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와의 전쟁

집이라는 한 글자 (10)

by 한량

퇴근하기 위해 출근하고, 여행을 가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 여기 있다. 말뚝에 묶인 줄이 팽팽해지도록 멀리 날아갔다 다시 돌아오는 삶. 적어도 그 기억으로 버틴 시기들이 있었다. 오랜 비행을 견디고 더듬더듬 찾아간 곳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집이었다. 호스트의 살림과 물건이 놓여있는 공간에서 우리는 방 한 칸, 혹은 집 전체를 빌려 얼마를 지냈다. 아침이면 강아지가 젖은 코로 방문을 밀며 들어온다. 그렇게 잠을 깨면 낯선 공간이 차차 눈에 새겨졌다. 여러 번 덧칠한 페인트의 흔적, 햇볕에 바랜 비치타월, 먼지가 내려앉은 액자들. 그 속에서 웃고 있는 얼굴들. 살고 있는 사람은 잊었을, 게스트의 눈에 보이는 것들.

사진 속 실내장식들이 흥미롭고, 면적 대비 가격이 괜찮고, 무엇보다 도심 속 집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 선택한 집이 있었다. 오뗄 드 빌, 파리 시청역 근처의 집은 센 강변까지 한 블럭 반, 퐁피두센터와도 한 블럭 반 거리였다. 체크인을 하고 두근거리며 곳곳을 둘러보니 사진 속 실내장식은 그저 장식이 아니었다. 벽난로가 있는 커다란 거실, 뒤편에 딸린 작은 부엌, 수납장으로 벽을 메운 침실에선 여기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이 읽혔다. 압권은 침대가 2개 놓인, 그런데 그냥 침대 하나와 무려 3층짜리 침대 하나가 놓인 그래서 어린이 호스텔 같았던 방이었다. 아무래도 첫째 아래로 세 쌍둥이가 태어난 모양이었다. 소개글 어디에도 그런 말은 없었지만 방을 둘러보면 절로 알 수 있었다.

초등학생용 책상 하나와 앙증맞은 어린이 책상이 셋, 거기엔 엉덩이 반쪽 밖에 못 걸칠 작은 의자 셋이 딸려있었다. 방 곳곳엔 크고 작은 책가방들, 인형들, 세발자전거와 장난감들이 즐비했다. 신선한 충격을 느끼며 거실로 나오자 테이블 위 메모가 눈에 들어왔다. 인사말을 훑는데 마지막 대목이 조금 길었다. 띄어쓰기 하나 없이 이어진 그 문장은 아이들 넷의 이름이었다. 그게 바로 이 집의 와이파이 패스워드였다. 불어 이름 넷을 더듬더듬 입력하며 생각했다. 아무나 잡아쓰기 어려운 패스워드구나. 그렇게 줄줄이 잇단 아이들과 휴가를 가는 동안 우리에게 집을 빌려준 호스트. 게스트를 위해 깔끔하게 정리해 두었으나 정돈에는 가닿을 수 없는 범위, 아이 넷이 주는 위엄은 그러했다. 그땐 그게 신기하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때는.


넷도 아닌 하나건만 우리집은 늘 부산스러웠다. 조그만 사람의 발달 단계에 맞게 필요한 것들은 어찌 그리 많은지. 그나마 다행인 건 성장에 반비례해 필요한 물건의 크기와 수는 줄어들었다는 거다. 늦은 밤 느닷없이 우렁차게 동요를 불러대던, 그래서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장난감들은 모두 퇴출된 지 오래다. 싱크대 위 상당한 존재감을 자랑했던 일명 분유존도 기억 너머로 사라졌다. 그렇게 분유에서 우유로, 이유식에서 유아식으로, 차차 우리와 같은 밥을 먹기까지의 시간이 흘렀다. 꼬마가 잠들고 나면 나는 거실을 뱅뱅 돌며 그날의 흔적들을 치우기 시작한다. 퍼즐조각, 바람 빠진 풍선, 볼트와 너트, 구멍 난 비닐봉지, 고무장갑, 돌돌 말린 양말, 색종이 뭉치, 흩어진 책 등등.


작년 어린이집에선 그나마 예쁜 쓰레기들을 들고 왔다. 서투른 아이들 대신 선생님이 정성스레 만들어 주신 그림과 편지 같은 것들. 올해는 그냥 쓰레기들을 들고 온다. 주물럭거린 점토, 빨간색 강렬한 선으로 가득한 그림(물어보니 불을 그린 것이라 했다),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종이 뭉치. 그리고 나는 그것들을 고이 접어 쓰레기통에 버린다. 미안, 엄마 눈엔 그저 한 떨기 쓰레기란다. 버리는 걸 들켰다간 그 순간 절대 버리면 안 되는 것 상위 리스트에 등극하기 때문에 몰래 버리고 만다. 그렇게 부지런히 치우건만 돌아서면 알록달록, 다시 돌아서면 휘황찬란한 세계 속에 서 있다. 이건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 증가-의 분명한 예시로, 매도를 위한 밑작업을 하기엔 정말 난감한 세계다.


그래서 꼬마와 달이 할머니 집에 놀러간 주말이 되어서야 겨우 몸을 일으킨다. 책장을 탈탈 털어 침과 이유식, 과즙 등으로 얼룩진 책들을 모조리 꺼낸다. 이제는 거들떠보지 않는 장난감들을 꺼내 물려줄 것과 버릴 것들을 추린다. 작아진 옷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집을 뒤엎을수록 점차 신명이 난다. 방해할 이도 저항할 이도 없기에 차차 영역을 넓혀간다. 몇 개의 종량제 봉투를 버리고 나니 살 것만 같다. 이어 눈에 걸리는 것이 없도록 자잘한 물건들은 수납장에 몰아넣는다. 거실 매트를 걷어낸 다음 로봇청소기를 돌리고 또 돌린다. 창틀, 스위치, 전등갓, 거울과 창을 닦고 또 닦는다. 식물의 시든 잎을 자르고 책과 그림을 재배치한다. 커튼위치를 조정하고 간접조명을 켠다. 사뭇 달라진 모습에 나는 감격한다. 그래, 나는 이런 집에 살고 싶었어.

각 공간마다 해가 아름답게 들 시간을 계산해 사진 촬영에 나선다. 촬영에 걸리적거리는 것들은 프레임 밖으로 빼고, 이리저리 각도를 재어가며 곳곳의 사진을 담는다. 잔잔한 생활감이 깃들었으나 그래서 실감나는 집의 모습을 구현하려 애쓴다. 거기에 '살고 싶은 집'이라는 이데아를 슬쩍 얹고자 노력을 기울인다. 그렇게 종종거리는 사이 하루가 저문다. 이미 소기의 목적은 흐려진 지 오래다. 버리고 치우고 닦고 쓰는 일에 순수한 열정을 불태웠다. 아름다운 찰나를 남기는 데에 전력투구했다. 다시 태어난 집은 낯설지만 또 익숙하다. 고요, 청결, 평화. 꼬마와 달이 없는 며칠, 나는 홀로 진공의 집을 마음껏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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