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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mour Seo Jun 10. 2020

김치 가족

두 온기의 김치볶음밥 그리고 김치전

#1-1 


노란 아침이 밝았다. 오전의 빛이 나무 블라인드 사이로 들어왔다. 어디쯤에 존재하는 이불로 손을 뻗었다. 가림막을 만들었다. 약간의 노동을 하게 된 것에 짜증이 났다. 격렬히 발버둥 쳤다. 자정이 넘어섰다. 신이 난 태양이 계속 귀찮게 굴었다. 실타래를 견고히 만들었다. 아늑한 그늘이 고치 속에 만들어졌다. 1차 방어전이 끝났다. 렘수면을 위해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편안한 자세를 찾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방 문 너머로 소리가 들려왔다. 위이이잉. 불편한 기계음이 거리를 좁혀왔다. 모퉁이에서 방향을 틀기 바랬지만 문 앞에 붙고 말았다.


#1-2


'덜컥'


세상의 문이 열렸다. 하얀빛이 연결된 공간을 뒤덮었다. 고치 안에서 방심하고 있던 청소골이 무방비상태로 두들겨 맞았다. 2차 방어전은 허무하게 끝이 났다. 이불을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구수하고 시큼한 냄새가 방 안으로 흘러왔다. 후각을 자극하는 유혹에 잠이 반쯤 깼다. 거실로 나갔다. 


#1-3


식탁의 빈자리에 앉았다. 멍하니 창 밖을 바라봤다. 베란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살결을 스쳐갔다. 정신을 가다듬었다. 주위를 둘러봤다. 전투를 치른 식기와 재료들이 싱크대 안에 널브러져 있었다. 주방의 주인이 가스 불 앞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헤드 셰프는 등을 보이며 마무리에 박차를 가했다. 노란 그릇 위로 빨간색 탄수화물이 담겼다. 잠시 후, 노란 단백질이 그 위를 덮었다. 식감에 감칠맛을 더해줄 지원군이 올려졌다. 하지만 나는 성이 차지 않았다. 마법의 빨간 소스를 뿌려댔다. 빨간 탄수화물을 숟가락으로 갈랐다. '촵촵' 삼켜냈다. 씹을수록 매콤하고 쫀득했다. 중독성 있는 식감에 빈 공간이 커져갔다. 김치 한 조각을 마지막 한술에 얹었다. 그릇이 텅 비어졌다. 반질거리는 바닥에 꾀죄죄한 얼굴이 비쳤다.      



#2-1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잠에서 일어났다. 이상했다. 방해공작이 없었다. 투쟁의 이유가 없어졌다. 공허함이 느껴졌다. 하늘이 저녁인 것 마냥 컴컴했다. 인위적인 조명이 거실을 밝혔다. 수동적으로 일어났다. 주방을 향해 걸어갔다. 분주한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았다. 낯선 인물이 가스 불 앞에서 팬을 잡고 있었다. 정적이었다. 손놀림이 능숙해 보이지 않았다. 맛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셰프가 어딨는지 투덜투덜 댔다. 비어있는 아무 자리에 앉았다. 눈 앞의 낯선 장면에서 시간이 느리게 흘렀다. 


#2-2


'에-취'


익숙한 그릇에 익숙한 음식이 식탁 위로 올려졌다. 붉은 탄수화물 덩이를 숟가락으로 쪼개 나누었다. 마법의 소스가 가장 많이 올라간 조각을 조심스럽게 담아 올렸다. 입으로 들어간 재료들이 제각각 느껴졌다. 두께가 있는 노란색 단백질은 보통의 맛과 달랐다. 더 부드러웠다. 따로 노는 재료들과 왜 잘 어울렸다. 배고픔을 떨쳐내기 위해 퍼올리는 속도를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기가 사라졌다. 중간 과정 없이 바로 포만감이 몰려왔다. 귀퉁이에 남겨진 일부를 두고 생각에 잠겼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포기를 표했을 때, 그것들은 맞은 편의 접시 위로 빠르게 건너갔다.  



#3-1


집안이 휑했다. 주방에 너저분한 것들이 없었다. 식기들이 제 위치에서 새로운 셰프의 명령을 기다렸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존재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일 위 칸에 올려진 통을 꺼냈다. 그리고 뚜껑을 열었다. 킁킁. 냄새가 그것이 맞았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 위에 주황색 반죽을 조심스럽게 부었다.


'치이-이익'


소리가 맹렬했다. 반죽과 프라이팬의 접면에서 일어나는 일이 궁금해져 갔다. 적당한 시점을 기다렸다. 만족스러운 한 끼를 위해 집중을 멈추지 않았다. 


#3-2


"지금이야"


손목을 놀렸다. 원판이 공중에 띄워졌다. 아래의 현장 모습이 드러났다. 맛깔나게 구워졌다. 일용직 셰프로서 만족스러웠다. 군침이 돋는 별미를 식탁 가운데에 옮겨놓았다. 자리에 앉았다. 이곳저곳에 영롱한 조각들이 박혀있었다. 어린 시절이 스쳐 지나갔다. 젓가락을 움직이는 나의 손이 느려졌다.


어린 시절, 식탁 위로 김치전이 올라오는 날, 나는 온 신경을 한 곳에 쏟았다. 바삭거리는 바깥 부분과 쫄깃한 오징어 조각을 빼앗기기 싫었다. 아버지는 그런 나를 의식했는지 한 덩이를 적절히 나누어 형과 나의 위치에 배치시켰다. 보통 나의 쪽에 한 두 개 정도 더 많이 놓였다. 그럼에도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해 그것들을 서둘러 밥에 올렸다. 나이를 먹어 연해진 젓가락 위로 싱크대 물이 흘렀다. 그리고 잘못 칠해진 추억의 색도 흘러내렸다.  




어머니는 볶음밥을 자주 해주셨다. 특별한 요리가 생각나지 않을 때,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볶음밥을 주로 먹었다. 냉장고 안의 상태에 따라 요리에 투입되는 재료들은 달랐지만 어머니표 음식은 언제나 검증된 맛이었다. 토요일 점심에는 보통 애호박과 감자가 들어간 '깔끔 볶음밥'이 제공되었다. 전라도식 김치와 참치가 들어간 '화끈 볶음밥'은 일요일 저녁에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 들어 어머니는 새로운 종류의 볶음밥을 시도하셨다. 그것은 소고기 대신 베이컨을 사용해 고소하며, 목으로 술술 넘어갔다. 나는 이 '베이컨 볶음밥'을 처음 맛보았을 때 어머니의 사랑을 알게 되었다. 항상 다른 맛의 좋은 음식을 먹이고 싶어 하시는 마음이 캐나다에서 자주 먹었던 베이컨을 보고 천천히 스며 올라왔다. 어머니는 시간이 지날수록 맛의 변화를 위해 여전히 신경을 쓰고 계셨던 것이었다. 


아버지는 간혹 집에 계실 때 볶음밥을 해주셨다. 그래서 아버지가 만든 볶음밥은 기억이 더 선명하다. 처음에는 볶음밥을 '짜잔'하고 해주셔도 숟가락을 들지 않았다. 어머니는 어디 갔냐며 투털 댔고, 어머니가 만든 음식을 데워서 먹었다. 그러다 냉장고 안조차 비어 마땅히 먹을 음식이 없을 때 아버지의 볶음밥을 제대로 맛보게 되었다. 아버지의 볶음밥은 투박하고 모양새가 어설펐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것과 비교가 되니 반 절만 먹고 일어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한 번의 계기로 생각이 변하였다.


아버지는 한 동안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김치볶음밥과 다른 음식들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첫 음식인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감정이 올라왔다. 모양새가 어설프고 맛이 조화롭지 못한 아버지의 음식에는 아버지만의 사랑이 담겨있었다. 입안에서 재료가 따로 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것들이 무엇이며, 어느 정도의 양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생각하는 좋은 것들을 사랑하는 만큼 넣어왔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식탁 위에 올라오는 낯선 음식들에 해석을 달리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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