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대신 나는 인도

나를 만나러 떠나는 길

by 독특한 버라이어티

"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예전 방송되었던 삼시 세 끼라는 예능프로그램에서 발군의 요리실력을 보여주었던 모델 출신 배우 차승원과 유해진 그리고 새로이 신예 배우 배정남 이렇게 모인 3인방이 스페인 순례길의 알베르게에서 투숙 손님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며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TV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차승원과 유혜진의 만남으로 이루어졌던

삼시 세 끼.

그리고 영화가 아니라면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을 것만 같은 이 두 사람의 조화에 이제 2009년 SBS 드라마 "드림"으로 데뷔한 모델 출신 배우 배정남까지 가세한 예능 프로그램 "스페인 하숙"


교양 프로그램이라면 스페인의 순례길 산티아고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통해 전 세계에서

그 순례길을 찾아오는 수많은 순례객들 각각이 품고 있을 저마다의 삶에 대한 고민을 다루어봄 직도 했다.

그리고 길 위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이방인이 건네는 따스한 위로와 위안으로 다시금 삶에 대한 벅찬 희망을 안고 일상으로의 회귀를 하는 순례객들에 대한 고찰이 있을 법도 하였다.


하지만 “스페인 하숙”이라는 이 프로그램은 알베르게를 찾는 매일 같이 바뀌는 순례객들을 접대하는 일상생활기록에 다름이 없는 제목 그대로 게스트하우스 생활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쟁쟁한 여타 경쟁 프로그램이 많이 포진한 금요일 저녁 방영되어 최고 시청률 11%를 달성한 프로그램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 프로그램을 "힐링 예능프로그램"이라 하였다.


힐링, 그 치유의 여행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 제주 올레길을 만들었다는 분도 계시지만 정작 제주에 거처를 마련하고 생활할 당시, 나는 올레길을 한 번도 걸어본 적은 없다.

그 대신, 매일 아침이면 위미에 있는 집에서 나와 표선을 지나 성산일출봉까지 차가 잘 다니지 않는 그야말로 도민만이 아는 바닷가를 접한 좁은 해안길을 따라 새벽 공기를 가르며 작은 오토바이를 모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한때는 말 그대로 하나의 시대적 유행이 되었던 올레길 여행이 세대가 바뀌면서

그 올레길의 모티브가 되었던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사람들이 떠나고 있다.


“Camino de Santiago”


프랑스 남부 국경 마을 생장 피 데포르에서 스페인 산티아고 성당까지의 순례길 800km.

서울에서부터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390km,

그러니까 산티아고 순례길을 매일같이 하루 20km씩 도보로 걷는다면 총 40일이 걸리는 여정의 길이다.


사람들은 왜 떠나는 것일까...

그 고민에 대한 해답은 치유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점에 왜 치유가 필요한 것인가.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산티아고 순례길 800km의 긴 여정을 걷는 동안 가슴속에 쌓아 두었던 저마다의 삶에 대한 고민은 어느덧 40일의 긴 여정을 마치고 나면 결국은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었다는 단순한 진리에 직면하게 되겠지만 그 단순하기만 한 진리는 길을 떠나 본 자만이 내릴 수 있는 해답이자 특권이기도 할 것이다.


아니,

그러나 그 마음이 아니다.

40일로 자신의 마음을 꿰뚫고 직관하여 알아차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 것인가!


마음을 알아챈다는 것.


그러나 내게 있어 길을 떠나는 것은 단순히 생각을 정리하는 차원의 문제는 아니었다.

결국은 마음을 헤아리는 것의 문제였지만

그 헤아림조차 스스로 깨우쳐야 할 시간들이었다.


돌이켜보면 무지하기만 했던 지나온 삶들 속에서 내게 주어진 삶에 대한 사유,

그리고 내 어깨 위에 짊어진 무거운 업에 대한 사유를 해야만 하는 시절 인연을 만났고

그래서 나는 인도로 가는 길을 떠났다.


인도를 여행하는 자들에게는

“그들 어깨 위 짊어진 배낭의 무게가 그들 자신의 업의 무게”라는 말이 있듯이

여행을 처음 시작할 당시, 커다란 배낭에 오리탈 침낭까지 더한 나의 짐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리고 비자 런을 위해 네팔과 태국을 번갈아 오가는 2년여 되는 기간 동안 자그마한 백팩 하나로 줄어들게 되었다.

짐이 가벼워질수록 마음 또한 가벼워지는 순례의 시간들이었다.


북인도 히마찰 프라데시


그러하였다.

말 그대로 진짜 아무것도 모르고 길을 떠난 나에게 인도 라다크 (해발고도 3,500m)와 바라나시, 그리고 2년의 시간을 보냈던 다람살라, 북인도 쿤좀패스를 따라 떠나는 히마찰프라데시 스피티밸리의 9개 사찰 중, 당카르 곰파 (해발고도 3,894m), 타보 곰파 (해발고도 3,280m) , 키 곰파 (해발고도 4,166m)의 750km 행군, 네팔의 룸비니, 그리고 태국의 농부아람프 사원은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보다는 더한 행군이었으며 내딛는 발걸음 한걸음 한걸음은 모두 순례의 길이었다.




그 길의 끝에서 나는 가지고 있는 아집과 집착을 놓아버리고자 무진한 애를 써보았다.


글로 접하는 집착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니라 알아차려야 할 대상이라지만 마음으로 접하는 집착은 끝내 버리지도 알아차리지도 못할 힘든 고통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었다.


다만 그렇게 히말라야로 떠돌아다니었어도

그것은 분명 허송세월을 보내며 무위도식을 하는 것은 아니었기를...

나 자신 영혼을 맑히는 작업을 위한 순례이었어야 했을 것이기를...


고산병에 시달려 산소마스크를 매고서도 코피 터뜨려가며

그냥 무조건 달려간 북인도 히말라야의 당카르와 키 Monastery에서 그냥 다 놓아버리니 어느덧 마음이 홀가분해지더라는.


그리하여 "사는 것"이라는 것이 그냥 아무것도 아닌 "달리는 차 창밖에 펼쳐진 풍경" 이더라는 말의 그 짧은 행간에 숨겨진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을 즈음에...


어느덧 다시 또 무엇엔가 집착하고 있는 나를 되돌아본다.


다 놓아버린 줄 알았는데...

세상사 찌들어 마음의 상처 내려놓으려 찾아간 북인도 파트 어브 히말라야에서

마음을 내려놓으려 헤아릴 수 없는 방황을 하다 돌아오고 나서도 이제 다시 또 집착을 하고 있으니...


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은 무엇 때문에 환영인 것이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왜, 누구에게 집착을 하고 무엇 때문에 집착을 하고 있는 것인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