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mour Seo May 20. 2020

색, 꽃이 주는 즐거움

캐나다 빅토리아의 '더 부차드 가든'

'찰칵'


사진에 담기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플래시가 비쳤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가리고 싶지 않았다. 나를 둘러싼 곳에 빨강이 있었고 보라가 있었으며 분홍과 노랑 또한 있었다. 양옆의 사내들이 몸을 붙여온 어느 잔디 바닥은 네모난 프레임에 담기에 적절히 여유로운 공간이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뙤약볕이 얄미웠지만 자연스러운 듯 카메라 렌즈를 바라봤다. 컷 싸인을 확인하고 자리에 일어나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신기하게 가벼워졌다. 일곱의 순간을 담아내니 자연의 놀라움은 기쁨으로 변해 '색'이라는 것으로 다가왔다.  



'포르티시모' 설레다


부차드 가든으로 가는 길은 '포르티시모' 설렜다. 너무 이르지 않게 일어나 침구를 정리하고 어떤 맛의 음식들을 도시락에 담을지 고민하다 그냥 재킷을 집어 들었다. 집의 현관문을 열기까지의 과정은 마치 애피타이저처럼 짧고 휘발적이었다. 상쾌한 아침 공기를 마시며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물감을 갓 칠한듯한 하늘은 기분 탓인지 보통의 날보다 깨끗해 보였다. 정류장의 벤치에 앉았다. 버스를 타기 전 항상 담배를 태우는 금발의 그녀가 사라진 나무 그늘 아래에서 선명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삼삼오오 헬멧을 쓴 바이커들이 예상치 못한 인사를 건네며 지나갔다. 그들의 여유로움과 활기는 너무 진해서 서있는 도보 위를 넘어올 정도였다. 예상보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전날의 텍스트 창을 쓱쓱 스크롤했다. 그룹이 7인으로 늘어난 것에 부푸는 기대감을 감출 수 없었다. 


 

보통 꽃구경을 하러 가면 세상 가족들이 모두 집에서 나온 듯 북적이고 혼잡스럽지만 이 곳은 그렇지 않았다. "잘 만들어 놨다"라는 느낌과 "자연에 얹혀놨다"라는 느낌이 동시 들었다. 날씨는 여름임에도 습하지 않았고 햇빛이 강하지만 그늘로 피신하면 오히려 시원함이 극대화되었다. 이것은 빅토리아 전체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다섯의 테마공간을 걸어서 다니는 것에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꽃이라는 것은 그전까지 나에게 '계절을 쉽게 알게 해 주는 역할'이었다. 강제로 봄을 알게 해 주고 여러 신호를 주는 벚꽃을 제외하면 그렇다. 산책로에서 피어난 분홍 꽃들을 발견하면 "이 지겨운 여름이 드디어 지나가는구나"라는 안도를 하게 되고, 강의실을 나와 인문대의 길에 일찍 자리 잡은 개나리들을 보면 "이것들은 얄밉게도 요기서만 피어나는구나"하며 애석한 기분이 들었다. 



달라진 배경에서 을 바라보다


오프 더 한국의 꽃들은 '가히' 아름다웠다. 주변으로부터 튀지 않아 걷는 내내 축복의 감정이 느껴졌다. 안내 책자를 짚어가며 각기 다른 테마로 연출된 지역들을 느긋이 찾아 나섰다. 눈이 휘둥그레지는 곳이 대부분이었고 가끔 핸드폰을 꺼내게 만드는 곳들이 있었다. 여자인 친구들은 SNS용 사진에 최적화된 배경을 좋아했다. 남자인 친구들, 특히 그중에 나는 선선한 연못이나 흐르는 물 근처의 경치를 즐길 수 있는 쉼터를 선호했다. 가벼운 오전의 공기 속에서 두, 세 시간을 돌아다니고 나니 아무리 '더 부차드 가든'이라 해도 텐션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는 말없이 서로 통하여 아이스크림이 있는 가든 내 매장으로 일사불란 움직였다. 이탈리안 가든은 로마의 느낌이 구조적으로 물씬 풍기는 곳이었는데, 아이스크림 매장을 이 곳에 배치시켜 '오후 로마'에 온듯한 달콤한 기분이 오감을 통해 느껴졌다.


아이들과 함께 온 현지인st 가족들이 관광객만큼 많이 있었다. 맑고 귀여운 그 아이들은 경계 없는 자연에서 자라고 있어서인지 꽃에 대한 감정이 부드러워 보였다. 사실, 나의 어렸을 적 기억만 놓고 보면 어린아이를 붙잡고 사진을 찍는 어른들의 모습이 여전히 익숙한데, 그 부자연스러운 기억들은 여기 주렁주렁 피어난 꽃 열매 앞에서 빠르게 녹아내렸다.


만지고 냄새를 맡고, 피부에 문지르며 꽃에 대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에 미소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과 간이매점에서 사 온 스낵들로 점심의 문을 열었다. 유럽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화창한 하늘과 햇빛 아래, 그리고 이질감이 전혀 없는 잔디 위의 밍기적거림은 공연을 보기에 매우 적절했다. 돗자리라는 각자의 공간에서 함께 온 이들에게 온전히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곳에서 보통의 일이었다. 

 



검은 도화지에 펼쳐진 색의 향연, 불꽃놀이


꽃을 따라가다 보면 새로운 것들이 있었다. 부차드 가든에서 그것들은 연출된 아름다움이었고, 이 곳을 떠난 다음부터는 연출되지 않은 아름다움이었다. (숲과 호수로 시작해 어느 날부터는 낯선 동네가 되었다.) 날이 저물더니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대규모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움직임에 우리는 '불꽃놀이'가 곧 시작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눈치를 챈 친구가 나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꽤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반박자 빠르게 걸어갔다. "세상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구나" 할 정도의 인산인해를 뚫고 도착한 곳은 넓고 경사진 들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인위적인 돗자리가 여기저기 깔려있었다. 


중력을 거스르는 쏘아 올림을 명당에서 보기 위해 사람들의 두뇌싸움이 이어졌다.

이 소리 없는 전쟁을 지켜보는 동안 나는 파스텔의 환상에서 잠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특별한 날에만 찾게 되는 꽃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생각해보면 '표현'과 '기념'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꽃은 이 한반도에서 감사와 사랑, 이별과 축복의 의미로 삶의 순간순간 사진에 담겨있고, 대체로 소모적이며 일시적인 매개체로 타인에게 '사용'된다. 


더 부차드 가든 그리고 빅토리아의 생활을 돌이켜 보았을 때 꽃은 사람과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행복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이 것은 공간적인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시각적인 의미가 강하며, '사랑'이라는 것과도 관련지을 수 있다. 마당에 있는 어떤 꽃에 사랑을 주면 그것은 집을 들어오고 나감에 행복감을 가져다주고,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또한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가정에서 가정으로 방문할 때, 꽃이 보통의 선물이 되면 이웃 간의 관계가 좋아지고 교류가 많아진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되었다. 


빅토리아라는 곳이 화사한 기후와 섬 도시의 특징 때문에 꽃에 대한 태도가 자연히 가까워졌다고 할 수 있으나 한반도라고 해서 멀어야 하는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꽃이라는 것을 플로리스트와 화훼 관련 종사자만이 다루고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일상에서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커져가는 여러 갈등이 거짓말처럼 누그러들지 않을까 희망을 가진다. 그리고 이 것은 (유현준 건축가의 말을 참고하여) 도시계획과 건축방식이 달라졌을 때 비로소 실천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최근 5월의 특별한 날마다 지하철 입구와 번화가에서 반짝 구매되고 소비되어 사라지는 것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까지 꽃은 계절의 영향과 경제 상황을 많이 받는 '상품'이라 해도 너무 짧게 버려지는 것에 회의감을 감출 수 없었다. 사회가 급변하고 있는 요즘,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의 논의에서 '공원'과 함께 한번 나누어 볼 수 있는 주제가 되었으면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