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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Nov 27. 2022

#18 십일월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그 대목이 어디더라.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지점을 되뇌며 책장 앞을 서성였다. 함께 사는 연인의 이야기, 노량진, 수험생, 겨울. 그리고 섬초 시금치. <침이 고인다>는 아니고 <달려라 아비>도 아니고 그럼 <바깥은 여름>이었던가, <비행운>이었던가. 책을 꺼내 휘리릭 넘겨본다. 그렇게 더듬다가 찾았다.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건너편'이란 제목의 단편이었다.


도화가 부엌에서 섬초 시금치를 다듬다 고개 돌렸다. 부엌이라 해봐야 거실에서 몇 발자국 거리이지만 건너편 상대에게 말할 땐 목소리를 조금 높여야 했다.

-어, 거기 수협 있는 데.

도화가 수심 어린 얼굴로 찬물에 시금치를 담갔다. 한겨울 눈바람을 맞고 자란 풀들이 도시의 수돗물을 머금자 꽃처럼 부풀었다.

-그날 나가봤자 복잡하고 바가지만 쓸 텐데.

물에서 시금치를 건지는 도화의 두 손에 초록이 무성했다. (중략)

이날 두 사람은 평소보다 달게 잤는데, 저녁상에 오른 나물 덕이었다. 도화는 밤새 내장 안에서 녹색 숯이 오래 타는 기운을 느꼈다. 낮은 조도로 점멸하는 식물에너지가 어두운 몸속을 푸르스름하게 밝히는 동안 영혼도 그쪽으로 팔을 뻗어 불을 쬐는 기분이었다. 잠결에 자세를 바꾸다 도화는 속이 편하다는 느낌을 몇 번 받았다.

-제철 음식이라 그런가.

도화가 간밤 편안함을 설명하자 이수가 도화 쪽으로 몸을 틀며 호응했다.


이렇게 반짝이는 대목을 만나고 나면 이제 섬초 시금치는 그저 평범한 시금치, 밑둥이 불그스름한 시금치가 아니게 된다. 겨울철 마트의 매대에서 만날 때면 눈길이라도 한 번 더 주게 되고, 그때마다 해풍을 맞고 자라 더 달다는 맛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소설의 주인공처럼 겨울 시금치 앞에 선다. 뜨거운 물에 잠깐 데쳐 꼭 짠 다음 다진 파와 마늘, 참기름과 깨를 뿌려 무친다. 막 만들어 향기로운 나물을 밥 위에 올려 먹으며 녹색의 숯불을 생각한다. 제철 음식이란 말에 대해 생각한다.


십일월, 문득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이중섭 전시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같이 갈래? 너도 같이 갈래? 다들 기다려 왔던 걸까. Y는 대체 휴가를, D는 반차를 쓰기로 한다. 나는 점심을 먹고 전시를 본 다음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돌아가면 된다 말한다. 전시 예약을 위해 날짜와 시간을 조율하다가 그럼 점심은 어디에서 먹을래? 요즘 다들 웨이팅이 너무 기니 시간 되는 이가 미리 가서 줄을 서야 하나, 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안국역에서 시작된 우리의 논의는 경복궁 담벼락을 따라 서쪽으로 흐른다. 아, 그럼 거기 가 볼래? 하고 튀어나온 것은 바로 서촌의 '안주마을'. 갑자기 대화는 급물살을 탄다. 가만 보자, 거기 여는 시간이 오후 1시래. 근데 조금 일찍 가도 된다고 하네. 그럼 전시를 먼저 보고 여길 가야겠다. 제철 해산물이 흐드러진 술집이라니, 우리의 가슴은 쿵쿵 뛰기 시작한다. 시작은 분명 이중섭 특별전 관람이었는데, 이젠 '안주마을'이 열기 전 잠깐 들리는 곳처럼 되어버렸다. 웨이팅을 위한 웨이팅이라니. 급기야 나는 엄숙하게 선언하고야 만다. '죽은 중섭이 산 안주마을 가는 것을 방해할 순 없습니다.'

그 말은 한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업무에 동동거리던 D는 전날 늦게까지 야근을 하더니 전시는 너희 둘이 봐라, 자신은 안주마을로 바로 가겠다고 선포한다. 그리하여 나는 Y와 함께 이중섭 전시를 본다. 대단하다, 대단해. 이건 대체 어떻게 그린 거지? 거장의 작품 앞에서 이런 탐구는 적절치 않은 것 같은데, 나는 자꾸만 눈알을 굴렸다. 그런 틈틈이 전시에 열중하는 Y의 옆모습과 뒷모습을 찰칵찰칵 찍었으니 얕은 집중력도 들통난 셈이다. 미술관을 나선 우리의 발걸음은 경쾌하다. 너랑 오기엔 너무 아깝도록 좋은 날씨다! 하며 동십자각 앞의 은행나무를 지난다. 광화문을 오른편에 끼고 서로 서로 향한다. 안주마을에 다다른 때는 열두 시 반, 영업 시작 1시라고 적어놓은 팻말 아래 기다리는 이들의 기쁜 초조가 보인다. 우리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유리창 너머로 손차양을 하고 들여다본다. 이쯤 되니 약간 미친 것 같기도 하지만, 우리만 그런 것은 아니기에 조금 뻔뻔해진다.


드디어 입성.

주변을 둘러보며 호오 호오 가쁜 숨을 내쉬는 우리 앞에 사장님의 명료한 설명이 이어진다. 메뉴는 작은 보드 위 마카로 쓴 손글씨. 앞에 빨간 표시가 된 것은 잘 나가는 메뉴라는데, 대부분의 메뉴 앞에 빨간 표시가 되어있다. 거기엔 그야말로 제철, 바야흐로 늦가을과 초겨울의 바다가 한아름 담겨있었다. 청어회와 청어알비빔밥, 문어숙회 다음엔 모시조개탕과 미나리바지락살전. 두툼한 겨울 생선에서 시작해, 야들야들 부드러운 숙회를 지나 단숨에 멱살 아니 속을 풀어주는 조개탕의 국물, 그리고 넓적넓적 도톰하게 부쳐낸 향기로운 전까지. 곧이어 도착한 D와 함께 바다를 누빈다. 역시 좋은 술의 목록들로 빼곡한 메뉴판을 한참 구경하다 바쁜 사장님을 불러 세운다. '여기 테라 주세요.' 이 문장만큼은 유난히 또렷하고 선명하다. 한낮, 서로의 잔에 맥주를 따르며 주변을 둘러보니 다들 소주를 마시고 있다. 그 얼굴들은 몹시 행복해 보인다.


여긴 다시 꼭 와야 한다.


우리는 굳은 다짐을 나눈다. 셋이서 오랜만에 모여 늘상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안주는 확실히 달랐다. 그래, 다시 와야 한다. 그리고 나는 말과 행동이 몹시 일치하는 사람. 사랑하는 우리 편집자님과 짧은 안부를 나누다 덥석 미끼를 던지고 만다. '다음에 봅시다 이런 거 말고 약속을 정해야 진짜 만나지는 것 아시죠? 편집자님을 안주마을로 모시고 싶습니다.' 하여 또 볕 좋은 십일월의 점심,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경복궁 역을 서성인다. 오랜만의 만남이지만 어려울 것은 또 없는 만남. 이번엔 한치회와 미나리바지락살전이다. 접시 위 소담하게 나온 한치는 투명하고 말갛게 반짝인다. 한 점 들어 입에 넣으니 쫀득도 아니고 쫜득도 아닌 그 중간의 감각으로 미끄러진다. 한치에 밀키하다는 수사를 붙여도 되는 것일까. 이제 미나리의 맛을 아는 나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며 길다란 술 목록을 훑다가 나는 다시금 테라, 편집자님은 맑은술을 찾아 청하를 고른다. 왠지 각자 고른 술을 기울이고 있으니 진정 한낮의 술꾼들 같고 그렇다. 우리 처음 같이 술 마시는 건가요? 하고 여쭤보실 때 수줍게 답했다. 브런치 때 한 번, 출간파티 때 두 번, 오늘은 세 번째입니다.

우리는 서로의 책 그리고 출판계 동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그 수다는 어느새 잔다리로 어디쯤으로 새 버린다. 그때의 클럽들, 골목들, 그리고 놀이터에 대해 이야기한다. 호미화방의 이전에 관해, 홍익여중고의 이사에 관해. 콘도매니아 전의 배스킨라빈스와 언젠가의 슈바빙에 대해. 전 삼거리 포차가 생길 때 경악하며 뻐큐를 날리고 다녔지만, 사실 홍대의 모두가 자기만의 젠트리피케이션 경험이 있겠죠. 하고 어른스럽게 마무리를 지었던가? 하지만 메세나폴리스 이전의 합정 하늘을 아는 사이끼린 이래도 짝, 저래도 짝, 합이 잘 맞을 수밖에 없다. 배는 따스하게 차오르고 들려주신 가방 안 귤도 감도 책도 정겹다. 굳이 또 싸인을 청해주셔서 나는 정성스레 펜을 쥐고 못난 글씨를 남기고 만다. 은근슬쩍 내년의 계획도 여쭙고, 거기엔 또 자연스레 책 만들기가 끼어있어 역시 우리 편집자님! 하고 감탄한다.


이거 맞아? 이렇게 흘러가는 거 맞아?


하는 사이 십일월이 다 간다. 이젠 뭐 시간 가는 속도가 믿기지도 않을 판국이다. 십 대엔 시속 십, 이십 대엔 시속 이십, 삼십 대엔 시속 삼십, 사십 대엔 시속 사십. 이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 하게 되는 것을 보니 진정 시속 삼십 하고도 한참이 지났나 보다. 그렇지. 제철 음식이 착착 입에 달라붙는 맛을 알고, 미나리 향을 음미하고 섬초 무칠 줄을 알게 되면 이제 어른이라 할 수 있지. 같이 한낮에 낮술 마실 친구들이 여전한 것을 보면 그래도 인생 괜찮게 산 것 같아 적당히 흡족하고 그렇다. 서촌의 바다는 풍성하고 어딘가의 섬초는 꿋꿋하게 자라나고 나는 조금 의연해진 모습으로 십일월을 배웅한다. 제법 겨울다운 겨울을 상상하며, 다가올 십이월을 기다리며 손을 흔들어 본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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