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거기가 어딘가요

집이라는 한 글자 (2)

by 한량

이전 글의 주어는 모두 '우리'였다. 같이 생각하고 같이 고민하고 같이 의논한 끝에 해낸 '우리'의 일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르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어쩜 이렇게 다른 '우리'가 서로 좋아하다 같이 살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렇게 엄청난 일을 저질러버렸는지 되짚어 볼수록 의문투성이였다.


나는 수와 셈에 약하다. 좋은 것은 무척 좋아하며 싫은 것은 아주 싫어한다. 쉽게 끓고 빨리 식는다. 써 놓고 보니 되게 별로인 사람 같다만, 그래도 한번 정한 일은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뚝심도 지니고 있다. 묵직하고 성실하게 그래서 끝을 보는 사람에 가깝다. 미리 정해놓은 방향을 바꾸는 것을 싫어한다. 흥정과 협상, 줄다리기와 밀당에 취약하므로 그런 상황에 놓이는 것을 기피하는 특성이 있다.


달은 수와 셈에 강하다. 역시 좋은 것은 아주 좋아하며 싫은 것은 무척 싫어한다. 감정이 나만큼 빠르게 요동치지는 않는다. 요동치더라도 나처럼 티가 나지는 않는다. 다양한 방향성을 추구하고 변동성에 강하다. 느닷없는 일이 닥치더라도 발 빠르게 대안을 찾는다. 흥정과 협상에 능하다. 그러나 가끔 너무 많은 수를 생각하다 곁길로 새기도 한다. 서로 다른 점이 있기에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으나 문제는 거기에서 발발하곤 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집을 사겠다는 대의에는 겨우 도달한 상황. 이제 어느 동네, 어떤 매물을 고르느냐가 남아있었다. 내게는 별다른 의견이 없었다. 주택에 살다 옮길 예정이었으니 어디가 되었건 아파트는 다 아파트지, 다 비슷비슷하지 않겠냐는 생각이었다. 달은 그렇지 않았다. 많은 정보를 계속 습득하고 여기저기를 저울질하느라 오랜 시간을 보냈다. 계속해서 새로운 동네를 거론하는 것을 들으며 참다가 어느 날 말했다. 그냥 너가 알아서 알아보고 마지막 후보 셋만 추려와. 그럼 그곳들 중에서 정하자. 나한테는 정해진 기일 즉, 출산을 기점으로 시작될 각종 과업들이 더 무겁게 느껴졌던 탓이다.


달은 세 곳을 추려왔다. 주말이면 우리는 그 동네들을 탐방하며 이른바 임장을 다녔다. 다니면 다닐수록 지금의 삶, 종로의 주택에서 누려온 삶과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원서동, 구기동, 삼청동에 살면서 느낀 점은 역시나 각각의 개별성에 있었다. 집마다 다른 창으로 하늘을 보고, 저마다 다른 텃밭을 키우던 삶. 점잖은 이웃들과 나누던 삶. 밤이면 경복궁 한 바퀴를 달리고 어슬렁어슬렁 걸어 서점과 영화관, 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우리를 힘들게 한 것은 단 하나, 주차 문제였다. 전용 주차장이 있던 구기동을 제외하고 우린 거주자 지정주차구역을 사용해 왔다. 분기별로 신청을 하고 자리를 지정받으면 그곳이 우리의 주차자리였다. 거주자 지정주차구역이란 안내도 분명히 쓰여있고, 각 자리마다 번호도 쓰여 있었다. 그러나


하루 잠깐 이곳을 찾는 이들은 그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공영주차장과 사설주차장이 있지만 빈 자리가 있으면 그냥 대고 가버리는 사람들. 어렵사리 번호를 확인해 전화를 걸면 '저희 지금 창덕궁인데요. 잠시 후 갈게요.'란 답이 오곤 했다. 그렇다고 매번 주차단속요청을 하기도 번거롭다. 운전석에 앉아 차주가 올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이건 가치관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무례의 문제였다. 그들에겐 어쩌다 생기는 에피소드일 테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에겐 일상을 좀먹는 일이었다. 차단기가 설치된 주차장에 배정되고 나서야 조금 잦아들었던 피로를 떠올린다. 때때로 기억나는 그 분노도.


우리가 찾은 단지들에선 그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세대당 주차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사사로이 자리를 침범해 뻔뻔하게 구는 일은 없다. 거대함과 동시에 동질적인 집단. 개인적이지만 필요시 단체로서도 기능할 수 있는 구성원들. 폐쇄성을 자랑하는 커뮤니티. 가벼운 편의를 충족시킬 지척의 상가. 이는 다시금 철저한 산술에 따라 촘촘히 나눠졌다. 입주 연도, 브랜드, 가까운 지하철역과의 거리, 근처 어린이집과 학교의 수, 지역 랜드마크와의 연계성, 거기에 면적과 층을 곱하면 해당 시점의 정확한 시장가가 산출되는 시장이었다. 실시간으로 거래량과 거래가를 확인할 수 있으니 요행이나 운은 작동하기 어려웠다. 허허, 젊은이들이 기특하고 가상하군. 아껴온 물건을 싸게 주겠네. 이런 산신령과의 만남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후보군까지 모두 살피고 결정을 내리는 일만 남았다. 막판에 달이 후보지로 하나만 더 추가해도 될까, 물어와 엄청나게 화를 낸 것만 빼고 대체로 순탄하게 이르렀다. 여기로 하자, 우리가 정한 곳은 왕십리였다. 그곳엔 아무런 연고가 없었다. 심지어 가 본 적도 없었다. 각자의 직장과도 얼마 간의 거리가 있었다. 왕십리에 대한 배경지식이라곤 무학대사의 일화뿐이었다. 왕십리에 조선의 도읍을 정하려던 때, 한 노인이 나타나 이곳에서 십 리를 가면 좋은 터가 나올 것이라는 그 일화. 그래서 만난 터에 경복궁을 창건했다는 바로 그 이야기.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우리는 왕십리에 터를 잡기로 한다. 경복궁이 코 앞인 동네에서 십 리 밖이면 괜찮다고, 그 정도면 나중에 되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묘책 세 가지를 구해오라는 요청, 인심 좋은 산신령은 없지만, 풍수지리에 능한 큰 스님과 무심한 듯 계시를 주는 노인의 전설이 서린 곳. 우리의 이야기엔 어딘가 전래동화적인 구석이 있었다. 떠난 곳을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가겠노란 서약도 그러했다. 그 결심을 잊지 않고자 아기의 출생신고서에 새겨 넣었다. 아기의 본적지는 엄마의 고향도 아빠의 고향도 아닌 제가 태어난 이곳, 삼청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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