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es own Seoul

내가 어쩌자고 이 일을

by 한량

시작하게 된 것일까. 곧 17개월, 되돌리기엔 너무 멀리 왔음에도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생각. 생각이란 것을 할 수 있다면 조용한 한밤이 적당할 것이다. 사위는 고요하고 세상의 모든 새와 벌레들도 잠든 밤, 선명하고 또렷한 목소리가 울린다.


"엄마, 엄마, 엄마아."


이제는 사뭇 정확해진 발음으로 애타게 나를 부르는 소리다. 나는 허둥거리며 침대에서 일어나 시간부터 확인한다. 오늘은 새벽 3시다. 발목에 감긴 잠을 털어내고 거실을 지나 아기의 방으로 향한다. 제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한 줄 알고 목소리엔 울음이 섞여 들고 있다. 문을 빼꼼 열면 그제야 안심한 울음이 더더 달려든다. 아기는 침대 난간에 설치한 가드를 잡고 서 울먹거리고 있다. 깜깜한 어둠을 헤치고 나는 익숙한 몸짓으로 가드를 넘는다. 철조망이나 담벼락을 타 넘는 도둑의 자세, 딱 그 자세로 훌쩍 넘어 아기를 안는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왔어, 엄마 왔어. 괜찮아."


무서운 꿈을 꾸었을까. 가끔 잠꼬대를 하기도 하니 꿈도 꾸지 않을까 싶다. 허나 이제 엄마 품 안에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다. 아기의 안도는 몹시 즉각적이다. 내 몸 어딘가에 자기 몸을 붙이고서 다시 잠에 빠져든다. 가끔 뒤척거리지만 손이나 팔과 다리 어디에라도 엄마의 몸이 닿아있음을 감지하고는 안심해한다. 문제는 나다. 잠에서 깨면 다시 잠이 들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나. 그래서 그런 밤, 나는 생각에 빠진다.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홀로 생각할 수 있는 시간, 잠을 잃은 대신 잠든 아기를 품에 품은 밤에야 가능한 일이다.


지나온 시간들을 생각한다. 임신을 완전히 애타게 기다린 것은 아니나, 이것이 정말 불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을까 봐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에 관해 불안한 마음이 있었다. 두려움과 불안, 그건 아무리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위태로운 징검다리를 건널 때처럼 떨리게 만든다. 그래도 그걸 하나둘 딛고 오늘 이 자리까지 도착했다. 오백일이 넘는 시간이라 헤아려 볼 때,


아기가 숨을 몰아쉬며 돌아눕는다.


정수리에 솟은 머리칼과 귀 옆의 누운 머리를 살짝 쓰다듬는다. 아기에게선 늘 좋은 냄새가 난다. 광고 속 베이비들처럼 늘 보송한 파우더 향만 나는 것은 아니다. 아기가 가진 아기만의 살 냄새에 여러 냄새가 어우러진다. 자고 일어나면 묻어있는 잠의 냄새, 뛰어다니느라 땀을 흘리고 나서의 살짝 짭쪼름한 냄새, 젖먹이 시절 살짝 토하고 난 뒤의 치즈 냄새까지. 그러나 그 모든 냄새가 '좋은 냄새'의 영역 안에 들어있다. 그러면서 '좋은'이라는 표현이 굉장히 주관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어쨌거나 나는 사랑의 충동에 못 이겨 아기의 목 뒤, 볼록한 배, 열 개의 발가락 사이에 코를 들이밀곤 한다. 아기는 킬킬 웃으며 내게 달려들기도 하고, 버둥거리며 밀어내기도 한다.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 갈 춤의 기본 스텝들이다. 인생을 함께하는 가족으로서의 스텝. 뒤집기와 되집기를 지나 기기와 무수한 엉덩방아까지 거쳐 이제 우리 함께 스텝을 밟는 날이 도래했다. 쿵짝짝 쿵짝짝, 쿵짝짝 쿵짝.


오늘 새벽엔 그런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아기는 누운 채 뱅글뱅글 돌며 이리저리 방향을 바꾼 모양이다. 그럼에도 몸 한쪽 어딘가는 꼭 내게 붙이고 있었다. 그렇게 함께 일어나 아침을 맞았다. 아주 평범한 오백 하고도 며칠을 더한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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