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한 글자 (4)
그 무렵 아기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 7시 50분 기상, 밤 9시 30분 취침. 그 사이 네 번의 수유, 네 번의 낮잠이 있다. 낮잠은 30분 단위의 짧은 잠부터 1시간 반 가량의 긴 잠도 있다. 잠과 식사 사이 기저귀도 갈고 목욕도 한다. 산책도 하고 놀이(발차기, 모빌 보기, 손수건 빨기 등)도 한다. 아기의 연한 성대에선 아직 말이 되지 못한 소리들이 옹알옹알 굴러 나온다. 그 소리와 기척을 감지하고 의미를 파악해 수행하는 것이 그때 나의 일과였다. 한여름 양손에 손목 보호대를 찬 채 따끈한 아기를 안고 토닥이는 것, 분유포트의 물의 양과 남은 분유 재고를 살피는 것, 물에 적셔 짠 손수건으로 손과 턱 아래를 닦아주는 것. 아기의 몸에선 달달하고 포근한 냄새가 났다.
짧은 낮잠들 사이 열심히 수납박스를 채웠다. 아기의 옷, 손수건, 장난감 등의 물건들은 다른 사람의 손을 타지 않도록 미리 챙겨두고 싶었다. 이제 우리와 산 지 몇 개월 안 된 사람임에도 짐의 부피와 개수는 상당했다. 채우고 또 채우고 잠시 꺼냈다 다시 채우고를 반복하고 나니 손톱 아래 살이 벌겋게 부풀었다. 손끝에 힘을 많이 주면 이렇게 손이 개구리처럼 붓기도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동시에 끊임없이 문자를 보내 일정을 조율하고 일의 순서를 맞추느라 머리를 싸맸다. 잔금과 이삿날 사이의 며칠, 우리는 집의 일부를 수리하고자 했다.
거실과 화장실, 싱크대의 줄눈. 창틀과 붙박이장의 필름 입히기, 부엌 타일 시공, 붙박이장과 시스템에어컨 설치 등의 큼지막한 일정들이 생겨났다. 기존의 수납장에선 하이그로시 특유의 광이 맴돌았다. 그걸 무광으로 덮고 싶었다. 부엌 타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요철 있는 유광 타일 대신 무광의 샌드베이지 컬러의 넓은 타일을 골랐다. 좁은 집, 게다가 아기까지 있으니 수납공간을 최대한 마련하는 게 수였으므로 방마다 붙박이장을 넣기로 한다. 공정과 공정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도록, 그리고 순서가 어긋나지 않도록 배치와 조정이 필요했다. 예를 들어 인테리어 필름의 경우 먼지가 자욱한 공간에선 좋은 결과를 보기 어렵다. 먼지와 기포들이 필름의 밀착을 방해할 테니까. 그럼 제일 먼저 시공해야 한다. 앞으로 전진.
시스템에어컨의 시공 소요시간은 길지 않다고 했다. 보양 작업을 할 것이므로 먼지도 별로 날리지 않는다고. 그럼 유연한 일정으로 잡아둔다. 줄눈의 경우 타일 틈새의 기존 백시멘트를 파낸 뒤 시공하는지라 먼지가 날린다. 파내는 작업을 하는 동안 소음도 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낮으로 배치. 부엌 타일 역시 사이즈에 맞게 타일을 재단하는 과정에서 많은 소음과 먼지를 유발한다. 역시 낮으로 배치. 면적이 넓은 만큼 필름은 소요시간이 길지만 다행히 소음은 전혀 없다. 오후에서 저녁까지 배치. 일정상 붙박이장은 이삿날 설치하게 되었다. 그럼 공사 마치고 이사 전 틈새에 입주 청소가 가능하단 계산이 나왔다. 그렇게 배치. 짐 없이 휑한 집에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두고 공사 과정을 지켜보기로 했다.
옆집, 윗집, 윗윗집, 아랫집, 아래아랫집엔 미리 쪽지와 함께 종량제 봉투 한 묶음씩을 돌렸다. 주택살 땐 밤늦도록 음악을 듣고 사람들을 불러 놀기도 했지만, 이젠 몸을 사리고 양해를 먼저 구해야 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들어가는 마당에 밉보여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물과 파우치 커피, 일회용 컵과 편의점 얼음으로 냉장고도 채웠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공사가 시작되었다.
가히 대단한 것은 타일 시공이었다. 다용도실에서 진행된 절단은 그야말로 요란했다. 방화문을 닫았음에도 소음과 먼지가 터져 나왔다. 다 자른 타일을 옆에 두고 레이저 수평계의 선을 띄운다. 모르타르를 배합해 흙손에 얹고서 빈 벽에 쓱쓱 발라나간다. 그리고 두 사람이 균형을 맞춰가며 하나씩 붙인다. 모르타르를 보자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떠올랐다. 적당한 점도의 모르타르는 비 온 다음 날 놀이터 그네 밑에서 놀던 기억도 불러왔다. 함부로 손을 쑤셔 넣어 반죽하고 쌓고 두드리던 모래성도. 하지만 상념에 잠길 사이 없이 작업은 빠르게 진행된다. 두 사람 분의 작업비, 재료비, 추가된 재료, 폐기물 처리비용까지 적힌 영수증을 받고 해당 금액을 명함 속 계좌에 입금한다.
공정 별로 따로 수소문해 모은 분들인데 결과물은 만족스러웠다. 필름 사장님은 시간을 아끼고자 내가 떠난 뒤에서 한참을 남아 작업을 하셨다고 한다. 다음 날에도 아침 일찍부터 나와 작업을 마무리 짓고, 약속한 시간 내에 일을 마치고 떠났다. 텅 비고 설은 공간이 그렇게 채워진다. 휑하고 낯설지만 톤과 컬러는 익숙한 그런 그림이 완성되었다. 안도의 한숨. 이제 집에 돌아가 이사 전 마지막 짐 점검을 할 시간이다. 새벽부터 시작할 이사를 위해 나와 아기는 하룻밤 호텔에서 자기로 했다. 달은 집에 남아 이사 일정을 마무리할 작정이다. 들어갈 집에선 엘리베이터로 이사를 해야 한다는 말에 이삿짐센터 직원은 새벽 3시부터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치 짐가방엔 소분한 분유, 분유포트, 다량의 기저귀와 손수건, 아기 수건과 바디수트들이 자리 잡았다. 장난감도 몇 개 넣었다. 인생 첫 호캉스는 그렇게 어영부영 흘러간다. 나는 아기를 안고 저녁 무렵 조계사를 거닐고 돌확에 차오른 연꽃을 구경한다. 저기 봐, 연등이야. 연꽃도 참 예쁘네. 눈앞의 것들을 아기에게 일러주지만 아기는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잠이 든다. 처음으로 혼자서 아기를 돌보는 밤, 이른 새벽부터 이사에 분주할 달. 내일이면 새로 이사 갈 집. 여러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숙련된 몽골 출신의 직원들 덕에 이사는 순조로웠다고 한다. 붙박이장 설치가 끝나야 짐을 구획해 넣을 텐데 그게 조금 늦어져 애를 먹었다고도 한다. 결국 다 넣지 못한 짐들은 거실에 남았다고도.
다 마무리되었단 연락을 받고 나도 갈 채비를 했다. 카시트에 아기를 눕히고 벨트도 단단히 맸다. 네비게이션에 주소를 찍는다. 이곳 종로에서 10리, 아기와 나는 왕십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