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라는 한 글자 (6)
전셋집을 떠돌 땐 늘 1년을 기점으로 불안이 찾아왔다. 계약서에 명시된 기간은 2년이고, 보통은 계약만료 전 충분한 통지를 한다는 걸 알지만 세입자로 지내는 동안엔 그게 늘 머리에 박혀있었다. 계약 조건이 변경될 수 있다. 집을 나가야 할 수 있다. 다른 집을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사한 지 1년 후면 그런 비상등이 켜지는 셈이었다. 느리게 빙글빙글, 깜박깜박 빨간 불을 밝히는 느낌. 그런 사람인만큼 당연히 집에 못 하나 박은 적이 없었다. 액자를 걸고 싶을 땐 접착용 점토를 이용했고, 무얼 매달고 싶을 땐 기존의 구조물을 활용했다. 남의 집에 사는 사람의 몸에 밴 조심성이랄까. 사정없이 가혹하게 우릴 내친 집주인은 없었고, 원하면 더 살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2년, 4년, 2년. 짝수의 돌림노래처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겨 다녔다.
내 집에 들어오고 나니 그런 불안은 사라졌다. 이제 누구도 저, 이번에 세를 좀 올리려고 합니다. 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살던 대로 살면 되었다. 못도 원하는 만큼 박아도 되었다. (하지만 하나 박고 끝냈다) 물론 대출금은 매월 착착 납입되고 있었다. 월말이면 돈이 뭉터기로 사라졌으니 사실 명의만 내 집이고 은행에 월세 들어 사는 셈이었지만, 어쨌든 등기부등본 위 이름은 우리였다. 근저당 금액이 똑똑히 명시된 등기부라 하여도 명의는 온전했다. 나는 그래서 그 멋쩍은 농담의 진실을 안다. 아유, 현관만 내 거고 다른 데는 다 은행 거야. 란 말에 깃든 자부와 뿌듯함의 농도를 안다. 빚도 자산이라는 말. 대출도 능력이란 말. 괜히 고깝게 들릴 수 있는 멋쩍은 너스레들.
하루종일 아기와 씨름하며 보내는 사이 세상은 많이 술렁거리는 모양이었다. 코로나라는 초유의 사태는 저금리, 다시 말해 통화의 증폭을 불러왔다. 먹고살기 위해 필요한 물건들의 값이 올랐고 집값도 예외는 아니었다. 수능 선택과목으로 경제를 택했고, 좋은 점수를 받았지만 나는 확실한 무지렁이였다. 내가 배운 것은 수요 공급 그래프와 보이지 않는 손, 케인스, 막스 또는 맑스 등등이었지만 지식은 딱 거기까지였다. 경제의 작동 원리에 대해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다. 대출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 자본소득을 불로소득이라 여기는 가치관, 그리고 여기저기서 난립하는 이른바 부동산 분석가들에 대한 거부감이 그러했다. 그럼에도
재테크, 갭투자, 영끌, 임장, 상급지와 하급지, 초품아, 초중품아, 학군지, 떡상, 떡락, 업그레이드, 다운그레이드, 옆그레이드, 신고가, 신축, (구옥 대신) 구축, FOMO, 추격 매수, 패닉 바잉 등의
말들이 내 곁을 떠돌았다. 칭얼대는 아기를 추스르느라 적당히 눈 감고 귀 닫고 지냈음에도 이런 말은 곳곳에서 들려왔다. 그리고 말에 담긴 뉘앙스는 한 방향을 가리켰다. 지금 네가 끌어모을 수 있는 모든 가용금액을 활용해 집을 사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패배자다. 불안을 부추기는 말들, 말의 거품들, 거품이 빚어내는 환상들. 눈을 내려 깔았지만 다 닫지는 못했다. 적당히 접은 귀도 자꾸 쫑긋 세워졌다. 그럼 우리도 아슬아슬하게 이 열차에 올라탄 걸까? 이 열차는 저금리와 인플레이션의 선로를 따라 안온한 곳으로 우릴 데려다줄까?
그 안온이 진짜 안온이 아닐 거란 건 미리 알 수 있었다. 열차에 올라탄 이상 우리는 끊임없이 허기질 터였다. 조금 더 넓은 평수, 조금 더 좋은 동네. 그곳에 도착하고 나면 거기서 더 넓은 평수, 더 좋은 동네를 찾을 거였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이전의 나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을 배신한 듯한 감정, 어딘가에 오염된 느낌. 떨떠름하고 꺼림칙한 감각. 이는 대부분 나의 무지에서 기인했다. 아는 것, 쥔 것 하나 없으면서 세상을 움직이는 욕망을 삿된 것이라 여기는 태도. 수와 셈에 흐리다는 게 곧 고결과 고상의 지표가 아닐진대 그걸 한 데 묶어 어우르는 사고방식. 그러나 나는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긍정과 부정, 낙관과 비관 사이를 떠돌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품 안의 아기는 벙싯벙싯 웃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