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일일기

임윤찬에서 찐만두까지

당신은 천재시고 나는 쩜쩜쩜

by 한량

프랑크푸르트에서 쾰른, 쾰른에서 다시 도르트문트. 직행 기차로 2시간 반 여정인데, 환승 편을 타느라 오후가 길게 늘어진다. 꽤나 넉넉한 연착도 있었다. 그래도 취소되지 않은 게 어디야, 기차에 관한 한 한껏 넉넉해지는 나다. 이건 완벽한 정신승리의 예시다. 타협하지 않으면 소외되는 건 결국 나니까. 부슬비 뿌리는 쾰른에선 잠깐 성당을 보았고, 애매한 식사도 했다. 점심이라 하기엔 늦고, 저녁이라 하기엔 이르다. 와인도 맥주도 없이 심심한 끼니. 그래서 냉철하고 이성적인, 하지만 두근두근 요동치는 마음으로 도르트문트에 내린다. 오늘 특별히 갈 곳이 있다.

오후 여섯 시 사십오 분, 나는 도르트문트 콘쩨르트 하우스에 당도한다.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우선 놀랐다.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라이프치히.. 모두 제법 으리으리했거늘. 그중 최고는 역시 바다와 맞닿은 함부르크였고. 공연을 앞두고 흥성흥성 들뜬 분위기는 어디든 비슷하다. 차려입은 성장들도 아름답다. 비록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올블랙으로 꽁꽁 싸맨 차림이지만, 비즈가 총총 박힌 드레스 차림을 구경하는 건 즐겁다. 중절모와 모직 자켓을 보는 것도 좋고. 홀에 들어서기 전 프로그램 북을 산다. 곱게 쥐고서 자리를 찾는다. 9열, 중간 자리. 무대를 바라보고 살짝 오른편을 택했다. 왜냐하면 오늘 나는 피아노 연주를 볼 거니까. 누구의 피아노? 그건 바로 임윤찬.


임윤찬 이름을 쓰며 임. 윤. 찬.이라고 쓸까 말까 고민했다. 그건 너무 오타쿠 같아서, 그건 너무 ‘찐’ 같으니까. 아, 그런데 그런 고민은 사실 쓸모없는 미련한 낭비였다. 이어지는 시간은 쏜살같이 날아간다. 아담한데 웅장한, 그리고 매끈하고 세련된 콘서트 홀. 꽉꽉 자리를 채운 오케스트라의 스케일, 사뿐사뿐 살랑살랑 웃음 띤 얼굴로 지휘봉을 치켜들던 지휘자도 모두 사라진다. 나는 스타인웨이의 88개의 건반이 오케스트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을 본다. 그 많고 많은 악기들이 건반 아래 숨어들었다가 일제히 날아오르는 것을 본다. 손가락뿐 아니라 표정과 움직임들이 어우러져 슈만을 표현하는 것을 본다. 듣는다라고 써야 하는데 자꾸만 본다라고 쓰게 된다. 결국 고전도 그 시대의 최고 유행곡이었으니까 이렇게 사람을 밀고 당기는 힘이 있는 거다. 어디 밀었다 당겼다 뿐일까. 들었다 놨다 엎었다 메쳤다, 나는 완전히 뻗어버렸다.


손으로 움켜쥔 모래가 술술 빠져나가는 것처럼, 시간이 흐르는 게 야속하게 느껴졌다. 아쉽다, 아쉬워. 더 듣고 싶은데, 더 보고 싶은데. 그건 집에서 차에서 듣던 연주와는 달랐다. 오케스트라와 피아노, 지휘자와 연주자, 무대의 열기와 에너지, 객석의 집중, 가끔은 겸연쩍음이 녹아있는 기침 소리마저도. 그래서 조용히 번지는 웃음도. 천재의 타건 뿐 아니라 모든 요소가 모여 공연이 만들어졌다. 그래서 나는 이건.. 이거야말로 인공지능이 대체하지 못할 거란 그런 실낱같은 상상을 했다. 정규 음반 다르고, 라이브 음반 다르듯이. 각각의 공연마다 세부적인 요소들은 모두 다르고, 그걸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으니까. 내가 오늘 본 이 공연은 이 공연뿐이다. 마치 하늘 아래 새로운 구름이 없고, 절대 같은 모양의 파도가 오지 않는 것처럼.

결국 가치 있는 것은 그 유일무이한 희소함으로 살아남을 거란 전망인데, 그게 임윤찬 급은 되어야 살아남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 나는 의자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러다 다시금 피아노 선율에 홀려들어 절로 반듯하게 허리를 폈다가, 이내 오래도록 서서 다 함께 박수를 쳤다. 살아남는 것에 대해 이리 골똘히 생각하는 이유는 내가 디스토피아적 미래에 더 끌리기 때문일까. 블랙미러 속 세상 같은. 아니면 그저 나이를 더 먹어 한 걸음 한 걸음 ‘노파’심에 가까워져서일까. 그도 그럴 것이 1999년 12월 31일의 내겐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다. 이제 곧 카운트다운 시작이라며 거실에선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보신각에는 구름 같은 인파가 몰려있겠지. 두려움과 기대를 반반 품은 얼굴들. 나는 거실로 나가지 않았다. 하이텔의 푸른 화면 앞에 붙박인 채로 밀레니엄을 맞았다. 뚜두뚜두 뚜두- 삐이-삐이- 세상은 다행히 멸망하지 않았고, 우리의 새롬 데이터맨 프로도 건재해주었다.

진짜 경험이 중요하다. 진.짜.경.험. 공연이 끝나고 밤기차를 타기 전 찾은 곳은 하우스브루어리였다. 새로운 도시에선 그 도시의 양조장을 찾는 내 안의 아저씨. 길고 긴 맥주목록들을 찬찬히 읽는 척 하지만 실은 언제나 제일 첫 번째 쓰여있는 맥주, 브루어리의 이름을 단 오리지널 비어-당연히 큰 거-를 시키는 아저씨. 안주 없이 그냥 맥주만 벌컥벌컥 마시고 자리를 뜨는 아저씨. 맥줏값은 테이블에 남기고, 잔돈을 거슬러주려 하면 Stimmt so, 쿨하게 말하는 아저씨. 그렇게 밤기차를 타고 꾸벅꾸벅 졸며 프랑크푸르트로 향한다. 새벽 1시 반의 중앙역, 집 앞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오니 그제야 피로가 밀려온다. 조용한 집, 슬쩍 열어본 냄비 안엔 찐만두가 들어있다. 간장도 없이 데우지도 않고 하나 집어먹는다. 그렇게 새벽녘 만두 네 알 먹고 잠든다. 임윤찬에서 찐만두까지, 천재와 범인, 경험과 맥주, 무서운 AI와 가련한 공복까지 하루가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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