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버스는 서울 시내버스와 다르게 배차 간격이 길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회사에 처음으로 입사한 후, 경기도 버스를 처음 타본 나는 일단 마음을 안정시켜야 했다. 전쟁터 같은 아침 출근 시간에 지하철과 버스를 오가며 오피스 건물에 도착하면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었다. 일찌감치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해버리고 나서 교감이 필요한 책상과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고요한 아침 분위기 속에 고양이 목소리로 직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날의 분위기는 “얼음 같았다.”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합정에서 다리를 건너 당산으로 오던 길이 익숙해졌을 때의 일이다. 여느 날처럼 피로를 한가득 싣고 붐비는 역사로 들어갔다. 신도림행 열차임에도 지하철 안은 매우 붐볐다. 여차하면 정신이 혼미해지는 그곳에서 안정감이 드는 공간을 찾아 나섰다. 두리번거리다 좌석 끝 쪽으로 향했다. 벽에 기대어 한 참을 기다렸을까. 칠흑같이 검은 외부가 ‘페이드 아웃’되면서 새로운 배경이 펼쳐졌다. 한강 다리를 주연 삼아 빛을 밝히던 조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열차에서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 오늘 하루 고생 많으셨고 안전히 귀가하시기 바랍니다.”
뜻밖의 토닥임이 켜켜이 쌓인 피로를 녹였다. 서울의 일상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위로하는 말들. 나는 그 작은 배려를 가슴 한편에 담아두고 콘크리트의 건물에 도착했다. 뚜두두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었다. 왈왈 소리를 내는 코코가 제일 먼저 달려왔다.
마틴은 집에 돌아오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사람이었다. 유학 초기, 나는 일상에서 외로움을 좀처럼 떼기 힘들었다. 디폴트 감정이 외로움이었던 당시에 하루의 일과를 물어봐주고 공감해 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 덕에 평소보다 나의 감정을 더 잘 표현하게 되었고, 영어실력 또한 늘게 되었다. 서퍼(저녁)를 먹을 때면 조이는 더 자세한 질문을 던졌다. 오늘 점심은 누구랑 먹었는지, 수업시간에는 어떤 문법을 배웠는지 등등. 영어 성장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그녀의 궁금증이 초기에는 곤혹스러웠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감사함으로 다가왔다.
영어로 찌르고 막기가 계속되던 중 갑작스러운 약속에 초대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갔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곳에서 환기되는 케이팝 음악을 재생시켰다. 몇 분뒤 버스가 도착하고 지갑 속의 플라스틱 교통카드를 꺼내 들었다. 고르게 호수와 디저트 가게를 지나 베이센터에 도착한 나는 버스 창문 쪽으로 향했다. 아날로그 방식의 하차 시스템을 고수하던 빅토리아 버스에서 현지인처럼 느슨한 줄을 잡아당겼다. 신호를 감지한 듯 기사 아저씨께서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 그리고 번화가 앞에 정차했다.
“감사합니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노래 때문에 깜빡할 뻔했던 말을 나도 내뱉었다. 그러고 나니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안전하게 목적지로 데려다주고, 그에 상응하는 말을 해주는 것 만으로 좋은 감정이 올라왔다. 감사의 힘. 그것은 실로 존재하고, 군중심리를 통해 드러낸다 할지라도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