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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일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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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Mar 08. 2024

일종의 허니문

프랑크푸르트 첫인상

도착하고 며칠 날이 몹시 좋았다. 해를 등지고 앉으면 가디건만 입은 등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길가의 잔디는 푸릇푸릇 솟아오르고, 해 잘 드는 자리의 벚꽃은 조금 꽃을 틔웠다. 그건 마음 건강에 꽤 도움이 되었다. 제일 먼저 산 것도 화분이다. 꼬마와 둘이서 동네 마트에 갔더니, 입구에 각종 화분들이 가득했다. 수선화나 무스카리, 알리움 같은 구근이 많았다. 나는 파란 화분에 든 파란 실라를, 꼬마는 진분홍 화분에 든 아마도 히아신스를 골랐다. 내 것은 이미 꽃이 피어있는데, 꼬마 것은 아직 꽃망울만 영글어있다. 무슨 색 꽃이 필 것 같아? 하고 물으니 분홍꽃이란다. 이유는 화분이 분홍색이라서. 일리가 있는 말이다.

독일에 가 본 적 있어요? 주변에서 많이들 물어보았다. 아니요. 이번이 아예 처음이에요. 그래서 잘 몰라요. 정말이지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여행에서 만나는 도시와 정착해 사는 도시의 얼굴이 다를 거란 것만 짐작할 뿐. 무서운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딱딱해 보이는 인상, 배우기 어렵다는 언어 등. 그래, 오스카 와일드도 그랬다는데. 독일어를 배우기엔 인생은 짧다고. 간 김에 둘째라도 낳는 건 어때요? 이런 질문 앞에선 손사래를 쳤다. 어휴, 그럼 거기가 곧 아우슈비츠죠. 잠시 터지는 헛웃음들. 이런 농담도 한국에서나 가능한 일일 테지. 이러한 무지와 몽매로 가득 찬, 세계시민이 되려면 수용소에서 전기충격부터 받아야 할 내가 여기 낯선 땅에 왔다.


얼마나 낯설었냐면 입국심사관에게 여권을 내밀며 '올라'라고 말할 정도다. 이 정도면 완전히 도라이죠. 다행히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는 '챠오'도 통용되었다. 더욱 다행스러운 것은 어느 정도 영어로 대화가 통한다는 거다. 다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데, 자신의 영어 실력이 부족해서 미안하다는 말도 한다! 세상에나. 무슨 상견례 자리도 아니고. 겸손만큼은 나도 어디 가서 빠지지 않는 터라, 보행자를 보면 칼같이 멈춰서는 운전자를 보면서도 목례를 한다. 가게를 나설 땐 꼬박꼬박 꼬마에게도 인사를 시킨다. 챠오라고 할래, 츄스라고 할래? 꼬마는 제 기분 내키는 대로 챠오, 츄스를 골라서 한다. 들어설 때는 할로!라고 크게 외친다. 어제부턴 지나가는 다른 꼬마에게도 할로! 인사한다. 역시 어린이의 적응력은 대단하다.

두 번째 쇼핑은 자전거였다. 짐을 나눠 보내는 바람에 정작 속옷의 개수도 부족하거늘 일단 자식사랑이 먼저라 자전거를 사러 갔다. 왜냐하면 이 동네 어린이들은 바퀴 없이 걷지 않기 때문이다. 아기들은 유아차, 걸음마를 시작하면 밸런스바이크, 조금 더 크면 킥보드와 페달 자전거로 나아간다. 더 자라면 보드를 타기도. 길에는 온갖 바퀴들이 굴러다닌다. 그 어린이들 모두 헬멧을 단단히 쓰고 있기에 꼬마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그래서 꼬마도 인생 첫 페달 자전거와 헬멧을 장만한다. 보조 바퀴는 아니 달기로 한다. 아직은 페달을 밟지 못하고 그저 두 발을 굴러 나아가지만 성장세가 무섭다. 이제 왕복 30분 거리는 자전거(엄밀히 두 발로)로 거뜬하다. 덕분에 밥을 엄청 많이 먹고 있으며, 침대에 누우면 쿨쿨 곯아떨어진다. 좋은 일이다.

겁먹은 것과 달리 초심자의 행운이 깃드는 듯 보인다. 특히나 꼬마와 함께 있으면. 도착한 다음 날, 시차 적응도 제대로 되지 않은 아침. 꼬마와 나는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선다. 세 번째 쇼핑이 49유로 티켓이었기 때문이다. 독일의 대중교통-기차, 지하철, 버스, 트램-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티켓 하나에 발걸음에 신이 난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십쇼. 그런 마음으로 찾은 까페는 알고 보니 중앙역 근처. 이 도시는 처음이지만 중앙역에 관해선 풍문으로 많이 들었는데, 그렇게 무서워 보이진 않았다. 그런 길만 운 좋게 골라간 것일까. 그렇게 우리는 버스를 타고 트램을 타고 지하철도 도전하며 도시 곳곳을 누빈다. 말도 모르고 길도 모르는 둘이서.


오늘은 한국 마트에 가 보자! 하여 꼬마는 자전거를, 나는 타포린 백을 들고 나선 길이었다. 지갑에서 동전을 찾아 카트를 빼고, 꼬마를 태워 천천히 마트를 구경하는데 전혀 한국 마트답지 않은 모양새다. 잘못 왔나 봐, 일단 우유랑 과자만 사 보자. 하고 계산대 앞에 왔거늘 지갑이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분명 동전 넣을 때 지갑에서 꺼냈는데. 나는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뒤지고(꼬마의 패딩 주머니도 뒤졌다), 카트와 가방도 샅샅이 훑었다. 그래도 지갑은 보이지 않는다. 카트를 꺼낸 입구 쪽을 둘러봐도 아무런 흔적도 없다. 마트 입구이니만큼 들락날락하는 이도 많다는 게 문제다. 당황한 마음 겨우 누르고 번역앱을 꺼내 다급한 메시지를 쓴다. 계산대 직원은 그걸 읽더니 다른 직원을 불러주겠다고 한다. 나는 지갑 안에 뭐가 들었더라 되짚어 본다.

현금은 많지 않다. 신용카드 몇 개,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이 다다. 그렇지만 재발급을 위한 험난한 절차를 상상하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잠시 후 인상 좋은 직원이 와서 독일어나 영어를 할 수 있냐고 묻는다. 어 리를 빗. 잉글리쉬. 나의 말꼬리는 슬그머니 처지고, 피차 마찬가지라는 느낌으로 직원은 지갑을 마지막으로 본 장소와 거기에 키가 들어있냐고 묻는다. 다행히 키는 없어. 돈과 카드들이 들어있어. 지갑의 생김새를 묻기에 블랙, 스몰, 레더 세 단어를 읊조린다. 잠시 확인해 보고 올게. 그가 확인하는 것이 씨씨티비이길 기도하며 망연자실 기다리는데, 잠시 후 돌아오는 직원의 손에 내 지갑이 들려있다. 나는 박수를 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이게 동시에 가능할 만큼 감격했다.


어떤 레이디가 지갑을 맡기고 가셨다고. 오, 레이디시여. 감사합니다. 웃으며 츄스, 인사하고 돌아서는 직원. 독일에 대한 인상이 밝아지는 순간이었다. 이런 일들은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처음 타 본 U반에서 플랫폼을 찾아 헤매다 조심스레 익스큐즈 미, 하고 운을 떼려는데 뒤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슬며시 끼어들며 플랫폼을 찾는 거냐고 묻는다. 아마도 꼬마의 손을 잡고 전광판을 바라보며 난처해하는 모습을 본 모양이다. 그렇게 나와 아주머니 청년 사이 짧은 만담이 이뤄지고 청년은 아주머니를 안심시키며 말한다. 제가 건너가는 곳 입구까지 가 줄게요. 독일어는 몰라도 눈치로 알아들었다. 정말이지 환승하는 통로까지 데려다주는 청년이다. 당케, 당케. 외칠 일이 많다. 마침 꼬마가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했던 터라 고마움은 열 배로 커진다.


U반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엔 다른 마담께서 내게 길을 묻는다. 여기가 어디로 가는 버스 정류장이냐고. 편견 없이 독일어로 물으시는데 어머나, 제가 프랑크푸르트 사는 사람처럼 보이시나요? 네, 맞게 보셨습니다. 그 '어디로'가 다행히 우리 동네였기에 역시 눈치로 끼워 맞췄다. 맞아요. 저 방향으로 가는 정류장입니다. 그래서 마담은 우리와 같은 버스를 탄다. 낯선 도시에서 보낸 일주일. 내 안의 경계, 심리적 방어선이 점차 아래로 내려간다. 꼬마와 늘상 동행하기에 만나는 행운 같기도 하다. 어린이에 대한 자동반사적인 배려와 친절, 곁에 있는 내가 그 덕을 많이 본다. 이런 훈훈한 에피소드는 언젠가 마주칠 불운에 대한 복선 같기도 하다만, 그래서 아직 파들파들 떨리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출발은 좋다. 일종의 허니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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