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s own Seoul

아주 오랜만에 돌아온

쓰는 삶

by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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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브런치에 접속했다. 휴면 계정을 해제해야 할 만큼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연결된 이야기 밖으로 잠시 물러나 혼자만의 글을 쓰던 시간들.


이른 봄부터 여름까지 원고를 썼다. 계약서에 명시된 것은 원고지 700매짜리 에세이였다. 이야기를 풀어가다 암초에 걸린 듯 막막해진 것은 고작 300매 남짓 썼을 무렵이었다. 그 언저리에서 오래 머뭇거리며 종일 헤맸다. 흘러가는 무엇이라도 잡아야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하며 손에 잡히는 것을 찾아 허우적거렸다. 그렇게 맹렬한 헛손질의 시간을 지나서야 겨우 다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다리에 묻은 뻘을 털어내고 다시금 속도를 내어 이야기와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 장씩, 한 장씩 겹쳐지는 나의 지난 삶들. 초라하고 서글프고 어딘가 짠한 시절들이 하얀 화면 위로 번졌다. 옛날 작가라면 손으로도 묵직함을 가늠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스크롤의 범위로만 분량을 헤아릴 수 있었다. '송고.' 란 단어엔 솔바람이라도 부는 것 같았다.


초여름에서 한여름을 지나는 사이 원고는 편집자님의 손을 거쳐 다시 내게 돌아왔다. 꼼꼼하게 붙은 코멘트들을 참고하며 이리저리 글을 매만지는 동안 날은 훌쩍 푸르러지고 바람은 차차 서늘해졌다. 두 번째 수정을 마치면서는 물리적인 무게를 상상했다. 한 뭉치의 원고를 공중에 살짝 던진 다음 라켓으로 받아친다. 저기 서서 내게 손 흔들고 있는 편집자님을 향해, 적당한 속도와 아름다운 포물선을 상상하며 원고를 보낸다. 어느새 원고는 850장을 넘어있었다.


글로 추려낸 850장의 삶.


무르익을 가을과 겨울을 기다린다. 마지막까지 잘 다듬어내 실감하고 싶다. 이것도 쓸 만한 이야기란 것을, 이것도 기록할 만한 삶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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