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한 글자 (5)
휑함과 어지러움이 공존하던 이사 초기. 짐들은 느리게 제 자리를 찾아갔다. 머릿속 상상과 실제는 달라 가구의 배치를 바꾼 것도 여러 번이다. 책장과 서랍장, 침대와 쇼파의 위치가 달라졌다. 아기가 제법 꿈틀거리기 시작하고부턴 거실 가득 매트를 깔고, 베이비룸도 둘렀다. 그걸 충분히 쥐고 흔들 수 있게 될 무렵엔 운동화 끈을 여러 개 이어 베이비룸과 가구의 다리들에 단단히 묶었다. 매트 아래로 거미줄이 지나가는 셈이었다. 아기는 거기서 엉금엉금 기고 아장아장 걸으며 차차 기동성을 키워나갔다.
나는 나대로 지리적 감각을 다듬느라 바빴다. 혼자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아기를 안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 유아차에 태워 갈 수 있는 곳, 차로 이동 가능한 곳 등을 익혀나갔다. 마트, 시장, 놀이터, 공원, 병원과 약국, 빵집, 도서관과 서점 그리고 카센터까지. 밥도 먹이고 놀이도 하고 책도 읽어주었는데 고개를 들면 오전 10시였다. 앞으로 펼쳐질 하루가 까마득할 때면 나갈 채비를 했다. 손수건, 빨대컵, 일명 떡뻥이라 부르는 쌀과자, 그리고 쪽쪽이를 챙겼다. 유아차를 밀면 그래도 시간이 갔다. 놀이터를 들렀다 도서관도 들렀다 카센터 앞에선 잠시 멈춰 수리 중인 차들을 구경했다. 차들이 아- 하고 입 벌리고 있네. 하면 아기는 갓 만들어진 이로 떡뻥을 녹여먹었다.
어제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딱 고맘 때의 아기와 아기 엄마를 만났다. 유아차 속의 아기는 칭얼거리고 있었다. 분홍색 입 안으로 하얗게 돋은 아랫니 두 개가 보였다. 아기 엄마는 그래그래, 하며 아기를 달래다가 집게손가락을 자기 입에 가져다 대며 쉿, 쉿 하는 소리를 냈다. 옆에 탄 나를 의식해서 그랬겠지.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렇게 말하곤 내리면서 한 손을 불끈 들어 보이며 화이팅!이라고 속삭였다. 그 정도 칭얼거림은 얼마든지 괜찮았다. 이 앓이를 하느라 늦은 밤 울어대던 시절이 떠올랐다. 다른 집에 이 소리가 들리면 어쩌지, 밤잠을 깨우면 어쩌지. 아기와 윗집, 아랫집을 비롯해 모든 이들의 잠을 걱정하느라 정작 나는 잘 자지 못했다. 잠은 모자라고 마음은 외로웠다.
고립감. 남과 사귀지 않거나 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여 홀로 된 느낌. 사전적 정의는 정확했다.
아는 이 하나 없는 동네에서 누구를 새로 사귀긴 어려웠다. 모두가 하얗고 검은 마스크를 쓰고 있던 시절이었다. 색깔 있는 마스크나 무늬 있는 마스크를 쓸 만큼 여유와 위트가 있던 때도 아니었다. 놀이터나 공원처럼 탁 트인 공간에서도 마스크를 벗는 것은 타인의 건강을 위협하고 사회를 뒤흔드는 반동분자의 난행이었다. 땀이 줄줄 흘러도 꼭꼭 마스크 줄을 여미는 일은 상식적인 사회 구성원의 도리였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단지 내 산책로, 놀이터에서 만난 그 누구와도 친해지기 어려웠다. 말 그대로 안면顔面을 틀 수 없었으니 애매한 눈빛으로 아기들의 뒤뚱거림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돌이든 나뭇잎이든 자꾸 뭘 만지려는 아기를 저지하느라 애를 썼다. 그중 가장 만져서 안 될 것은 다른 아기였다. 서로를 위해 그러는 게 좋았다.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아기의 손을 수시로 닦이고, 공용 공간의 버튼을 누를 땐 핸드폰 모서리로 쿡 찔렀다. 그 핸드폰은 다시 알콜스왑으로 자주 닦았다. 가방엔 늘 몇 개의 알콜스왑이 굴러다녔다. 창고엔 대용량 에탄올을 구비해 두었고 마침내 민무늬 새부리형 마스크에 정착했다. 현관문엔 자석 고리들을 달았다. 문을 열고 닫을 때면 차 키와 마스크가 대롱대롱거렸다.
아기가 꼬마가 되고 처음 다닌 어린이집 선생님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1년 내내 우리는 마스크 너머로 인사를 나눴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마주치는 다른 아이들 보호자와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매우 피상적인 교류였다. 꼬마는 처음엔 마스크를 쓰지 않겠다고 하여 걱정시키더니 나중엔 마스크에 단단히 집착하여 속상하게 했다. 차 안에서도 거실에서도 심지어 잘 때도 쓰고 있고 싶다고 떼를 쓰며 울었다. 네모 마스크(일반적인 마스크), 세모 마스크(새부리형 마스크), 동그랗게 뚫린 마스크(입 모양만 투명인 마스크)등의 이름을 정해가며 집착을 더해가길래 어느 날엔 남은 마스크를 다 버려버렸다. 이젠 없어, 다 없어. 마스크 해제가 되고서 얼마 지난 무렵이었다. 꼬마는 마스크 잃은 백성처럼 엉엉 울었고 나는 냉정한 독재자처럼 굴었다.
마스크를 벗고 나자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몇 층에 사는 누구는 몇 살이고, 이름은 무엇이다. 또 다른 층에 사는 아이는 몇 살이고 어디 어린이집에 다닌다. 엘리베이터의 좁은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했다. 오며 가며 인사를 나누고, 가끔은 놀이터에서 만나 놀기도 한다. 비록 한 명이 비눗방울을 불 때 다른 한 명은 킥보드를 타는 수준의 놀이지만 그건 점진적으로 발전된 교류임에 분명하다. 마주치는 어르신들께 인사를 잘하는 꼬마가 되어간다. 특히 아랫집 어르신들을 만날 때면 내 고개는 더욱 숙여진다. 뒤집기만 하던 아기에서 흥에 겨워 춤을 추는 꼬마가 되기까지 한 번도 언짢은 내색 안 해주셔서 늘 감사하다. 공동주택의 질서와 도덕을 이렇게 배워나간다. 체득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