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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nzlerin Jun 14. 2020

독일과 한국의 민폐는 다를까?

서로 다른 국가의 사회적 동물

직업 상 인터넷 커뮤니티 댓글을 많이 보는 편이다. 요즘에는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많이 줄였다. 그중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자주 보이는 것 하나는, "이런 상황에서 누가 민폐인가요?"라는 유형의 질문이다. 독어나 영어 커뮤니티에 비해서 횟수가 도드라진다. 물론, 무례한 사람과 언행은 어느 나라에나 있기 때문에 독일 사람도 당연히 무례한 언행을 범하거나 지적한다. 하지만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특히 여성이 많이 사용하는 커뮤니티에서, 민폐를 목격한 증언과 민폐인지 판가름해 달라는 질문이 많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진상이라는 단어에서도 드러나듯, 민폐라는 것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언행을 당당하게 하거나, 자신의 무례한 행동의 여파에 대해서 무지하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는 이기심을 칭하는 언행을 뜻한다. 사회적으로 공존하기 위해 필요한 수많은 원칙들이 있는데, 법률처럼 어디에 적혀 있는 것이 아니라서 "감"으로 알아야 하는 원칙들이다. 그래서 비슷한 기준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어야 서로 통할 수 있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현재 독일보다 높고 한국의 경제 수준은 과거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서, 사회적 시민의식은 점점 더 높아지고 한국인들 사이에서도 서로 같아질 거라는 예측이 가능하다. 민폐에 대한 대화들이 인터넷에서 유난히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어쩌면 전 국민이 변화를 겪는 과도기라는 뜻이다. 변화에는 마찰이 전제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반드시 부정적인 해석일 필요는 없다. 동시에 우리 개개인의 책임이 주목된다. 일상의 사소한 행실이 미래 사회의 모습인 셈이니까.

오늘의 기사는 "-민폐인가요?" 유형의 질문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다. 독일 주간지 슈피겔의 칼럼을 통해서 독자들이 곤란한 상황에서의 행동 수칙을 질문하는 형식이다. 독일인의 이미지는 다소 딱딱한 편이니까 왠지 비교적 주변의 눈치를 안 볼 것 같기도 하여, 민폐와 연관된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기사를 가져오게 되었다. 다음은 발췌와 번역이다.


질문:

저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고 세 명의 직원과 일하고 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두 달간 폐업했지만 드디어 다시 운영 허가를 받았어요. 엄격한 규격을 따라야 한다는 조건으로요. 제 직원들이 규정을 성실하게 따르기를 바라고 있어요. 고객이 우리 때문에 코로나에 걸린다면 문을 닫아야 할 것이고 저는 그걸로 끝이겠죠. 직원 세 명 모두에게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고, 개인적으로 조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직원 중 막내는 말을 잘 듣지 않아요. 22살인 그녀는 다시 파티하러 가려고 벼르고 있더라고요. 더 이상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지 않을 눈치예요. 우리 건강과 일자리까지 위협하는 태도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죠?


답변:

현재 코로나 위기 속 같은 상황에 처한 자영업자들이 많을 거예요. 직원 중 한 명이라도 사생활 중에 이탈하면 가게 전체가 경제적으로 흔들리니까요. 사장님이 지어낸 규율이 아니라 정부의 규정이니까 모두가 따라야 하지만, 이를 준수할지는 개인의 양심에 달려 있죠. 어려운 상황을 참 신중하게 접근하셨다고 생각해요. 모두와 대화를 하고 상황 설명과 부탁을 했으니까요.

본인 잘못 없이도 누구든 확진자가 될 수 있죠. 주변 사람, 배우자, 지나가는 행인, 전철 이동이 이유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걸 남의 책임으로 돌릴 순 없죠. 그렇다고 본인 행동의 책임이 없는 건 아닌데도 가끔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직원과 일 대 일로 다시 얘기해 보세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니까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시도해셔야 해요. 협박은 하지 마세요. 무섭게 말하거나 있지도 않는 권력을 행사하려 하지 마세요. 결국 사생활을 제지할 방법은 없으니까요. 상처 주는 말도 하지 마세요.

만약 그게 어렵고, 이미 화가 너무 많이 났다면, 가게를 운영하는 것 자체가 이미 확진의 가능성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세요. 고객이 확진자일 수도 있잖아요. 혹은 막내 직원 말고도 다른 직원들에게 관심을 분산하세요. 그들도 퇴근 후에 원 없이 파티하며 노는지, 말만 안 할 뿐인지, 모를 일이니까요.

그러니까 절대 흥분하지 마시고, 아무리 화가 나도 존중을 잃지 마세요. 오랜만에 다시 파티를 갈 생각에 부풀어 있다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다고 그녀에게 말을 건네세요. 사장님이 듣고, 보고, 인터넷 등에서 알게 된 사실들을 얘기해주세요. 하지만 과대해석이나 지적질은 하지 말고요. 이해심을 보이세요. 가령 "그동안 답답했을 텐데 다시 놀러 다니고 춤도 추고 싶은 걸 이해해", 처럼요.

하지만 아직까지 사회적 거리두기와 청결 규정에 변함이 없다는 얘기도, 국가가 벌금을 내린다는 말도 하세요. 파티는 아직 금지인 것이 공식 정부 규정이니까요. 가부장적으로 젊은 직원에게 훈계하지 말고 어른 대 어른으로 대화하세요.

걱정하시는 부분을 설명한 후 분명히 전달하세요: "너의 사생활이 우리 가게와 모두의 일자리를 위협해. 그걸 내가 책임질 수는 없어." 생존의 문제기 때문에 직원의 연대가 필요한 순간이에요. 모 아니면 도인 거죠. 양심에 어필하세요. "우리 팀을 위해서 규정을 따르지 않을래?" 사회적 거리를 두겠다는 약속을 달라고 하세요.

만약 이렇게 했는데도 직원과의 신뢰 관계에 금이 간다면, 이별을 택하는 것도 방법이 됩니다. 근로법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될지는 모르니까 사전에 알아보시고요. 하지만 저라면, 저와 내 동료들의 직장과 생존이 걸린 문제를 거들떠보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 확실한 액션을 취하겠어요.


사회 매너를 다루는 칼럼이니만큼 아주 신중한 답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인에 대해서 비교적 덜 알려진 면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다. 눈치를 많이 보는 면, 꼰대 같지 않을까 걱정하는 면, 강압적이거나 가부장적이지 말라고 타인을 만류하는 면.

내가 느끼는 한국어는 독일어보다 훨씬 더 감성적이고 표현도 더 간접적이다. 그에 비해 독일어 표현은 직접적이다. 만약 이런 차이점을 모두 걷어낸다면 한국인과 독일인의 차이는 생각보다 작을지도 모르겠다. 문화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모두는 마찬가지로 사회 속에서 공존하며 살아가야 하니까. 사회적 공존을 방해하는 언행을 우리는 민폐라고 부른다. 그 안에 내포된 의미는 언어를 떠나서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치를 아예 안 볼 수 있는 사회는 사실상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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