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B
우지끈, 커다란 소리를 내며 들보가 무너진다. 비바람이 불고 벼락이 내리쳐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일 텐데, 들보는 속에서도 썩어가고 있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사람 대체 누구야! 하고 탓이라도 시원하게 하면 좋으련만, 나는 그저 중학생이었다. 아무래도 나 모르는 사이 무시무시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 같은데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부모님의 통보는 갑작스러웠다.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해 여기를 떠난다. 모든 것에는 아빠의 회사, 우리가 살던 집, 그리고 나와 동생의 학교도 포함되어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왜, 왜 그래야 하는데요.
좋은 시절은 지나갔다.
그리고 기나긴, 끝없는 내리막길을 휠체어를 타고 내려온 기분이다. 특히 지난 몇 년은 어디 남산 계단 같은 곳에서 누군가 휠체어를 떠민 느낌이었다. (박민규 '딜도가 우리 가정을 지켜줬어요' 중에서)
휠체어를 탄 채로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기분. 소설을 읽으며 나는 열다섯을 떠올렸다. 아빠의 회사는 사라졌다. 평생직장이란 이름은 쏜살같이 녹아내렸다. 사실 모든 것이 녹아내렸다.
이사한 집, 뚱뚱한 본체에 더 뚱뚱한 모니터를 올린 컴퓨터 책상은 부모님 침대 옆에 놓여있었다. 모두 잠든 밤이면 나는 안방에 숨어들었다. 숨 죽이며 컴퓨터 전원을 켜면 모니터에서 '터엉'-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건 약과였다. 하이텔에 접속하기 위해선 데이터맨 프로를 실행해야 했고, 그 시절을 아는 이들이 기억하듯 '뚜뚜뚜뚜뚜-지잉-지잉' 하는 소리가 연이어 이어졌다. 전화선을 통해 접속하는 가상의 세계는 사실적인 사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 퍼런 바다를 누비다 전원을 끄고 방으로 돌아오면 내 심장은 콩콩 뛰었다. 하지만 들켜서 혼날까 걱정할 일은 없었다. 연달아 키보드를 두드리다 흘깃 옆을 돌아보면, 부모님은 메마른 얼굴로 뻗어 있었다. 미미한 뒤척임조차 없었다. 대체 얼마나 피곤했으면 그랬을까, 이 생각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야 들었다.
많은 것이 달라진 세상에서 내가 고통을 이겨내는 방법은 현실에서 나를 떼어놓는 거였다. 난 언젠가 여길 떠나고 말 거야. 부모님은 오늘도 싸우고 나와 동생은 울며 잠들고, 내 마음 쓸어줄 이 하나 없는 곳에서 나는 탈출할 거야. 몇몇의 이미지들이 나를 스친다. 마음 맞는 친구-친구에겐 늦둥이 동생과 자주 늦는 아빠, 남자친구를 가진 엄마가 있었고 우리 엄마는 마지막 이유로 내가 친구네 집에 놀러가는 것을 꺼려했다-와 여러 번 돌려본 비디오 <패왕별희>, 밤이면 켜던 fm 음악도시, 1999에서 2000으로 넘어가던 자정의 보신각 타종. 모두가 겁을 먹었지만 정전도, 전쟁도, 외계의 습격도 일어나지 않았던 밀레니엄.
그때 건져낸 것들 중 좋은 것은 하나다. 내가 맞닥뜨린 가세의 기울기를 뒤늦게나마 소설을 통해 인용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집 졸라 망했어. 완전 나락 감ㅋㅋ' 이라고 일축하지 않고, 기억 속 문장을 더듬고 책장에서 그 책을 꺼내 정확히 옮겨 놓을 수 있는 것이다. 폭풍우 속에서 읽고 쓰고 스스로 다독이며 버텨왔다. 비바람 사이 때때로 맹세한 것을 이루겠다는 오기와 표적 없는 미움이 샘솟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종유석이나 석순 같은 게 삐뚤빼뚤 자라났다쳐도 어쨌든 밖으론 큰 사고 없이 그 시절을 건너왔다. 그렇다. 이제 '그' 시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건너왔다' 라는 과거형을 사용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서울에 있는 대학에 붙었으니까. 이제 집을 자연스레 그러나 완전히 떠나도 되니까. 뮬란이 머리칼을 휙 자르고 집을 떠났다면, 나는 독립하면서 지난 시간과 나 사이를 잘라내고 싶었다.
현실 도피의 완벽한 예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