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곁으로

by 독특한 버라이어티

룸비니, 사르나트, 쿠시나가르와 더불어 세계불교 4대 성지의 하나인 부다가야.


바라나시에서 스님과 함께 기차를 타고 부처님이 성불하신 곳, 부다가야가 위치한 인도 북동부 비하르주의 가야역으로 들어왔다.


가야역에서는 오토릭샤를 타고 마하보디 사원이 있는 곳까지 약 15km의 거리를 들어오니 어느새 릭샤의 주변으로 이 거리의 걸인 아이들이 구걸을 하기 위해 떼를 지어 몰려들기 시작한다.


비하르주는 인도에서도 가장 극빈층인 빈민들이 많이 거주하고 여행객들에게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불자들에게는 인도를 방문하였다면 반드시 가보아야 할 너무도 유명한 성지이기에 해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방문하는 순례객들이 끊이지 않는 곳이라 하는데 불자도 아닌 나는 무슨 인연으로 바라나시 뒷골목 어느 외딴 식당에서 만난 스님과 동행이 되어 이곳을 찾게 된 것인지...


부처님의 4대 성지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이 있는 곳.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순례객들과 수행자들이 찾는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

마하보디 사원이 있는 가까운 거리에 숙소를 잡고 여정을 풀은 스님과 나는 바로 마하보디 붓다의 신전으로 향하였다.


입구를 들어서면서부터 신성한 기운이 감지되는 사원 내에서는 곳곳에 자리 잡고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스님과 염불선을 하는 스님,

그리고 부처님의 기운을 받으며 명상에 들어가는 여행객들의 행렬이 하루 종일 이어지고 있었다.


언어와 인종을 초월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불자들과 스님들의 모습, 그 모습 그대로 하루 종일 이어지는 사원 내의 풍경이다.



보리수나무 그늘 아래 자그마한 상을 펴놓고 불경을 읽는 티베트 스님, 절판을 가져다 놓고 오체투지를 하는 스님.

그리고 그런 스님들 사이로 저마다 편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

사원의 경건한 기운 속에서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각자 저마다의 사색을 즐기며 그 시간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스님과는 기차를 타고 동행을 하여 이곳 부다가야까지 같이 들어왔지만 부다가야에 머무는 동안, 서로의 일정은 간여하지 않은 채 스님은 스님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알아서 편한 시간에 일어나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곤 하였다.


하지만 하루의 대부분을 늘 사원에서 보냈기 때문에 약속이 없었어도 항상 사원에서 만나곤 하였는데 만나면 같이 식사를 한다거나 차를 마시거나 하며 하루 일과의 마무리를 하곤 하였다.


그렇게 스님은 내게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으셨다.

스님은 단지 혼돈의 도시 바라나시에서 부처님이 득도를 하셨다는 이 곳, 부다가야로 나를 이끌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깨달았다.

부다가야의 마하보디 사원은 누구나 올 수는 있지만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나를 깎아내는 시간의 첫 단초를 마련해 준 그 이끌음.


그래서 나는 덥고 비좁았던 그 한여름, 스님을 처음 만났던 바라나시 여행자 거리의 뒷골목 식당을, 아니 그 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이른 아침 기상을 하면 바로 마하보디 사원으로 향하곤 하였다.


마하보디 사원 경내에 있으면 공간이 주는 어떠한 힘 같은 것이 느껴지곤 하였는데 나는 사원에서 느껴지는 그 기운이 좋았다.

사원에 들어서면 왠지 모를 경건하면서도 고요한 그러면서도 무언가 맑고 강력한 기운의 흐름이 느껴졌는데 그래, 이곳은 바로 붓다의 신전이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공간이 품고 있는 어떤 신성하고 강력한 기운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그 엄숙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의 마하보디 사원 안에서는 매일같이 순례객들의 순례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그 넓은 사원의 경내에 그냥 앉아 있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몰랐었다.

그저 사원의 경내 한 귀퉁이에 앉아 오고 가는 사람들의 행렬을 구경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사원의 경내에는 절판을 깔아놓고 오체투지를 하는 티베트 스님들 그리고 법당에서는 법당에 서대로 자리를 잡고 절을 하는 순례객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보면서 그냥 자연스레 그들처럼 절을 따라 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을 따라 절을 하게 된 특별한 동기나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절을 하면서 수없이 떠오르는 망상 중에 문득 그런 생각은 들었다.


무언가 있을 것만 같았다.

무슨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그저 당연한 것인 줄로만 알고 감사한 마음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삶을 늘 불 만족스러워만 했다.

절을 하는 가운데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루 오백 배.

부다가야에 있는 1주일 동안 매일같이 절을 하며 그렇게 매일같이 까닭 없이 흐르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스님은 부다가야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도 순례길의 마지막 여행지로 다람살라로 향할 것이라 하셨다.




다람살라.

보다 엄밀하게 얘기를 하자면 히마찰 프라데시주의 맥그로드 간즈.

해발고도 1,800M에 인접한 산속 동네로 뉴델리 빠하르간지에서 버스를 이용하여 꼬박 12시간이 걸리는 곳.


다람살라는 중앙광장 맥그로드 간즈의 아랫마을로 지역의 범위를 규정할 때 맥그로드 간즈보다 넓은 지역단위의 지명이라 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윗마을 아랫마을 할거 없이 통상적으로 다람살라라 명명하기도 한다.


기록에 의하면 1950년 10월 이후, 중국 인민해방군이 티베트를 침략 주둔하게 된다.

당시 중국 인민해방군의 침략으로 인해 거의 100만 명에 가까운 죄 없는 티베트인들이 학살을 당했으며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 인민해방군에 의해 티베트 내에 있는 수천 개의 (약 6,000개) 사원을 파괴하며 정치적, 종교적 탄압을 하였다.


그로 인해 인민해방군의 지배 아래 있던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서 티베트 동란이라 일컫는 반중국. 반공산주의의 민중봉기라 일컫는 독립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는데 이러한 티베트인의 민족 봉기를 반란으로 본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인의 정신적, 정치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 14세를 암살하려는 모의를 하게 되고 당시 이를 의심한 티베트 주민들의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어나게 되었다.


티베트의 민중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9만 명에 가까운 티베트인의 유혈사태가 발생하게 되고 티베트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라싸를 탈출하여 보름이 넘는 여정 끝에 인도 국경을 넘어오게 된다.


당시 달라이 라마는 인도 정부에 티베트 망명자들을 위한 정착존을 세울 토지를 요청하였고 1959년 4월 29일 인도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 무수리에 ‘달라이 라마 성하의 중앙 티베트 행정부’라는 이름의 망명 정부를 수립한 이후, 근거지를 인도 북서부 히마찰프라데시주 다람살라의 강첸 키송(티베트어로 ‘논의 나라의 기쁨의 골짜기’)으로 옮겨 현재에 이른다.

/출처 : 중앙일보. 중국, 이번엔 티베트 중국화 겨냥 ‘하이테크 공정’ 벌인다


달라이 라마 14세와 그를 따라 히말라야를 넘어 피난 온 수많은 티베트 난민이 모여 티베트 망명정부를 세운 곳, 다람살라.


그 작은 마을의 맥그로드 간즈 중앙광장에서 버스를 내려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그리고 티베트인들이 만든 전통공예품을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템플 로드를 따라 아래로 쭉 내려가다 보면 남걀 사원이라는 곳이 있다.


남걀 사원은 티베트 불교의 여러 종파 가운데 하나인 겔룩파의 본산으로 체계적인 승가교육으로 유명하여 러시아를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에서 많은 수행자들이 공부를 하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하였다.


다람살라에 머무는 동안 가까운 곳에 국내선 공항이 있다는 사실을 훗날에야 알게 되었지만 항공편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면 덜컹거리는 비포장길을 버스를 타고 꼬박 12시간을 달려야만 도착할 수 있는 곳.


그곳의 남걀 사원에서 달라이 라마 14세의 법회라도 있는 해에는 해외 여러 나라에서 오는 방문객들 때문에 서너 달 전부터 거리의 모든 숙소가 풀 부킹이 되는데 나는 이곳에서 달라이 라마의 법회를 두세 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다.


스님과 함께 올라탄 다람살라행 야간 버스.


저녁 7시, 승객을 태우고 출발한 버스는 델리 시내를 벗어나기 전 주유소에 들러 194리터라는 기름을 주유하고 그렇게 쉼 없이 달려만 갔다.


다람살라까지 꼬박 12시간이 걸린다는 야간 버스 의자에 걸터앉아 딱딱하기만 한 쿠션 아닌 쿠션을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으며 생각지도 못했던 미지의 세계로 다시 떠나는 길이었다.


경안 스님에게는 다람살라가 초행길이 아니었다.

달리는 창문 밖으로 멀어져 가는 델리의 어둑어둑해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스님은 다람살라에 계시다는 청전 스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당시, 달라이 라마 곁에서 19년째 수행을 해오시고 계시다는 한국 비구 청전 스님이 계신 곳.


스님은 다람살라로 떠나는 길에 "인연이 닿으면 청전 스님을 같이 한번 뵙자"는 말씀을 하셨다.


델리 빠하르간지에서 출발한 버스는 창문 밖으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히말라야의 비포장길을 그렇게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을 해가며 12시간 만에 맥그로드 간즈 중앙광장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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