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인가

by 독특한 버라이어티

너는 누구인가.

고산병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가늠조차 못하며

한겨울에 해발고도 3.500m 라다크 고지에 겁도 없이 원웨이로 들어가 바로 병원으로 실려간 자.

원숭이 떼에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해 집단 다구리를 당한 자.

런던에서, 스위스 르 부브레에서,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뱅크 어카운트 오픈과 해지를 해보았지만 인도에서 어카운트 해지를 하면서 수수료?를 삥 뜯기는 자.


섭씨 50도를 육박하는 살인적인 폭염의 절정으로 치솟고 있는 바라나시에서 고산병 치료를 하고 있는 바보.

시도 때도 없이 전기가 셧다운 되는 숙소에서 원숭이가 무서워 창문도 열지 못하고 스프링이 다 나가버린 매트리스 위에 누워 비지땀을 흘리며 바라나시의 폭염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자.

너는 누구인가.


세상 모든 것이 정말 그저 내 마음이런가.

그냥 보고 그냥 듣고 그냥 느끼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무런 생각하지 말고 그저 보고 있으란다면.. 지금 이 상황에는 정말 아무 할 말이 없어진다.

할 말이 없는 그 의식 상태. 참나.


피골이 상접하여 문밖출입도 제대로 못하며 그나마 식사대용으로 구입했던 바나나까지는 원숭이에게 삥 뜯기고 배를 곯고 있는 자.


불성이라는 것은 원숭이에게도 있는 것인가.




그것은 Compulsory 였다.

몸이 힘들기도 했지만 문밖출입을 하려면 어김없이 무조건 마주쳐야만 하는 그 코브라.

그 때문에라도 외출을 삼가했지만 독한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한 끼 밥은 먹어야 했다.

그렇게 찾아간 바라나시 골목길의 허름한 식당에서 만난 스님.


SITA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바라나시 여행자 골목의 변변찮은 식당 중에서 그나마 아시안의 입맛에 맞는 식당을 고르라면 손에 꼽을 것이었다.

그 손에 꼽을 식당에서 만난 스님이 부다가야라는 곳으로의 동행 제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사님. 아마도 시절 인연이 처사님을 이곳으로 이끈 듯합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순례의 여행이라 하지요. 저는 부다가야로 가려합니다.
그곳은 불교 4대 성지중의 한 곳,
부처님이 6년의 고행 끝에 깨달음을 얻은 곳이랍니다.
부다가야로 길을 같이 나서겠습니까?


스님은 동안거 해제후 순례를 나선 길이라 했다.


스스로를 불교신자라 말할 수 없는 내게 부다가야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행선지였다.

부다가야는 불교신자로서 성지순례를 하는 자가 아니라면 방문을 할 이유가 전혀 없을만한 그러한 곳이었다.

하지만 인도로 떠나오기 전 생각해두었던 두 곳의 방문지인 라다크와 바라나시는 내게 더 이상 머물 것을 권하지 않았다.

바라나시는 이미 섭씨 50도를 치닫고 있었다.

바라나시는 이미 나를 보내고 있었다.


여행의 길목에서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한 경험이 있는 자들과 여행루트 또는 방향이 맞으면 서로 목적지까지 동행이 되기도 하는 것은 혼자 하는 여행의 무료함과 낯선 외지에서의 두려움을 덜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인도를 방문하는 그 많고 많은 여행객들 중에 스님과의 동행이라니.

어느 누가 이 넓은 인도 대륙에서 동안거를 마치고 순례 나온 스님과 동행이 되어 기차 타고 부다가야를 갈

플랜을 짜고 여행을 나왔겠는가.


그냥 무작정 떠나온 길이었다.

하지만 뒤늦은 생각을 해보니 그저 떠날 시절 인연이 되어 떠났어도 스스로 몸과 마음을 단속하지 않으면

그 길은 순례의 여정이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의 단속을 하며 스스로를 살피며 떠난 길에서 스님이라는 동행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바로 릭샤를 집어타고 바라나시 역으로 가 부다가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게 되었다.




그리고.

부다가야로 향하는 기차표를 예매하고 숙소로 돌아온 날.

바라나시를 떠나기 전에 갠지스강의 가트 위에 앉아 있는 Vera를 찾아갔다.



Vera.

바라나시에 들어와 겨우 한 명 말을 섞은 Vera와도 서로가 처음부터 길동무가 되지는 않았다.

목적지도, 체류 일정도, 어디서 왔는지, 심지어 이름조차도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40도를 넘어가는 바라나시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델리 도메스틱 공항의 게이트에서부터 Vera는 내가

눈에 뜨였다고 했다.

두터운 한겨울 점퍼를 걸치고 병색이 완연한 환자의 모습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내 모습이 무척 신경이 쓰였다고는 했다.

단지 고산병 때문만은 아닌 무언가 사연이 있는 사람으로 보였다고 했다.


그렇게 먼저 다가와준 Vera.

프로토콜이 맞으면 그냥 길에서 만난 친구가 더 소중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강 위에는 목욕을 하는 사람, 빨래를 하는 사람, 수영을 하는 사람, 또 물에 잠기어 명상을 하는 사람 등 별의별 인간군상들이 다 모여있었다.

언제 다시 오겠노라 차마 약속할 수 없는 바라나시에서 이제 언제 또다시 보자 말할 수 없는 Vera와 함께

바라나시의 마지막 날, 해가 모습을 감추기 전 보트를 탔다.


가트 위에 떠있는 수많은 보트들 중에 어느 보트를 타더라도 코스는 똑같았다.

보트는 망자의 시신을 화장하는 마니까르니까가트를 반환점으로 돌아오게 마련이었는데 그날 마니까르니까가트 앞에서 보트를 한참이나 멈추었다.


죽은 자의 시신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가트 위의 그 풍경은 Vera에게도 나에게도 이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저 바라나시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보트 위에서 처음 듣는 폐인이 되어버렸다는 Vera의 이야기가 더 충격이었다.


노젓기를 중지시키고 장작불에 시신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Vera가 자신의 뉴욕 이야기를 해주었다.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단체 알 카에다는 아메리칸항공 소속 여객기 2대,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여객기 2대 총 4대의 민간항공기를 하이잭 했다.

4대의 민간항공기를 하이잭 한 이슬람 테러단체는 뉴욕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워싱턴 D.C의 국방부 펜타곤 등으로 항로를 변경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CNN을 통해 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으로 돌진하여 건물을 덮치는 화면이 전 세계의 TV 모니터로 송출되었다.


아침 8시 46분 아메리칸항공 소속 여객기(AA11)는 시속 790km의 속도로 WTC월드트레이드센터 제1건물 북면 93층과 99층 사이로 돌진하여 건물에 그대로 박혀버렸고 이어 아침 9시 3분 유나이티드 항공 (UA175)이 시속 950km의 속도로 WTC월드트레이드센터 제2건물 77층과 85층 사이에 충돌하였다.


국가 간 대립하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의한 이슬람 조직의 테러로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전대미문의 비행기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한 날, 미국의 심장, 뉴욕이 뚫리며 Vera도 모든 것을 잃었다.

세계라는 울타리 안에서 종교와 이념이 다른 국가 간의 첨예한 대립의 양 칼을 세운 결과였다.

바라나시 사두의 말마따나 모두들 자기 자신이 더 잘났다고 우겨대는 저잣거리 속, 악의 세계의 극악무도한 비행기 자살폭탄 테러였다.

알카에다 조직에 의해 벌어진 비극과도 같은 이날 참사로 인해 뉴욕에서만 2,996명의 사망자와 최소 6,000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당시,

결혼한 지 1년도 체 안되었던 Vera는 그 테러로 인해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다고 했다.


상실이라는

짧은 한마디의 단어로 그녀의 지나온 삶을 멋대로 재단하고 규정지어버릴 수는 없었다.

직접 겪어보지 못한 자들이 미루어 짐작하는 그 상상 이상의 커다란 충격이 쓰나미처럼 그녀에게 밀려왔다고 했다.

그리고 사고 후 그녀에게 일어난 후유증.

Vera는 충격으로 뱃속의 태아까지 사산하게 되었다고 했다.

마음에 생긴 내상의 깊이는 쉬 아물 수 있는 그런 상처가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남편과 세상 빛도 보지 못한 뱃속의 아이를 잃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었다.

끔찍한 테러의 현장에 있었던 Vera는 그날 이후 폐인이 되었었다고 했다.

Vera는 술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한시도 잠을 이룰 수 없는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결국엔 알코올 중독이 되어 버렸다고 했다.




그제야 나는 온전히 이해를 하게 되었다.

바라나시로 들어오던 비행기 속에서 뜬금없이 묻던 그녀의 질문세례가 어떤 의미에서의 질문이었는지를.

그녀는 계속 죽음에 대한 사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Vera는 잘 견디어냈다.

그녀는 잘 버티어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버티어 내야 할 시간이었다.

해가 떨어지고 있었다.





"행운을 기원한다"는 의미를 지닌 꽃등을 파는 왈라가 보트를 끌며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꽃등을 하나 사서 짧은 마음속 기도를 하며 갠지스의 물 위에 살며시 띄워 놓았다.

무엇을 위한 행운의 기원을 해야 할지 Vera가 물었다.


"이 힘든 여정의 끝에는 당신의 아픔이, 슬픔이 치유가 되는 그런 시간이 되기를..."


이제부터는 서로가 견디어내야 할 시간들이었다.


바라나시에서 Vera와 나는 서로가 각자 다른,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바라나시.
삶과 죽음이 공존한다는 그 도시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 사이,
고통 또한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픔을 느끼는 자가 있으나 그 아픔도 그 고통도 그저 대상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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