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은지 물어봤을 때, 나는 단단한 사람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단단한 사람을 동경했다.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마주하는 고난과 역경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사람, 그러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단단함이란,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키며 외부의 위협에 잘 대응하는 것이었다. 주변에 내가 생각하는 단단함에 부응하는 사람들이 없어서인지 그것이 희소하게 느껴졌다. 특별한 사람 또한 되고 싶어 한 것 같다. 평소의 나의 성격은 단단하지 않았다. 사소한 자극을 잘 인지하고, 주변의 작은 변화에 신경이 쓰이는, 다소 예민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본성을 존중하지 않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단단한 성향을 가지고 싶었다.
나의 내면에 크고 작은 갈등이 자주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애써 예민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계속 나를 꾸짖다 보니 갈등이 발생하면 잘 억누르는 것에 능해졌다. 갈등의 불씨는 제거하지 못한 채 응급처치로 무마하는 상황들이 반복되었다. 켜켜이 쌓인 불씨들은 아주 낮은 속도로 나의 삶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다행인 것은, 내 마음의 잔근육은 잘 성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외부의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었고, 새로운 환경을 선호하는 성향은 이 잔근육들이 때에 따라 잘 움직여 주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큰 변화가 일어났을 때 지혜롭게 대응하지 못하는 태도에 있었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큰 변화에 잘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은 단단해지기만 하려고 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나를 존중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여기면 나의 마음은 딱딱해지다 결국 부러졌었다. 현명하게 대응하지 못하고 자기 방어적으로 드러냈다. 직장에서, 일상에서 좋은 사람으로 인식되기 위해 노력했던 나는 그런 취약한 상태에 몰리면 낯선 사람이 되어있었다. 평소의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변화하는 것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는 좋은 사람이고 싶기에 그럼에도 에너지를 쏟을 수밖에 없다.
최근 유연하고 강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체력을 기르고 있다. 몸을 단련시켜 기초 체력을 증가시키고, 마음을 단련시켜 유연한 사고를 갖게 하는 독서에 소홀히 하지 않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거대한 괴로움에 물러서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일단 현실을 받아들이고, 달리진 체력으로 구체적인 방법을 강구하다 보면 최소한 부러지지는 않을 거라는 예상이다. 몸과 마음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에, 체력을 기르다 보면 마음의 장근육들 역시 성장하여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내지 않을 것이다. 마음 근육의 성장에는 지름길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그래서 효율보다는 경험이라는 정도를 걷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