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두를 만나고 숙소로 돌아온 지 사흘이 지나고 있었지만 이른 아침 새벽이면 잠에서 깨어 매일 아침 루틴처럼 작은 보트를 타고 망자의 시신을 불태우는 마니까르니까 가트까지 한 바퀴 둘러보던 일도 멈추었다.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는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바라나시에서 삶과 죽음을 대하는 이 곳 사람들의 하루하루 일상이 궁금했었지만 정작 도착한 이곳에서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내게 다가온 바라나시는 아니 갠지스는 정말이지 그 사두의 말마따나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바라나시를 방문하는 수백, 수천의 여행객들과 그들을 노리는 야바위꾼, 삐끼들만이 드글거리는 곳이었다.
여행자 거리의 뒷골목, 식당의 벽에 붙어 있는 전 세계에서 인도로 여행을 떠나온 실종자를 찾는 가족들의 Missing벽보를 보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여행자들끼리의 대화중에 "낯선 인도인이 주는 음료는 절대 마시지 말라"는 말은 하루가 멀다 하고 듣는 인도 여행 철칙 중의 하나가 되었다.
기차여행 시, 1등석 침대칸을 구입했는데도 아시안 여성이 봉변을 당했다는 이야기.
말이 좋아 사파리 투어이지 사막으로 낙타 타러 갔다가 달밤에 가이드가 건네준 음료수 마시고 패가망신했다는 흉흉한 이야기.. 등등.
식당에서, 그리고 여행자 숙소의 복도에서 매일같이 듣게 되는 인도 여행 중인 기경험자들의 카더라 통신은 하나같이 하드코어 하기만 했다.
그러나 카더라 통신이 난무하는 바라나시에서 그러한 여행객들이 있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 바라나시 주민들은 매일같이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갠지스 강의 성수를 떠다가 저마다의 신전에서 기도를 올리며 하루를 시작하고, 그 강가에서 목욕을 하고 빨래를 하고 수영을 하고 또 명상을 하며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은 이방인의 눈을 아랑곳하지 않고 저마다의 삶의 방식으로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메마른 장작으로 층층이 에워싸인 그 화장터 역시 오늘도 여전히 어김없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바뀌는 것은 오직 하나,
망자의 시신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좀 더 좋은 곳에서 보기 위하여 그 화장터 주변의 낡은, 그러나 높은 건물로 향하는 골목길의 입구에서 오늘도 여전히 여행객들에게 폭력도 불사할 태도로 건물의 옥상으로 통하는 통행료?를 요구하는 바라나시 건달들에게 순순히 통행료를 지불하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여행객들만이 하루하루 바뀌어 가는 단순 무료한 일상이었다.
마니까르니까가트는 사두와 함께 방문한 이후로는 다시는 발길을 향하지 않게 되었다.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스스로의 반성과 고찰이 있다면 그도 감사할 일이리라.
그러니 그저 스쳐 지나온 여행이 아니라면 더 이상 바라나시에 묵을 일은 없을 것이었다.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말은 사실 바라나시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삶, 아니 죽음은 다만 우리가 받아들이고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늘 우리 곁에 아주 가까이 공존하고 있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일 것이었다.
굳이 화장터까지 가서 망자들의 시신을 보지 않더라도 아주 가까이에서는 내가 정말로 죽을 개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극한 고통이었고 그래, 정말이지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맥박과 호흡은 지난주보다는 많이 부드러워졌지만 숙소의 다른 여행객들과 대화라도 하려면 몇 마디 못하고 이내 짧아지는 호흡.
끝이 없는 두통,
그리고 라다크에서부터 부어있던 얼굴과 손, 발의 부기가 아직 가라앉지 않고 있어 문밖출입을 안 하고 방에 틀어박혀 꼼짝을 안 하니 Vera가 찾아왔다.
며칠 안 본 사이 안색까지는 창백해진 몰골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더니 병원을 가자고 다그치며 부축해주는 그녀의 손을 잡고 함께 릭샤를 집어탔다.
수많은 외국여행객이 바라나시에 찾아오지만 너처럼 고산병으로 바라나시에서 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는개원이래 네가 처음이다.
"죽음의 공포에서 왔던 일종의 마음의 불안 탓도 있었겠지만 이제 고산병의 증상이 더 심하게 악화될 일은 없을 거야. 다만 이제는 심인성에서 오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너는 이제 괜찮을 거야, 그러니 마음을 편하게 하고 푹 좀 쉬어라 걱정하지 말고"
바라나시로 들어온 지 열흘이 다되어가는데도 호흡이 이렇게 힘이 든 것은 의사 말마따나 "공포에서 오는 마음의 불안으로 인한 심인성의 문제"도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의사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호흡이 계속 힘들었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 릭샤를 타고 함께 돌아오는 길 내내 Vera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꽉 쥐어 주었다.
여행길에서 스쳐 지나며 만난 낯선 이방인에게 베풀고 있는 그녀의 따스한 온정이 느껴졌다.
"같이 식사라도 하고 들어갈까, 약도 먹어야 되는데"
병원까지 동행해 준 감사의 의미로 Vera와 함께 여행자 거리의 뒷골목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주문하고 사방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 며칠 전 식당을 방문했을 때 처음 보았던 그 실종자들의 벽보가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당신이 내게 묻던 그 말이 생각나네! 바라나시로 들어오던 그 날, 비행기에서 내게 묻던 그 말
당신은 언제부터 죽음에 대한 사유를 하게 된 거야?"
엊그제도 보았던 그 Missing 벽보.
시커멓게 때가 묻은 셀룰로 테이프를 부친 그 낡은 벽보 속, 실종자의 사진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지만
아무런 느낌이 일지 않았다.
정작 내가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을 참으며
그 벽보를 마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벽보를 바라보고 있던 Vera와 눈이 마주쳤다.
빙그레 가벼운 눈웃음을 지을 뿐 아무런 대답을 안 하는 그녀가 내게 물었다.
"바라나시에 언제까지 있을 거야?"
"글쎄, 생각 안 해 봤는데.."
"이곳에 오면 생각이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네. 이곳에 오래 머물게 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래? 그 말에는 나도 동의를 해.
나도 바라나시가 힘들어.. 그런데 몸이 좀 나아져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
라다크와 바라나시 딱 두 곳만 생각하고 나온 길이었거든. 이제 어디로 움직여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래, 어디를 가든 먼저 바라나시를 떠나는 사람이 say good bye 하는 거다"
" 그래, 난 아직 멀었어, 오늘 약 타 온 것만 해도 1주일치야"
어쨌거나 바라나시에 계속 있을 계획이라면 숙소를 옮겨야 했다.
숙소를 옮기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두 종류의 동물들 때문이었다.
원숭이와 코브라..
바라나시에서 원숭이에게 물어 뜯길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
갠지스강이 내려다보이는 굳이 좋게 표현을 하자면 리버사이드뷰? 의 숙소였다.
하지만 천장에 붙어있는 자그마한 팬 하나로 이제 곧 50도를 육박하려고 하는 바라나시의 더운 날씨를 감당하는 것은 벅찬 일이었다.
해 질 녘, 잔잔한 바람이 불던 날 환기를 위해 방안의 창문을 열어놓은 것이 화근이었다.
바나나 한 다발이 무어라고.
그날, 열린 창문으로 들어온 그 자식과 내가 내 돈 주고 산 바나나를 두고 피 튀기는 쟁탈전? 이 벌어졌다.
바나나를 그것도 한 다발 모두 잡고 튀던 그 자식 아니 그 새끼는 내가 던진 책에 뒤통수를 얻어맞고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내게 한판 붙자고 대들기 시작했다.
처음 생각은 겁을 주면 도망가겠거니 였는데.
바나나를 들고 튀던 그 새끼는 한대 얻어맞더니 마치 막 다른 골목에 처한 쥐새끼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손에 들고 있던 바나나를 바닥에 팽개치더니 그냥 죽자 사자 대드는 것이었다.
웬걸. 원숭이가 그처럼 포악한 동물인 줄은 미처 몰랐었다.
작고 가느다란 하지만 긴 리치를 가진 놈의 몸놀림은 날렵했다.
괴성을 질러대며 방안의 벽을 타기 시작한 녀석은 마치 매트릭스의 한 장면처럼 중력을 거스르며 멈추지 않는 360도 무한 회전의 서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방안의 벽을 몇 바퀴나 돌았을까!
무중력 쇼를 보여준 녀석은 이윽고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내게 집어던지더니 사전협의도 없이 제멋대로 격투 종목을 바꾸어 버렸다.
녀석은 사정거리를 좁히더니 내게 권투가 아닌 육박전을 하자고 덤벼들기 시작했다.
녀석의 스텝은 워낙 빨라서 사정거리 안에 가두고 잡을 수도 없었지만 아니 오히려 내가 그 녀석의 사정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리고 녀석은 치사했다.
꽥꽥 질러대는 그 녀석의 고함소리는 원군을 요청하는 구원의 음성이었다.
잠시 후 그놈 조직의 일원으로 보이는 원숭이 무리 두 마리가 열린 창문으로 멤버 체인지도 없이 구원등판?을 했다.
방안은 숫적으로 열세에 몰린 1:3 인간과 유인원의 태그매치 시합장이 되어버렸다..
안팎으로 동물들에 의한 수난이었다.
방 안에서 원숭이 무리들하고의 영역싸움이 있었다면 문밖에서는 강제적으로 매일같이 마주쳐야만 하는 코브라와의 대면이 있었다.
숙소의 좁은 출입문 앞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매일같이 코브라 쇼가 펼쳐졌다.
코브라의 주인 놈은 인도인이었는데 그놈은 내가 묵고 있는 숙소의 좁은 출입문 앞에 매일 아침 좌판을 깔고 앉아 하루 종일 피리를 불어대며 광주리 안의 코브라를 불러 젖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쇼타임도 하루 이틀이고 한두 시간이지 꽈리를 틀고 광주리에 들어가 있는 코브라에게는 강제노역에 다를 바 아니었다.
평균기온 45도가 넘어가는 바라나시 뒷골목에서 하루 종일 주야장천 주인 놈의 피리소리에 맞춰 흐느적거리며 쉐이킷, 쉐이킷 쇼를 해주어야 하는데 더위를 먹은 코브라는 미동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문밖출입을 하려면 항상 그 코브라가 있는 광주리를 지나쳐야 하는데 쇼타임, 브레이크 타임 구분 못하고 주인 놈의 말을 계속 거역하고 있는 코브라는 회초리를 대신한 주인 놈의 피리로 매일같이 머리를 두들겨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