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는 곳은 지금 한겨울이라 육로는 눈길이 얼어 교통통제가 되어 6월이나 되어야 차편으로 통행이 가능하다는데 나는 내일모레, 델리를 거쳐 바로 인도 국내선 항공으로 라다크에 비행기로 떨어집니다. 해발 3,500미터 고지에.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고소증에 다이아막스라는 약이 있다는데 처방 좀 부탁합니다.”
다이아막스라는 약은 고산병에 효과가 있어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산악인들이 잊지 않고 챙겨 간다는 약.
그 약을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담당 진료의 에게 사정사정하여 60알이나 처방을 받은 것은 2006년 3월 9일 인도 현지시각 오전 6시 30분
델리 출발 라다크 “레" 공항으로 들어가는 국내선 항공권까지 구입한 뒤였다.
다년의 해외 유학 경험, 그리고 회사 생활하면서 해외출장은 몇 차례 있었지만 개인적인 여행 그것도 해외여행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여행은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삶의 경계에서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문턱들을 인도에서 그리고 지금 있는 이 땅에서도 나는 몇 차례 넘어본 듯하다.
어찌 보면 그것은 삶이 내게 보내는 무언의 메시지이기도 하였다.
안면경련 증상이 있어 심해지면 구안와사로 진행이 된다는 진단을 받은 무렵, 나는 하루 일과 중 건강을 되찾기 위한 재활운동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들을 시립도서관에서 보냈다.
사실 그 무렵 내게는 안면 근육 경련 증상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성취, 결과 위주의 행복을 중시하는 세상 속에서 나름 살기 위한 노력을 했으나 내 삶의 주체적인 주도성을 갖고 세상을 살아오지 못했으며 믿었던 친구를 피고인으로 내세운 소송은 취하를 하며 모든 것을 포기하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 지칠 수밖에 없었던 나의 인생은 말 그대로 파탄이 났으며 믿었던 사람에 대한 혐오는 대인기피로 이어졌다.
무기력한 삶 속에서 건강은 서서히 되찾고 있었으나 삶은 피폐했으며 영혼은 메말라가고 있었다.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그 수많은 서적들 중에서 특히 나는 인도 관련 철학 서적, 명상 서적들을 탐독하였는데 그러던 어느 날, 책 속에 있는 북인도 스피티 계곡 이름 모를 산 중턱에 세워져 있는 작은 곰파 (사원)의 사진을 보게 된 날, 나는 정신이 아찔한 작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사진 속 그 곰파의 모습은 마치 예전의 내가 지냈었던 장소인 양,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그것은 마치 훈습처럼 내 예전 삶의 어느 한순간 생활했던 곳인 양 나의 의식을 계속 지배하게 되었다.
약물치료와 운동을 병행하며 건강을 되찾아 갈 무렵, 해외여행은커녕 그 흔한 국내여행 한번 다녀보지 않았던 나는 인도의 그곳이 가고 싶어 졌다. 직접 가서 두 눈으로 확인을 하고 싶어 졌다.
그 깎아지른 절벽 위의 곰파를.
무엇이 나를 그리로 이끌었는지 아직도 나는 모른다.
아무런 까닭 없이 그냥 그곳을 가야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철 나고 싶어 졌다.
그것은 여행이 아닌 어느 일정 기간의 생활을 뜻하는 것이었다.
여행의 동기는 간단했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에 나오는 라다크.
물질적 소유와 비례하지 않는 행복이 있다면 그 안에 공존하는 사람들의 순수한 삶의 모습을 보고 싶었고 바라나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도시에서 삶을, 그리고 죽음을 대하는 그들의 하루하루 일상을 바라보고 싶었다.
그리고.. 비록 후회와 반성으로 점철된 못난 인생이지만 상처 가득했던 지나온 내 삶의 시간들을 이제 더 이상은 애써 외면하지 않으며 보듬어 주고 싶었다.
서울을 떠날 때부터 그 여행을 배낭여행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그 시간 자체가 순례의 시간이 되는 첫걸음이었다는 생각 또한 처음에는 하지 못했었다.
시립도서관, 햇볕이 내리쬐는 2층 어느 창가에 앉아 읽어 내려가던 책 속 그 절벽의 작은 곰파 사진을 보았던 그날로부터 6개월 후, 인도 현지시각 2006년 3월 9일 오후 11시 50분,
나는 무거운 배낭과 침낭 하나를 짊어 메고 서울 집을 떠나 델리 국제공항 땅을 밟고 있었다.
그러나 라다크로 들어가는 비행기는 11시간의 Delay후 캔슬이 되어버렸다.
11시간의 Delay를 걸어놓았던 항공사는 결국 운항 캔슬을 통보하였다.
그날, 라다크의 레로 들어가는 승객들 중 현지인을 제외한다면 외국인은 나하고 아일랜드에서 온 Tadd 가족 일행 총 6명.
라다크는 지금 폭설이 쏟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Indian Airline에서는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당일 라다크로의 항공운항 편이 취소된 모든 승객들에게 익일
라다크행 항공권의 리 컨펌을 받은 후 숙소를 제공하여 주었다.
기상악화로 인한 운항 취소야 인력으로 어찌할 수가 없는 노릇이지만 승객에 대한 서비스 불만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셔틀버스를 타고 국내선 공항을 벗어나 델리 시내로 들어서는 길에 같은 버스에 탑승한 옆자리의 승객 Tadd는 Indian Airline의 고객 서비스에 대한 불만을 내게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제저녁 6시에 Indian Airline에 전화를 걸었지”
어제저녁 6시라, 그 시각 나는 서울 인천 국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도 델리로 들어오는 하늘 위에 있었다.
“날씨가 안 좋은데 내일 새벽 라다크행 비행기는 정상운행을 하느냐고?
그런데 전화를 받은 Indian Airline직원은 나더러 LEH의 공항에 전화를 해보라며 그냥 바로 끊어 버리더라고.
그래 어쩌겠어? 다시 LEH공항에 전화를 했지.
그런데 전화받은 놈이 뭐라는지 알아?
모르겠다는 거야 그리고 그냥 또 끊어 버리더라고.
그래 할 수 없이 가족들 깨워 오늘 공항에 새벽 5시에 나왔는데 오후 4시까지 Delay사인 보드만 띄어놓더니
이제 와서 결항이라네!
하루 종일 DELAY 사인 보드만 올려놓으면 다냐고?
어떻게 이같이 비조직적이고 불친절한 건지?”
가족과 함께 이미 두어 달 넘게 인도를 여행하고 있다는 아일랜드에서 온 Tadd. 그가 다시 내게 물었다.
"기상이 안 좋으면 진작에 운항 취소를 하던지 말이야. 아니 어떻게 11시간을 Delay를 걸어놔?
그 시간에 눈 쌓인 활주로라도 치우게?"
공항의자에서 새우잠을 자며 라다크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나 역시 격하게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어쨌거나 항공사에서 마련해 준 숙소에서 1박을 머무르고 다음 날 새벽 라다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델리 국내선 공항을 벗어나 비행기가 이륙한 지 40여분 남짓,
천천히 히말라야의 고봉들이 저 멀리 비행기 창문 너머로 그 자태를 드러내더니 이윽고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라다크.
인도 잠무 카슈미르주(州)에 속하는 카슈미르 지역으로 해발 3500m 이상의 고원지대.
대부분의 주민은 티베트계 라마교도와 아리아인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의 “오래된 미래”라는 책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은둔의 땅 라다크.
델리를 이륙한 비행기가 도착한 라다크의 시내 “LEH"의 공항은 자그마한 곳이었다.
LEH의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려 짐을 찾으러 들어오면서 당연히 평상시와 같은 보행속도를 유지하였으나 내 몸에서는 벌써 높은 고도에서 오는 산소 결핍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폭설이 내린 한 겨울 해발 3,500m 되는 고산지대에 고도 적응도 없이 불쑥 비행기를 타고 떨어지는 여행객들에게 고소증이라 일컫는 호흡곤란 증세가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라다크에 도착하자마자 내 몸에서 받아들이는 첫 번째 신호였다.
코피가 터져버렸다.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고 그리고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등줄기로 내려오는 통증 때문에 버틸 수가 없었다.
그 느낌은 그러했다.
마치 등줄기 쪽이랄까 횡격막에 날카로운 비수 같은 것이 깊숙이 찍힌 것처럼 호흡을 할래야 할 수가 없게 만드는 기분 나쁜 통증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승객들이 다 빠져나간 레의 공항에는 나 혼자만이 남게 되었다.
평상시처럼 걸을 수가 없었던 나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공항 안의 의자에 걸터앉아 숨 호흡을 크게 하려 애를 써 보았다.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었다.
흐르는 코피를 닦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뱉는 동작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호흡을 조절하려 애를 써 보았지만 깊게는커녕 천천히 숨을 쉬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 몸의 컨디션이 호전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 같은 증세가 계속될 것인지 처음 겪어보는 고산병의 초기 증세에 어떤 결정을 내리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공항 내부 대합실에 있는 작은 의자에 앉아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이대로 비행기를 타고 다시 내려가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며칠 더 버티면서 이 해발고도를 적응해 보기로 할 것인지.
그렇지만 내려가려 해도 지금 당장 내려갈 수 있는 비행기 티켓을 구입할 수도 없었다.
폭설이 쏟아진 그날, 해발고도 3,500m의 라다크를 출발하는 항공편은 하나도 없었다.
평균 해발고도 3,500m의 라다크에 한 겨울,
왕복 티켓도 없이 비행기를 타고 원웨이로 들어온다는 것은 도저히 알고서는 행할 수 없는 말 그대로 무지의 극치였다.
백두산의 높이는 2,744m
그런데 무엇 때문에 한 겨울에 비행기를 타고 해발고도 3,500m에 떨어진 것인지.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고산병이란 고소 폐부종이나 고소 뇌부종으로 진행이 될 수도 있는 아주 무서운 병이었다.
그러나 그저 아무런 까닭 없이 나의 의식을 계속 지배하고 있었던 그곳을 찾아가기 위해 시작한 여행이었다.
몸은 힘들었고 무엇보다도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이 더없이 크게 다가왔지만 그저 라다크, 아니 사진 속 그 깎아지른 절벽의 곰파를 찾아 나선 길이었기에 언제 돌아간다 기약을 할 수는 없었다.
이 순간을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아니 온전히 내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에 집중을 하며 공항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장 먼저 비행기를 탔던 그러나 이제 아무도 없는 레의 공항 대합실을 마지막으로 빠져나와 택시에 천천히 몸을 집어넣으며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병원으로 데려다줘. 숨을 못 쉬겠어"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오자마자 코피 터진다고 다시 델리로 내려갈 수도, 내려갈 비행기도 없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지 공항에 내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레에 있는 병원 응급실이었다.
병원 응급실로 가서 산소마스크를 쓰고 라다크의 하루를 지내었다.
그러했다.
삶은 내게 계속해서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생각이었지 실재하는 괴로움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괴로워, 힘들어 떠나온 순례길이었지만 모든 것이 내가 만들어 놓은, 내가 창조해 놓은 분별 망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