 선언했다. 그중 조교수직을 새로 늘려서, 제한된 시간 안에 종신을 얻을 수 있는 tenure track을 마련하는 것도 포함된다. 11명의 발언을 실었다.


"과학은 취약계층이에요"

저는 물리학자고 제가 속한 연구진은 국제적으로 저명하며 노벨상 수상자도 있어요. 머지않아 이 좋은 환경을 떠나야 합니다. 제 실적이 나빠서가 아니라 학계의 낡아버린 관습 때문이죠.

박사 후 연구원에게서 최대한의 국제 간 이동과 희생을 요구하는 관습입니다. 박사생 시절부터 매달 200시간을 일하는 것이 흔한 반면 월급은 80시간에 준합니다. 그건 모든 교육 과정을 마친 제빵사의 초봉보다 낮아요. 과학은 이미 특권이 아니라 취약계층입니다.

교수직 하위 조직에도 정규직이 포진해야 해요. 박사 후 연구원에게는 평가가 좋을 경우 (tenure track) 장기직을 보장해야 해요. 대학이나 기관 자체에 그럴 돈이 없을 경우 일부는 자발적으로 받아온 외부 연구비로 충당이 가능해야 해요.

(연구원 1, 만 32세, 할레-비튼베르그 대학 및 막스 플랑크 연구소 박사, 현 할레-비튼베르그 대학 박사 후 연구원)


 "압박, 시간과의 경쟁, 두려움의 쳇바퀴에 갇혔어요"

제게 박사논문은 매우 개인적인 가치가 커서 말 그대로 나 자신을 위해 한 것이었어요. 전체를 자비로 부담했죠. 방송국에서 일을 많이 함으로써 모은 돈으로 졸업논문만을 쓰는 기간 동안 버틸 수 있었어요. 제 모교는 제 삶의 영위에 충분할 계약을 한 번도 제안하지 않았어요.

대학 계약을 가진 내 동료들은 저보다 훨씬 오래 걸려서 박사 논문을 마쳤어요. 최대 6년으로 제한된 시간 내에서 과로까지 간 애들이 많아요. 졸업 후 일자리조차 대학은 제안할 수 없었죠.

제가 보기에 가장 영리한 애들이 이러한 체제의 희생제물이 됐어요. 그들은 완벽주의자라서 6년 내에 끝내기 어려웠어요. 압박, 시간과의 경쟁, 그리고 잘못되고 있다는 두려움의 쳇바퀴에 갇혀 있었죠. 또 다른 동료들은 시간 내에 해냈지만 결과물에 대해 만족하지 못했어요. 그걸 보고 저는 절대 대학에 남고 싶지 않았죠.

그래도 결국 남게 됐어요. 저는 현재 이태리의 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치고 현재 계약은 최대 5년이에요. 그동안 많이 연구하고 논문을 출판해야 학계에 남을 가망이 있어요. 이 기간 동안만은 수입이 보장되니까 저명해지기 위해서 일 분 일 초라도 아껴야죠.

(연구원 2, 만 35세, 본 대학 이탈리어 학과 박사, 현 우르비노 대학 독일어 강사)


"어떻게 가정을 꾸리라는 말이냐?"

학계 체제가 매력이 없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연구됐죠. 낮은 수입, 비정규직, 그리고 보장된 일자리에 대한 낮은 확률. 저는 이 체제와 씨름하기 싫어서 박사 졸업 후 학계를 떠났어요.

제 지인들 중 애석하게도 희생에 대한 사례가 더 많아요. 전부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요. 대표적으로 두 명을 얘기할게요. 한 명은 싱글맘이고 30대 중반인데 대학의 일자리 월급이 기본의 절반인 월 1300유로라서 (현 시각 약 170만 원) 부모님 도움 없이 삶이 불가능해요. 곧 그녀의 2년 계약이 끝나고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어쩔 수 없이 또 이사를 가야 해요.

다른 친구는 박사 후 연구원으로서 2년짜리 계약직을 줄줄이 하며 전국을 돌고 있어요. 그는 30대 후반인데 여자 친구를 찾지 못했어요. 대부분이 그렇듯 세후 2200유로를 벌어요 (약 300만 원). 그 두 명에게 해당되는 것이 있어요. 후에 교수직을 받을 10% 중에 속하지 못한다면 노후에 가난할 거란 거요. 그들은 장학금을 수여받으며 박사를 했기 때문에 노후연금 납입을 하지 않았어요. 2005년 이후부터 대학 공부 기간은 노후연금에 산출되지 않아요. 비정규 계약 사이에는 실업의 기간이 흔하고, 이사를 할라치면 모았던 돈을 써야 해요. 남은 앞으로의 30년의 근로활동 동안 든든한 노후 자금을 모으고 가족을 먹여 살릴 충분한 월급을 받고 있지 않아요.

(연구원 3, 만 32세, 하버드대학 과학경영 석사, 막스 플랑크 연구소 교육학 박사, 현 교육과학부 국제부서 근무)


"인문학자들은 순 멍청이들인가?"

미래를 도박하고, 모든 걸 한 패에 걸고, 전심을 다해 미약한 종신직 확률을 향해 돌진하는 것- 인문학자들은 아마 순 멍청이들이 아닐까요? 솔직히 말하면 인정하기 싫을 정도로 답변은 명확해요.

가끔은 고소공포증을 가졌는데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에요. 지평선만을 노려보면서 줄타기하다가 멈추지 않도록, 그러다가 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줄타기를 하면서 강산이 다소 변했고, 적어도 인문학에서는 좋은 쪽으로 변하지 않았어요. 이럴 거면 그냥 뛰어내려야 할 텐데?

제 답변은 단순하고 낭만적이에요. 저는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이 무엇보다 좋아요. 결국 남은 것은 희망뿐인데, 교육정책의 이성의 르네상스가 일어나기를 바라요. 그러한 정책에 필요한 건 그리 많지 않아서, 약간의 참을성과 성찰, 시작을 위한 몇 발자국이면 돼요.

(연구원 4, 의학윤리 역사이론 하빌리타치온, 현 뮌스터 대학 박사 후 연구원)


"비정규직 확장에 대한 법은 그냥 조롱 같아요"

저는 현재 뮌헨 대학에서 최상의 근무조건으로 일해요. 박사 졸업 후 연구원에게 가장 중요한 건 다음 연구 프로젝트 준비예요. 하빌리타치온 혹은 "두 번째 책"은 종신직을 위한 필수조건이에요. 그리고 그건 정규직에 대한 유일한 희망이에요.

그 이유는 과학 비정규 계약법이에요. 졸업 후 최대 6년 만을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다는 내용인데, 그 기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되어 있어야 해요. 교육부는 이 법안을 성공이라고 치켜세워요. 대학에서 종사하는 연구원들에게는 순 조롱처럼 들려요. 비정규직을 줄일 의도로 도입된 법이지만 결과는 정반대죠. 6년이 지나면 정규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계약도 받지 못해요.

결국 6년이 지나면 대외 연구비로 지원되는 연구직만이 희망인데요, 그것도 비정규직이지만 과학 비정규 계약법에는 해당되지 않아요. 대학이 요즘은 정규직을 거의 채용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만큼의 예산 안정성이 없어요. 마지막 가능성으로는 교수직을 따내는 것인데, 그것은 워낙 드물어서 대학의 연구진의 10%만이 교수일 정도죠.

결론적으로 40대 중반의 대부분의 연구원들은 갈 데가 없어요. 커리어 전체를 대학의 연구에 바쳤는데, 다른 곳에서는 직업을 얻기조차 힘들죠. 저는 언젠가 교수가 되기를 바라는데, 이건 비단 비정규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아니죠. 하지만 만약 실패할 경우 내가 망해버리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연구원 5, 만 37세, 칼스루헤 대학 및 베를린 자유대학 영화학 박사, 현 뮌헨 대학 박사 후 연구원)


"남은 자들은 운이 좋아서 남는다"

최고과정을 거친 법학자들은 대부분 두 가지 커리어 옵션이 있어요. 판사 혹은 공무원이 되거나, 국제기관 변호사가 되거나. 전자는 평생 보장된 직장이, 후자는 화려한 국제무대에서의 높은 연봉이 기다리죠. 학계는 둘 다 못 주면서 더 많은 시간 투입과 한없는 개인적 희생을 요해요.

보통 법학자들이 30대 후반쯤에 사회 지도층이 되는 반면, 우리들은 시간 강사로 비정규직 계약을 주는 곳을 따라서 떠돌아다니죠. 30대 후반의 가정생활에 어떤 의미일지는 말해 뭐해요. 희생을 바치는 자들 중에서도 정말 행운이 따르는 소수만이 남아요. 이런 식의 로또를 통해서 미래 혁신 과제의 선구자들을 선별하려 하는 것이 확실합니까?

(연구원 6, 본 대학에서 박사 과정 중, 현 막스 플랑크 연구소 객원 연구원, 하이델베르크 과학아카데미 대학원생)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린다

제가 하고 있는 나노소재 분야 연구는 제 꿈의 직장이에요. 하지만 실제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없죠. 학계의 주 테마는 "내 연구와 내 연구원들을 유지할 예산을 어떻게 구하지?"니까요.

돈이 없으니 국가 연구재단이나 교육부, 유럽연합에 대외 연구비 제안서를 제출해야 해요. 20-100장 사이의 문서를 써야 한다는 애기예요. 힘들고 몇 개월을 소요하는 과정 후 완성해서 보내면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져요. 심사가 6-12개월 정도는 걸리거든요. 본인의 연구기관이 든든하게 도와주지 않으면 여기서부터 존재론적인 의구심이 드는데, 기다림의 시간을 어떻게 금전적 그리고 연구로 보내야 할지에요.

언젠가는 기다림이 끝나고 결정이 나요. "애석하지만 지원이 불가능합니다"라고. 모든 과학자가 같은 돈을 필요로 하니, 합격 승산이 5-10% 프로에 불가하죠. 그래서 결국 또 이렇게 거절 당한 후, 본인의 연구를 계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존재론적인 질문을 해야 하죠.

우리는 차세대 연구진으로서 비싸게 교육받았고, 아이디어가 넘치고 성취욕구가 최대치인 우리 중 최상위를 연구기관에 배정하고 지지하여 국가를 견인하도록 이끄는 것이 독일의 체제가 할 일이에요. 왜냐하면 독일은 자연 자원이 없어서 유일한 자원이자 모든 자산이 브레인 파워니까요. 도대체 왜 지원금 로또 체제를 만들어서 예산을 향해 이다지도 많은 에너지와 걱정을 쏟게 만들죠? 미래 전망이 전무하고 앞으로의 연구 동안 어떻게 먹고 살 지 걱정으로 가득 찬 상태로 어떻게 진정한 창의력을 발휘하라는 거죠?

(연구원 7, 뷔르츠부르그 대학 및 프라운호퍼 연구소 박사, 현 프라운호퍼 연구소 분자 기술 팀장)


"허풍은 필수"

과학자들은 서로 경합해야 해요. 하지만 제 경험에 의하면 현재 실행되는 예산 및 평가 유지 시스템이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지 않아요. 전에 교수가 저보고 신랄하게 "허풍은 필수"라고 말해준 적이 있는데, 본인의 연구에 본인이 의심이 드는데도 성공적이라고 포장해야만 해서였죠.

하지만 허풍만이 남은 것은 혹시 아닐까요?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어요: "한없는 비판과 자아비판이 과학적이다. 의심이 나를 굳게 할 것이라는 걱정은 비과학적이다." 이러한 원칙을 따르기에 어려운 상황에 과학자들은 처해 있어요. 과학 커리어의 지원에 대한 권력이 대학과 교수에게 있지 않아요. 학생의 잠재력을 오랜 시간 봐 봤기에 평가하기 가장 유리한 사람이 교수인데도요. 신뢰 대신 평가 절차를 통한 통제를 택해서, 국가 연구재단에게 "객관적"평가를 내려서 일자리를 허할 권력을 줘요. 그들은 저녁에 와인잔을 기울이며 모 연구팀에 예산을 주면 자신들이 위태로워지지 않을까에 대한 대화를 나누겠죠.

(연구원 8, 베를린 자유대 및 차리테 병원 박사, 현 베를린 경찰 심리 부서 연구원)


"끝나지 않는 대학생 같은 삶"

제 연구소의 분위기는 환상적이었지만 구조적 결함은 감추지 못했죠. 높은 연구 실적으로 인해 비정규직이 많았고 정규직이 드물뿐더러 시간과 월급이 제한된 반쪽 계약이 대부분이었죠.

게다가 요즘은 뛰어난 실적이 보장된 커리어를 뜻하지 않아요. 물론 논문의 개수와 저널 등의 객관적 기준이 건재하지만, 그 외적으로는 커리어 계획이 도박과도 같아졌어요.

연구의 자유와 발상의 경합은 점점, 대외 연구비 비율의 증가와 요즘 누가 돈을 주는지에 따라서 주제를 정하는 실용주의 때문에 희미해졌어요. 본연의 관심 분야를 자발적으로 연구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졌어요. 게다가 요즘 독일 대학에서의 연구 중간직은 유동적 집단으로 취급되어서 임의로 늘리거나, 줄이는 대상으로 다뤄져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의 아름다움 때문에 많은 연구원들이 이 모든 악조건을 받아들이고 끝나지 않는 대학생 같은 삶을 택해요. 코 앞에 당근처럼, 만족스럽고 의미 있는 일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을 계속 쫓아요. 이건 치명적이에요. 이 사냥 때문에 가족계획을 희생하면서 지향하던 커리어도 불발할 때가 빈번해요. 만약 실패의 끝에 종신 교수직을 놓친다면, 그들은 최고 수준으로 교육받았으나 일반적 노동시장이 보기에는 거의 쓸모가 없죠.

(연구원 9, "장기 실업"에 대한 논문으로 뮌헨 대학 박사, 현 힐데스하임 대학 조직 교육원 재직)


웬만큼 추렸는데도 하다 보니 재미있어서 굉장히 길게 번역해버렸다. 사실 재밌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내 생을 위협하는 얘기들이라 말이 안 되기는 하는데, 위험과 같은 방에서 몇 년째 생활하다 보니 그게 일상이 돼버린 것 같다. 적응해 버린 것이다. 사실 그러면 안되는데, 원래 인간이 적응의 동물이기도 하고 위에서 말했듯이 그만큼의 희생은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연구 혹은 연구가 내포하는 뜻과 가능성에 잠깐이라도 매료되었다면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단체로 미쳐 버리나 보다. 독일이라는 발달된 나라에서도 이따위 조건을 받아들여 버리고 멀쩡한 듯 일하고 있는 광경이라니.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런 무모함 조차도 즐기는 면이 있는 이상한 집단이 학자들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정의 끝에 인간적인 면모가 남아나지 않는 사람들도 보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혹은 이러한 여정을 끝까지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건지. 종신 교수가 안 돼봐서 모르겠다.


내가 뭐를 하게 되든, 내 커리어의 정점이 어디에 있든, 다 때려치우고 유투버가 되어 있든 (기업 즉 일반 노동시장에서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은 이미 최근에 여실히 체험한 바 있다. 그들만큼이나 나도 난감한 건 마찬가지. 그렇다면?) 확실한 건, 학계 체제의 끝 바닥까지 찍고 왔다는 것이 나는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길지도 짧지도 않던, 하지만 뼛속까지 냉혹하던 실업의 기간을 포함해서.


이전에는 대학원에 오게 된 내 괴상한 동기가 자랑스러웠다면, 이제는 그를 대체할 새로운 괴상한 자랑이 생겼다. 신념을 가지고 불가능과 죽도록 싸워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악랄하고 치사한 용과 싸워서 진 것 같은데 사실은 이겨서 온 기분이랄까. 현실은 아직 투쟁 중이지만 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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