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W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by 독특한 버라이어티

라다크를 벗어난 날, 델리를 출발하여 바라나시로 들어오는 비행기 안의 옆좌석에는 Vera라는

이름을 가진 영국인 아가씨가 앉아 있었다.


Jet Air Counter에서는 바라나시로 들어오는 하늘 위의 풍경이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던 내게는 창가석을,

그리고 창가에서 바라나시 하늘을 보고자 했던 그녀에게는 복도석을 배정해 주었다.


그녀보다 한발 늦게 탑승을 하여 티켓에 기록되어 있는 배정 좌석에 와보니 창가 쪽에 그녀가 앉아있었다.

지정된 자리에 와 항공권을 다시 확인하는 나를 보고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미안. 창밖의 풍경이 보고 싶어서 잠깐..

자리 바꿔 줄께"


... 굳이 그럴 필요 없다고, 나는 복도 쪽이 더 편하니 그쪽이 괜찮으면 그냥 앉아 있으라고...


낯선 곳 바라나시로 향하는 비행기는 그렇게 새로운 인연을 내게 마주하게 하며 델리발 국내선 공항을 이륙하였지만 비행기 안에서 그녀와 나눈 이야기는 그것이 전부였다.


새벽 5시, 영상 5도의 라다크의 공항 LEH에서 비행기를 타고 델리를 거쳐 바라나시로 향하고 있지만 몸에서 오는 고산병의 증세가 여전했기 때문에 옆자리의 승객과 더 이상 얘기를 나눌 수는 없었다.


비행기의 기장이 바라나시 도착 10분을 앞두고 바라나시의 현지 기온이 42도라는 아나운서 먼트를 하기 시작했을 때 창밖을 쳐다보던 Vera는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바라나시 공항에 착륙한 후 좌석에서 일어나 기내를 벗어나며 아무 말 없이 그 메모를 내게 건네주었다.


바라나시 공항을 나와 택시를 집어타고 갠지스가 있는 바라나시로 향하면서 Vera가 적어준 메모를 펼쳤을 때 그 메모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Do u ever stop & think that over as we're sitting here at the moment,

There is somebody dying somewhere in the world,

somebody being bone, somebody being killed in an accident,

Somebody being murdered & Somebody being married.

Do u ever stop and think that over?"


죽음에 대한 사유였다.


뜬금없는 Vera.

Vera가 품고 있을, 그녀를 인도로 떠나오게끔 만든 그녀의 사유는 무엇일까!



그러고 보니 산다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만 했지 한 번도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보지는 못했었다.

차마 그 메모가 적힌 종이를 버리지 못하고 문구에 적힌 단어 하나하나를 계속 곱씹으며 쳐다만 봐오던 어느 해 질 녘 오후, 잔잔한 바람이 이끄는 대로 갠지스강의 가트로 산책을 나오다 가트 위에 혼자 앉아 있던 Vera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바라나시에 도착하고서도 심인성으로 인한 여러 가지 고산병의 증세로 문밖출입을 삼가며 방구석에만 처박혀있던 나와는 달리 Vera는 바라나시 온 구석을 쥐 잡듯이 헤매고 다닌 듯했다.


그런 Vera는 바라나시 가트에서 사두를 만났더란다.

그리고 사두와 얘기를 나누던 가운데 그녀가 품고 있었던 인간 존재 근원에 대한 질문을 했더란다.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들은 사두가 말하더란다.

"깨어나라, 현실도 꿈이다. 생사의 이치를 알고 싶으면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라."

"사는 것도 죽는 것도 행복한 것도 불행한 것도 답은 모두 네가 질문한 그 안에 있다" 하더란다.


RIGHT NOW AT THIS MOMENT!

...


그러면 No problem이라 하더란다.






인간에 대한 혐오였다.

사람이 무서웠다.

그런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대인기피로 이어졌다.

인간을 신뢰한 대가로 내게는 구안와사와 이명의 초기 증상이 다가왔다.

날이 갈수록 육신은 피폐해져 갔고 척박한 삶은 막막하다 못해 먹먹했다.


영혼이 메말라갔다.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한 의문 따위는 없었다.

그런 것을 생각할 의식조차 없었다.

인간 존재의 근원보다는 지금 당장의 안녕이 더 시급한..

내게 주어진 삶은 각박하고 처절하며 절대 1도 녹록지 않은 시간 속으로의 여정이었다.

내 안에 있는 분노와 화를 잠재워야 했다.

그것이 인도 여행의 시발점이었다.


Vera를 만난 나는 그녀와 함께 다시 그 사두를 찾아갔다.


자기 존재의 시발점과 존재에서부터 발생되는 모든 일들이 궁금은 했다.

출생하면서부터 운명 지워지는 빈. 부. 귀. 천의 차이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고 심한 병을 앓고 태어나게 되는 것은 또한 어떠한 이치인 것인지?

무슨 인과의 법칙인 것인지?


그렇지만 사두를 만났을 때 묻지 않았다.


말을 많이 할 수는 없었다.

라다크에서 평지로 내려왔지만 아직도 호흡이 힘든 고산병의 후유증 탓이었다.


내가 지금 당신한테 오직 단 한마디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당신은 나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겠어?"




사두는 우리를 하루에도 수십. 수백 망자들의 육신이 태워지고 있는 마니까르니까 가트로 안내했다.

사두가 말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 매일같이 이곳에 모여들어 불태워지는 시신을 바라보며 희희낙락들 하고 있지.

자기 자신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것들이 서로가

잘 났다고 쓸모없는 감정싸움을 하고 매일같이 화를 내며 말이야.

모든 것이 부질없다고 해도 몰라. 못 알아들어.

그저 현존할 수 있다면 그것 하나만으로 끝나는 일인 것을."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신에게

나는 나의 신에게...

Let it be, So be it.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현존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 때문에 현존을 해야 하는 것인지,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고통속에 놓여있을때 그때 내가 현존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를 못하였다.

그저 아무런 고통 없이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이토록 간절하고 감사할 일인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아무런 고통 없이 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그 이전의 자리.

에고가 끼어들어오지 못하는 그 자리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그때까지도 그 사이비사두의 말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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