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한 글자 (1)
집을 팔았다. 그렇게 되었다.
처음 이 동네의 부동산을 찾은 것은 배가 많이 무거워진 때였다. 긴 코트로 배를 가리고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내어준 비타500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다가 집을 구하고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마침 우리가 구하는 조건에 맞는 매물이 있다고 했다. 매물의 금액을 듣고 돌아온 날 우리는 우리의 예산을 빼고 더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예산은 진정한 예산이 아니었다. 전세 보증금과 얼마의 가진 돈, 그리고 앞으로 받을 대출금을 모두 포함한 금액. 그것도 몹시 간당간당한 액수의 예산이었다. 그러니까 예산이라기보다 예상에 가까운 돈, 그걸 현실로 끌어내와야 다시 아까의 테이블에 앉아 비타500을 마실 수 있다는 거였다.
부른 배를 안고 이곳저곳의 은행을 방문했다. 처음 들린 곳에선 가져간 서류의 부실함을 지적받았다. 원천징수영수증과 재직증명서 정도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뭐가 더 필요한 모양이었다. 이까짓 가계대출 따위 본인의 실적과는 아무 상관없는지 심드렁한 태도를 보이던 직원은 그럼 내가 가져간 서류를 바탕으로 대강의 금액을 산출해 보겠다고 했다. 어디까지나 이건 시뮬레이션일 뿐, 확정 금액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나온 금액은 시뮬레이션이라 차라리 다행이었다. 우리가 구해야 할 액수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적잖이 허탈한 마음으로 이번엔 직장 근처의 지점을 다시 방문했다. 내 또래로 보이는 직원은 몹시 친절한 얼굴로 몇 장의 종이를 뽑아주었다. 다행히 이전보다 많은 금액을 대출받을 수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전의 지점, 종로 한복판의 커다란 지점에선 더 커다란 금액이 오고 가는 모양이었다. 내가 끌어모은 영혼도 거기선 한 줌 가느다란 소망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여기저기서 모을 수 있는 돈들을 모아 오기 시작했다. 퇴직금 중도정산에 이어 그동안 아껴온 물건들도 중고 장터에 팔았다. 그야말로 가진 것을 탈탈 털었다.
주택가격이 꿈틀거리고 날로 규제들이 새롭게 생겨나는 사이 저마다 조바심이 난 모양이었다. 그때의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언제나 적절한 타이밍과 돈이 문제였다. 게다가 출산이라는 정해진 데드라인도 존재했다. 아직 가 본 적 없는 길이지만, 막달의 임산부로 혹은 갓 태어난 신생아를 품에 안고 거처를 옮긴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임에 분명했다. 우리를 움직이는 건 적당한 보금자리에 대한 갈급함이었다. 마른 가지를 물어다 나르고 꼼꼼히 포개 둥지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열망이 있었다.
다시 부동산을 찾은 날, 이번엔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그때 말씀하셨던 그 집, 저희가 살게요. 그러자 사장님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침 지금 그 집을 보러 간 다른 팀이 있다는 거였다. 집을 보러 동행한 실장에게 전화를 걸더니 다급히 말하기 시작했다. 지금 그 집 사겠다는 사람들 왔으니 다른 매물 보여드려. 아무래도 우리의 눈빛이 그만큼 확고했었나 보다. 결국 약간의 소란 끝에 우리가 사려던 집을 볼 수 있었다. 부부와 대학생 딸,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가 살고 있다는 집. 강아지가 있음에도 집은 깔끔했고, 아늑하고 포근해 보였다. 우리는 그날 가계약금을 보냈다.
얼마 지나 계약서를 쓰는 날. 도장 2개와 신분증을 들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그때 본 이들은 세입자였고, 집주인은 그날 처음 만났다. 그는 이걸 팔고 또 다른 집은 전세를 주고 그 돈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일명 부동산 세계에서 말하는 상급지로의 이사. 그건 이 세계에서 '복 많은 집'이라는 마케팅 포인트가 되는 모양이었다. 순산하시고 행복하게 잘 사세요, 같은 덕담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잔금 날짜를 정하고 부동산을 나서는데 힘이 쭉 빠졌다. 품 안의 계약서 파일을 놓치지 않게 끌어안았다.
이 모두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함께 살기 시작하며 우리가 머문 집들은 각각 다른 특성들이 도드라졌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선 비슷한 층수의 집들이라도 저마다의 모습이 달랐다. 일조량, 방 개수, 전망, 마당이나 옥상의 유무, 그리고 집의 컨디션. 한 집 한 집이 모두 달랐기에 저마다 고유한 느낌이 있었다. 그러므로 반드시 집을 본 이후에 마음을 정할 수 있었고, 전 주인의 흔적을 지우고 나면 우리만의 느낌을 옮겨놓을 수 있었다. 길고 짧은 커튼, 조명 설치, 야외용 가구 배치 등등. 그러면 그 집이 우리 집 같아졌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우리 집이 생겨났다.
그러나 아파트 시장은 조금 달랐다. 관심대상의 모든 집들을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마음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몹시 촘촘하게 규격화된 시장의 특성 덕분이었다. 같은 단지 안 같은 평수의 내부 구조는 모두 비슷하므로 층수와 향만 검토하면 되었다. 우리는 아직 들어갈 수 없는 아파트 밖에 서서 손으로 층을 헤아려보았다. 저 정도면 괜찮네. 해도 잘 들겠어. 좋네. 계약서를 쓰고 이사 날짜를 정했음에도 여전히 그곳은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집 내부 치수를 재고 싶어 정중히 부탁드려 보았으나 거절은 완강했다. 코로나, 그건 되물을 수도 없는 사유가 되어주었다. 2020년 초는 그런 격동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