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보러 오는 손님을 기다리는 자세

집이라는 한 글자 (11)

by 한량

A, B, C 부동산이 있다. D, E, F 부동산도 있다. 이렇게 촘촘하게 있어서야 어디 장사가 될까 싶은데, 몇 년째 건재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잘 굴러가는 듯싶다. A 부동산은 우리가 이 집을 매수할 때 거래한 곳이다. 나이 지긋하신 사장님과 실장님이 아주 예전부터 운영하는 곳이다. 일명 토박이 부동산. 동네가 재개발되기 이전부터 여기 있었으며 이 일대가 아파트 단지로 변하고 난 뒤 점포를 하나 더 늘렸다. 동네의 변화와 흐름을 꿰뚫고 있는 셈이다. 아파트 단지 사람들의 평은 이렇다. 매수하기엔 좋지만 매도하기엔 좋지 않은 부동산이라고. 뭐가 다르다는 걸까 싶어 살펴보니 가격 흥정, 이른바 '네고'에 열심이라 사려고 하는 물건을 열심히 깎아준다는 평이다. 우리는 말 한마디 못하고 호가에 구매하고 말았지만.


B 부동산은 아파트 상가에 입점한 부동산이다. 중년의 아저씨 사장님이 역시 중년의 아저씨 실장님과 운영하고 있다. 여긴 A 부동산과 반대로 가격을 잘 받아준다는 평이 있었다. 팔 때는 여기 내놓는 게 좋다고. 물론 그건 B 부동산 사장의 간접 광고였을지 모른다. B 부동산 사장은 이곳 아파트 단지의 주민이다. 아, 그건 A 부동산 사장님 역시 그렇다. 환상의 직주근접을 바탕으로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경쟁을 펼치고 있다. 가끔 경쟁은 눈에 훤히 보이기도 한다. 두 부동산 모두 손님과 단지 안을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C 부동산의 위치는 가장 좋다. 아파트 상가의 입구,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중년의 사장님이 실장 없이 혼자 운영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매물 정보를 직접 프린트한 종이로 붙여둔다는 점이다. 다른 부동산이 전광판을 활용할 때, 여긴 형광펜으로 덧칠하거나(주로 '급매') 바뀐 호가를 두 줄 긋고 수정해두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은근 시선을 붙잡는 구석이 있다. 지나칠 때면 쓱 둘러보게 된다. D와 E, F도 각자 다른 영업 전략으로 공존하고 있다.


의리라면 의리랄까, 우리는 A 부동산부터 매물을 내놓기 시작한다. 중고시장이 그렇듯 역시나 가격 책정이 가장 큰 문제. 급하게 서둘러 팔아야 한다는 뉘앙스는 보이지 않자 사장님도 먼저 가격을 제시하진 않는다. 일단 최근 거래가보다 높은 가격을 불러본다. 최근 거래가보단 적당히 높고, 우리의 최종 목표 가격에선 조금 높은 금액이다. 최종 목표 가격은 그냥 감으로 정했다. 이 정도는 받고 팔았으면 좋겠다는 희망 섞인 금액. 이런 기대가 모여 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겠지.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함께 부동산을 나왔다. 이어 B 부동산에도 매물을 내놓으러 간다. 거기엔 이미 다른 손님이 와 있었다. 우리는 잠시 자리에 앉아 기다린다. 손님들은 멀뚱히 앉아있고, 사장님은 통화 중이었다.


대화로 미루어 짐작했을 때 손님들은 사러 온 사람, 통화 중인 사람은 팔려는 사람 같았다. 지금 부른 가격은 좀 높다고, 얼마까지 깎아주면 지금 바로 사려한다는 말이 이어졌다. 대화는 나긋나긋 부드럽지 않았고, 사장님의 말투는 살짝 거칠게까지 느껴졌다. 약간의 윽박이 섞였달까. 결국 협상은 이뤄지지 않았고 손님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나섰다. 그게 첫인상이었던지라 우리의 마음에도 약간의 선입견이 생겼다. 박력은 박력인데 완급조절이 잘 안 되는 눈치. A 부동산과 같은 가격과 조건에 매물을 내놓고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것만 했는데도 벌써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나약해져선 안 된다. 이제 시작인 거다.


첫 타자는 A 부동산이었다. 집을 보겠다는 손님이 있다며 약속을 잡고자 했다. 생각보다 빠른 반응이라 가슴이 쿵쿵 뛰었다. 단번에 팔리면 어쩌지? 어쩌긴 뭘 어째, 좋게 파는 거지. 여러 생각을 하며 약속 시간을 정했다. 사진과 다른 모습이면 안 되겠단 마음에 다시금 집 곳곳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시간 맞춰 드립 커피도 내렸다.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나는 분 단위로 시계를 보았다. 곳곳을 눈으로 훑으며 마지막 먼지를 훔쳤다. 그래도 시간이 남아 서성이는데 가슴이 조여드는 느낌이 들었다. 안다, 너무 익숙한 이 감각. 게스트가 도착하길 기다릴 때 언제나 이런 기분에 휩싸였다. 만반의 준비를 다 해두었거만 그래도 긴장되는 마음.


첫 손님은 중년의 부부였다. A 부동산 실장님은 익숙한 레퍼토리로 그들을 인도했다. 기시감이 들었다. 우리가 집을 볼 때 들려줬던 이야기들이었다. 3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 레퍼토리는 별로 변함이 없었고, 장소마다 머무는 시간은 짧았다. 갓 내린 커피를 그들 손에 쥐어주며 나도 대화에 참여하고자 애썼다. 우리집이 가진 장점들을 어필하기 위해 종종거리며 따라다녔다. 내가 바란 것은 조금 더 느린 리듬의 왈츠로 공간마다 세세한 인상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러나 실장님은 스타카토로 치고 나갔다. 결국 그들은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신발을 꿰어 신고 나섰다. 아이고, 이 짧은 프리젠티이션을 위해 이렇게나 준비했구나. 약간 맥이 빠지고 말았다.


오래 집을 살펴볼수록 진짜 구매자가 된다는 가설에 대해선 아직 경험치가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그냥 쓱 둘러보고 나가는 사람보단 꼼꼼히 살펴보고 궁금한 점을 묻고, 미래의 세부 일정도 조율해 보려는 이가 진짜 구매자에 가까운 것 아닐까? 층간 소음 여부라든지 일조량, 수납공간의 적재량 같은 걸 물어보면 나는 상세한 브리핑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은근히 물어오길 기다리고도 있었다. 그런 기회가 차단된 아쉬움에 대해 달에게 토로하니, 원래 집은 가볍게 보여주고 자세한 이야기는 사무실로 옮겨 하지 않을까? 란 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집 볼 때 생각해 봐. 그때도 그냥 구조나 방향 확인 정도로 짧게 살펴보고 사무실 가서 길게 이야기하곤 했잖아. 집 보여주는 사람들도 그냥 소파에 앉아있거나 했다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후다닥 보고 이끌려 나서는 바람에 나중에 기억을 짜 맞춰 집을 상상했던 기억이 났다. 거기 구조가 이랬지? 식탁을 어느 방향으로 뒀더라? 붙박이장 들어갈 공간이 나올까? 이렇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시간을 들여 손님에게 집 구석구석을 소개하고 싶었다. 직접 조명들도 켜보이고, 여럿 옵션들을 소개하고, 가족 구성원의 수에 따른 가구의 배치도 함께 의논하고 싶었다. 시간이 된다면 가벼운 스몰토크도 나누면서. 그럴 때 마시려고 커피도 내려두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수더분한 호스트를 꿈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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