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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our Seo May 27. 2020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가다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코위찬 호수'

빅토리아에서 약 5시간 정도 차량으로 이동하면 '코위찬 호수'라는 아름다운 곳이 나온다. 코위찬 호수는 도심에서 북서쪽에 떨어진 거대한 호수로, 빅토리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캠핑장소다. 캐나다 홈스테이 가족이 해마다 두 번 이상 가는 이곳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캐나다의 대자연으로부터 밀려오는 감동과 화의. 그리고 그 순간들 마다 빅토리아의 이웃들이 주변에 함께 있었다. 우리나라의 80년대와 비슷한 그들의 캠핑 문화는 우리의 것과, 직선적인 형태에서 차이가 있었으나 아날로그적 방식에서 매우 흡사했다. 



홈스테이 집에서 호수로 이동할 당시 고속도로를 이용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한국의 고속도로와 버금가는 답답한 정체현상을 맛보았다. 끝없이 보이는 중형급 이상의 차량들, 극단적으로 단조로운 창 밖의 풍경,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고난도의 영어 음성. 따스한 햇살이 내리는 오후의 차 안에서 나는 이 3단 콤보를 맞고 한 동안 기절해있었다. 


'덜커덕 덜컥 '


매우 큰 진동이 시트 위로 전해졌다. 그 흔들거림은 차량의 완충장치를 가볍게 무시했다. 바퀴와 돌멩이 사이의 마찰음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잠에서 빠르게 일어날 수 있었다. 운전자 '조이'에게 기상 환영 인사를 받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리는 어느 비포장 도로 위를 달리고 있었다. 양 갈래로 끝없이 나무들이 나 있었다. 그 크고 굵은 나무들은 참으로 신비로웠다. 어찌나 크던지 조수석 창 가까이 다가가 위로 올려다봐야 했다. 그래도 끝이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무의 외형을 이루는 선들은 한국의 것들과 비슷하지 않아 신비로웠다. 그래서 계속 쳐다보아도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나는 이 기다란 흙길을 달리며, 마음 한편에 감추고 있던 '캠핑에 대한 불편감'을 날려버렸다. 


"내 아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 캠핑을 와서 놀란적이 있었어. 숲 속에서 아침을 맞은 어느 날, 나에게 큰일이 생긴 듯 급하게 달려왔었지. 처음에는 별일이 아닌 줄 알았어. 그런데 겁에 질린 표정의 아이가 자신의 텐트 앞에 무언가가 있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래서 같이 걸어가 보았지. 근데 웬걸, 정말로 큼지막하게 파인 웅덩이가 하나 생겨있었어.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곰 발자국이더라고! 그 이후로 곰의 흔적을 또 본 적은 없었지만, 우리가 지금 가는 캠핑장까지 이렇게 곰이 내려오기도 했었어. 하하."


친근한 인상의 아저씨 한 분이 캠핑장 입구에 있었다. 누가 봐도 산림과 관련된 일을 할 것 같은 옷차림의 그는 조이와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간단한 질문 몇 개를 건넸다. 그것들은 보안과 안전을 확인하는 사항으로, 일상적인 밝은 톤의 앞선 대화와는 철저히 구분되었다.


단호한 그의 말투에서 직업을 넘어선 공동체 의식이 느껴졌다. 이튿날, 산의 고지대에 올라 나무를 실어야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도 산림 경찰들을 만났었다. 


그들은 캠핑장소와 조금 떨어진 지역에서 우리를 목격하고 빠르게 출동한 듯 보였다. 

먼저, 같은 식으로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밀렵이나 불법 행위의 여부를 확인하였다.

곧이어 녹색의 긴장감이 사라지고 두 제복의 남자들은 발길을 돌렸다.  


나는 캐나다 생태환경이 온전히 유지되는 이유를 '캠핑'에서의 간접 경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도착하자 눈에 익은 사람들이 환영의 손짓을 보냈다. 선발대의 사람들은 미리 적절한 공간을 선정해 장비를 배치시켜 놓고 있었다. 그들은 캠핑카와 텐트로 내부의 경계를 만들었고, 천막과 바비큐 장비를 이용해 캠핑의 분위기를 한껏 올려놓았다. 야외이지만 안정감이 느껴지는 그 공간에서 나는 '지붕과 벽을 떼어낸 집'의 느낌을 받았다. 


어떤 면에서는 집보다 더 좋았다. 

거실의 역할을 하는 공간을 걸을 때마다 잔 나뭇가지들이 사그락 밟혔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여유를 즐길 때면 기둥 역할을 하는 나무에서 산 내음이 풍겨왔다.

    

점심을 먹고 호수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의 정취에 사람들은 그동안의 삶의 얘기들을 나지막이 털어놓았다. 진지하지 않고 경쾌한 톤으로 한 명씩 자신의 일들을 늘어놓는 그들에게 나는 부러운 감정이 들었다. "나도 친한 사람들과 이런 곳을 일 년에 몇 번 찾아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럴 수 있다면, 휴가라는 것을 정말 휴가답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되는 대화에 청중으로 함께 있던 나와 홈스테이 친구는 맥주를 꺼내 들었다. 한 모금을 들이켜고 한 모금을 또 들이켰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쌓여있던 '굳게 고인 감정'들이 황혼의 대자연을 배경으로 끓어올랐다. 





우리나라의 도시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연휴가 시작되면 도시의 혼잡함으로부터 멀어져 색다른 장소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 장소가 휴양지이든 놀이시설이든, 우리는 그곳에서 도시의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그것도 더 많은 도시의 사람들을. 코위찬 호수를 다녀온 후 잊고 있던 진정한 쉼을 다시 알게 되었다. 한국사람들에게 익숙해져 버린 '비교의 쉼'이 변화되어야 한다면 이러한 방향으로 일깨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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