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에서의 고산병

by 독특한 버라이어티

라다크에서의 하숙


LEH의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시내의 병원으로 들어오는 길에 처음으로 마주한 라다크의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다만 풀 한 포기, 나무 한그루 볼 수가 없는 삭막한 도시의 느낌이었지만 기시감 같은 것이 있었을까.

낯선 이국적 풍경이었지만 그 낯선 공간 속에서도 전혀 이질감 없이 그 공간 속으로 빨려 들게 되었다.


시계의 추가 천천히 흘러가는 곳.

스스로의 천성이 복잡다단한 삶보다는 단순한 일상을 바라는 미니멀한 삶을 그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라다크에 들어와 3일을 호텔 La sermo에서 보내고 민박집을 구하여 사부라는 마을로 들어왔다.


기거했던 소남 앙모의 집은 사부라는 마을의 초입에 있었다.

그 집은 놀부 린첸 부부내외와 5살, 7살 된 두 아들, 그리고 놀부 린첸의 누이와 어머님이 살고 있는 한 지붕 3대 가족의 집이었다.




그렇게 원하던 라다크에 들어와서 현지인 가정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민박집도 구하게 되었지만 라다크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병원에서 다시 만난 의사는 산소통을 들고 들어오며 혈압과 맥박은 모두 정상이니 힘든 일 말고 실내에서 춥지 않게 그리고 몸을 혹사하지 말라 하였지만 몸의 상태는 나를 더 이상 이곳 라다크에 붙들어주지를 않았다.

다시금 숨을 쉰다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다.

호흡을 할 수가 없어 라다크에 더 이상은 도저히 버틸 재간이 없었다.

라다크의 시내 레에 있는 병원에 두 번이나 실려가 산소마스크를 쓰고 입원해 있던 차였다.

그렇게 가쁜 호흡에 이대로 계속 고산병과 추위에 시달리다가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그러니 에고가 할 말이 없어진다.

할 말이 없어지는 그 의식상태, 참나.


그러고 보니 아무런 고통 없이 호흡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다.


결국은 라다크에 들어와 계좌 개설을 한 은행의 통장을 해지하게 되었다.


라다크에서는 통장 하나 개설하는 것도 그리고 해지하는 것도 어느 것 하나 쉽지가 않았다.

정확히 은행 문을 들어선 지 2시간 만에야 나는 지지난주 개설했던 이곳 라다크 인디아 뱅크의 은행통장 어카운트를 해지하고 통장에 입금되었던 돈을 찾아 나올 수 있었다.


Dear Manager,

I here opened an SB account with your branch in 15. Mar.

But due to my bad health, I am going back from this place.

So, I request to you close my account and pay my balance account cash.

Bank account No. 01190012872

State Bank of India, Leh ( Ladakh )


계좌 해지를 하는데 왜 수수료를 지불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으나 그러라 했다.

어쨌거나 사유서라도 쓰라면 써야 했다.

고산병에 적응이 된 것 같아서 통장을 개설했던 것이지만 이 곳 라다크의 State Bank of INDIA의 돈은

당시만 해도 다음 예정지 바라나시의 같은 은행에서는 출금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다 하니

다시금 통장을 해지할 밖에는...


은행 지점장은 모니터를 통해 나의 계좌를 열어보며 확인을 한 후, 계좌를 해지하는 데에도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하였다.


돈을 찾고 계좌를 Close 하고 남은 일은 라다크를 벗어나는 항공권 티켓을 구입하는 일이었다.

LEH의 시내, 메인 바자르에는 은행 가까이 항공사 사무실이 붙어 있었다.


JET AIR사무실은 은행 가까운 거리의 건물 2층에 있었지만 그 계단 열개를 올라간다는 일이 또 호흡을 힘들게 하여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무실 한구석에 놓여 있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게 되었다.

어떻게 왔냐고 재촉하는 사무실 직원들을 숨 가쁜 호흡을 하며 그저 십분 넘게 쳐다만 보았다.


“티켓이 필요해. 지금 당장 라다크를 떠날 수 있는 티켓이. 숨을 쉴 수가 없어”


고작 계단 열 개 올라오는 것이 그리도 힘이 들어 소파에 걸터앉아 10분을 넘게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 라다크를 벗어나는 항공권 문의를 하는 내게 담당자는 "오늘과 내일은 라다크를 출발하는 국내선 비행기 운항이 아예 없다"는 것이었다.


라다크에서 바라나시까지 육로를 이용한 차편으로는 2,044km.

할 수만 있다면 놀부 린첸의 차를 훔쳐 타고서라도 지금 당장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육로는 얼어버려 도로 통제가 되었기 때문에 차를 몰고 내려갈 수도 없었다.


LEH에서 바라나시의 다이렉트 항공운항거리는 1,106km.

하지만 그마저도 직항 운항이 없으니 델리를 거쳐 환승을 하고 바라나시로 들어가야 하는데 델리로 들어가는 비행기가 오늘은 없다는 것.


델리를 거쳐 바라나시로 가는 가장 빠른 비행기는 모레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것.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그저 가만히라도 있어야 하겠지만 문제는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다만 벽에 기대어 숨을 쉬려고 노력하는 것뿐.

호흡을 한다는 것은 그렇게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일반적인 고산병의 증세인 두통이나, 멀미 같은 그런 증세는 없었으나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한 것은 호흡곤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이같이 호흡이 힘이 드니 한밤중에 목을 뒤로 누이고 누워 잠을 청하는 것은 더 더욱이나 힘들었다.


몸을 뒤척이는 것도, 이빨을 닦는 것도, 옷을 갈아입는 것도, 한밤중에 일어나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집 밖에 있는 화장실을 가는 것도 무척이나 힘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 정말 그 투명한 밤하늘을 뒤덮은 무수한 별들을 쳐다보는 것도 힘들어졌다.


먹은 것이 체하면 호흡하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았다.

그제는 물만 몇 잔,

어제는 하루 종일 수프 2컵,

오늘은 인도 매기 라면 하나.

먹는 족족 얹히니 과연 바라나시를 가면 어떻게 버틸 것인지,

그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가빠오는 숨을 몰아쉬며 당장 내려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그런 라다크에서 나는 서울에서 가져온 작은 바늘로 손톱 언저리를 수도 없이 따며 그렇게 사흘을 더 버티어야 했다.


인도로 들어오기 전, 서울을 떠나오며 나는 그동안 가지고 있었던 핸드폰을 아예 해지를 해 버리고 나온 참이었다.


그리고 놀부 린체의 집 전화는 로컬만 연결되는 전화이어서 한국과 통화도 하기 힘들었고 그 마을은 공중전화도, 단 한 명의 여행자도 없는 그런 마을이었다.


이러다 진짜 죽는 것이었다.

숨을 쉴 수가 없다는 것은, 그 횡격막을 찍어 누르는 통증을 동반한 호흡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은

그러다 죽는 통증인 것이었다.


그런 라다크를 떠나기 전날, 소남 앙모의 식구들과 작별의 사진을 찍었다.


항공권을 끊어놓고도 힘이 들어 어떻게 버티었는지도 모르게 지나간 사흘 후,

이른 새벽 5시 30분, 소남 앙모의 배웅을 받으며 그의 남편 놀부 린체의 차를 얻어 타고 라다크의 레 공항으로 들어섰다.


그로부터 정확히 8시간 후, 델리를 거쳐 다시 바라나시행 비행기를 갈아타게 되었다.


매서운 한겨울 라다크의 추위와 고산병을 피해 델리를 거쳐 다시 갈아탄 바라나시행 비행기의 기장은 바라나시 도착 10분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Announcement를 했다.

"이제 곧 도착하는 바라나시의 현지 기온은 섭씨 42도입니다."






Everything begins here, on this great continent with unbroken history.

Like the great rivers, the Indus, Ganga, and Krishna... and apparent chaos.


India has offered me many special and unique gifts.


These appear as experience which are so numerous and momentary yet

have penetrated and transformed my very nature.


Mother India has given birth to the ancient and the modern and her people

are living a play a dance of creation that holds on to the past as ritual

and tradition while embarrassing the wonders of technology.


Meeting Mr. ruaH in the Delhi-domestic-airport, waiting for our air flight to Leh

was one of the many pleasure of my journey.


Destiny has a way of manifesting in India.

He has just started a courageous step towards the Dharma.

His eyes spangle with excitement and it attracted me to him.


We " by chance" rented rooms in the same hotel in Leh.

I say by chance because the last hotel, I booked I rejected and our taxi brought us

here.


This is a small example of a great power - the Tao Dharma.

While staying in Hotel La Sermo in Leh, I spent a time with Mr. ruaH.


Namaste


Peter Tadd.



길을 떠나는 여정의 첫걸음에 처음으로 만난 길벗이었다.


라다크에서 만난 친구 아니 델리 공항에서 11시간의 Delay와 리 컨펌을 거치며

같이 라다크로 들어갔던 아일랜드 출신 Mr.Tadd가족 일행.


아일랜드의 대학에서 교수로 25년을 재직 중인 그는 안식년을 맞아 두 아들과 딸, 그리고 아내를 동반한 인도 여행길에 나선 참이었다.


라다크에 도착하여 호텔 La Sermo로 들어간 그는,

고산병의 징후로 LEH에 있는 병원부터 들렸다가 뒤늦게 같은 호텔에 투숙하게 된 나를 발견하고 무척이나 반갑게 맞아주었었다.

그리고 민박집을 구해 "사부"라는 마을로 떠나는 내게 그는 짧지만 강한 응원의 메시지가 담긴 손편지를 건네었었다.





바로 그것이 문제였다.


몸담아 살고 있던 이 땅에서는 그렇게 만나는 사람들,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 하나하나

모두들 그렇게 한결같이 힘이 들기만 했었는데.


낯선 여행길에서 그저 하루 이틀 스쳐 지나는

그 짧은 인연 속에 만난 이방인들은

진심으로 나를 염려해 주었으며

또 순례 인지도 모르고 떠나온 앞으로의

나의 여정을 한결같이 축복해 주고 있었다.


그래,

그저 단순히 그 자리에 있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현존인데.

모든 세상이 단지 나의 마음이었는데 나는 이 땅이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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