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동 자기만의 방

집이라는 한 글자 (3)

by 한량

출산준비, 출산, 이사의 순으로 타임라인이 정해졌다. 셋 다 만만치 않은 이벤트이니 사전에 준비할 것도 많았다. 삼청동 집에 이사 올 때만 해도 짐을 많이 줄여왔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 또 짐이 불어나있다. 계단 밑 창고(해리포터의 방 같은 그런 공간이었다)도, 2층의 창고도 갖가지 물건들로 가득했다. 짐을 줄여야 했다. 하지만 버리는 만큼 새로운 물건들도 필요했다. 아기침대, 기저귀 갈이대부터 시작해 아기용 손톱깎기, 손수건, 체온계 같은 자잘한 물건들을 준비해야 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던 때, 일단 필수목록 리스트를 다운받았다. 리스트 항목은 끝도 없이 길었다. 계약금에 중도금, 그리고 마지막 치를 잔금을 생각하면 형편이 빠듯했다. 첫 아이라서 새것으로 사주고 싶은 마음보다 앞으로 들어갈 돈에 대한 걱정이 더욱 크던 때였다.


친구들보다 아기를 늦게 가져서 그 덕을 크게 보았다. 임신 소식을 전하자마자 다들 각종 육아용품들을 물려주겠다고 했다. 옷 같은 것도 괜찮아? 노파심을 담아 물어본 이유는 성향의 차이를 우려해서였을 것이다. 물론 나는 무엇이든 좋다고 했다. 너무나 고맙다고도 했다. 그래서 막달엔 여기저기서 많은 물건들을 받을 수 있었다. 꾸러미에서 나오는 물건들은 실로 방대했다. 아기 옷부터 장난감, 모빌, 책, 욕조, 스윙 등. 들고 간 케익이나 상품권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여기저기서 선물도 많이 들어왔다. 배냇저고리, 양말, 신발, 속싸개와 겉싸개, 젖병소독기, 심지어 당장 쓰지도 않을 베이비룸(아기용 안전 울타리)도 선물 받았다. 인생 잘못 산 건 아니네, 이렇게 많이들 마음 써주니 고마웠다.


하, 이렇게 작은 걸 입을 수 있다고? 아기옷 앞에서 전형적인 그림을 연출하며 우리는 기뻐했다. 출산 후 그 옷도 너무 큰 옷이란 걸 알았으니 앞으로 펼쳐질 세계에 대해선 정말 무지했던 거다. 둘이서 꾸려가던 가계가 셋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지 아는 바가 없었다. 댓돌에 신발 두 켤레 있을 때 돈을 모아야 한다는데 그땐 여기저기 쏘다니며 놀고먹고 배우느라 바빴다. 면전에서 '허, 완전 욜로네.'라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었다. 허허, 정말 좋은 시절이었지. 빠듯한 타임라인 안에서 지난날의 추억을 음미할 여유는 없었다. 버리고, 사고, 팔고, 다시 버리고, 사고, 팔고의 여정이 이어졌다. 그중 가장 덩치가 큰 물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우리 소유의 집이었다.


신혼집이 있던 동네, 원서동. 창덕궁을 곁에 둔 그 동네는 떠나고서도 계속 마음을 건드렸다. 아이를 가질 생각도 하지 않던 시절. 에어비앤비를 해 봐야겠다! 생각하고 바로 찾은 곳도 원서동이었다. 전산으로 쉽게 공유되지 않고 저마다 다른 단골의 매물을 가지고 있는 북촌의 복덕방. 여기저기 발품을 팔며 집을 구할 수밖에 없었다. 크지 않아도 된다. 연식이 오래되어도 된다. 오히려 좋다. 대신 거부할 수 없는 한 방이 있어야 한다. 호텔이나 레지던스 같은 편의대신 이곳을 선택해야 할 그런 이유. 그런 매력을 지닌 집을 기다렸다. 매일 퇴근길에 들러 사장님을 졸라대던 달은 '흠, 그럼 이 매물은 어떨까?'란 말을 듣게 된다. 드디어 두툼한 노트 안에서 집 주소가 흘러나왔다.


사장님은 통화해 보더니 지금 와도 좋다고 하네요. 이 주소로 가 보세요. 라며 주소를 써줬다. 우리는 번지를 찾고 계단을 올라 현관문 앞에 서 심호흡을 했다. 문에는 입춘대길, 건양다경을 쓴 종이가 붙어있었다. 이윽고 문을 열어준 것은 어린아이의 엄마였다. 직사각형의 집. 기다란 변은 서쪽을 향하고 있었다. 널따란 창으로 북촌의 풍광이 내려다보였다. 가장 아래론 계동길 한옥의 지붕들, 그 뒤로 경복궁, 그리고 눈을 들면 인왕산이 버티고 서있었다. 왼편으론 광화문의 빌딩들이, 오른편으론 북악산 자락이 들어왔다. 마침 해가 지고 은은한 노을은 집 안 깊숙이 스며들었다. 세탁실에선 남쪽 창으로 또렷하게 남산이 보였다. 마음이 두근거렸다. 여기다, 이 집을 사야겠다. 강한 확신이 들었다.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집주인은 흔쾌히 가격도 깎아주었다. 인생 처음으로 등기를 친 날, 그걸 기념하고자 정독도서관의 구내식당을 찾았다. 계약서를 들고 사진도 찍었다. 어린 얼굴의 우리가 들뜬 표정으로 웃고 있다. 이제 집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고칠 차례였다. 낡은 마루의 일부를 뜯어내고 새 마루를 깐다. 오래된 새시도 새로 바꾼다. 조명과 커튼도 단다. 냉장고와 세탁기, 침대와 테이블도 그 높은 계단을 무사히 올라왔다. 벽에 달라붙어 벽지를 긁어내고 도료를 새로 바른다. 퇴근길에 작업하고, 저녁을 대충 때우고 다시 작업했다. 잠시 쉴 때면 눈 아래 풍경이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만든 집은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블로그를 보던 독자님들도 게스트로 오셨다. 단골을 넘어 친구가 된 이들이 생겼고 별점 5개도 놓친 적이 없었다. 속으로 품어온 여성 예술가들의 레지던스란 꿈도 이뤘다. 그녀들이 집에서 머물며 만든 작품들은 내 마음속에 빼곡히 들어찼다. 나 역시 책을 썼다. 집을 찾고 가꾸고 나누며 지낸 이야기는 '여행이 좋아 여행자의 집을 꾸린 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세상에 나왔다. 나는 원서동 집을 소중한 빈티지 보석처럼 여겼다. 사연을 빼곡히 담은, 오래되어 더 귀한 그런 보석 같은 집.


이 집을 팔기로 하며 적잖이 아쉬웠다. 우리처럼 집을 좋아해 줄 사람이 나타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인터넷에 사진과 함께 소개글을 올리자 집을 보고 싶다는 연락이 이어졌다. 심지어 '구해줘 홈즈'의 작가에게서도 연락이 왔다. 이건 우리도 예상 못한 일이었다. 결국 방문 시간표를 짜고 순서를 정해 문자를 돌렸다. 그때 연락이 왔다. 예전부터 알던 원서동의 까페 사장님. 사장님 친구가 링크를 보내며 마음에 드는데 너희 동네니 한 번 봐 달라 했다 한다. 링크를 보니 익숙했다. 바로 <원서동 자기만의 방>에서 본 우리 집이었다. 사장님은 보자 말자 자기가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했다. 사장님, 그래도 집은 직접 보셔야죠. 하면서도 싱글벙글했다. 우리가 상상한 이상적인 매수자, 동네를 익히 알고 사랑하며 이 집도 아껴줄 그런 사람이었으니.


그래서 부동산 하나 거치지 않고 일사천리로 계약되었다. 계약서 작성만 부동산에서 했다. 처음 그 집을 연결해 준 바로 그 부동산에서. 복비는 없이, 대서료는 10만원. 행복하게 잘 사세요. 서로 그런 인사를 주고받았다. 가장 큰 물건을 해결했으니 남은 것은 수월했다. 신생아와 보내는 좌충우돌의 시간, 아기띠로 아기를 안고서 삼청공원을 많이 걸었다. 곧 떠날 동네에서 남기는 추억들. 백일 된 아기는 아는지 모르는지 나무 그늘 아래서 잠이 들곤 했다. 2020년의 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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