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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량 Jul 22. 2022

#14 엄마집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

(민아 언니는 14번째 주제를 친정이라고 정했다. 친정. 내가 여태껏 입 밖으로 내어본 적 없는 말이다. 결혼 여부에 따라 원래 살던 집, 엄마, 아빠 앞에 새로운 기표가 덧붙는 걸 참기 어려워서다. 원래 살던 집은 언제까지나 원래 살던 집이며 엄마와 아빠는 언제까지나 엄마와 아빠다. 그러므로 나는 친정이란 제목 대신 엄마집으로 쓰려고 한다. 꼬마에게도 할머니, 외할머니 같은 표현 대신 지역 이름을 따 각각의 할머니를 부르도록 가르쳤다. 꼬마는 할머니란 발음은 어려워 할미라고 부르면서도 '부산 할미', '거제 할미' 는 잘도 말한다. 그렇지만 내게 깃든 아주 오래된 표현, '외할머니'란 단어가 통으로 가져다주는 그 푸근함은 잊을 수 없다. 기표고 기의고 나발이고 나는 엄마의 엄마인 할머니를 사랑하니까.)


아무리 근사하게 인테리어를  놓아도 나는   있을  같다.  집이 아기를 키우는 집인지 아닌지. 부엌  켠의 젖병소독기? 거대한 사이즈의 바운서와 쏘서, 미끄럼틀? 어린이집에서 받아오는 색색의 교구들? 그런 것들을 몰래 치워놓는다 해도   있다. 식탁 언저리, 특히나 식탁 밑바닥. 서랍장의 손잡이 부근, 창문이나 거울의 낮은 지점들. 여기에 슬쩍 손을 대어 봤을  미끈미끈하고 번들번들하며 약간의 끈적거림이 느껴진다면  집엔  퍼센트 아기가 산다.  장의 손수건과  장의 물티슈와  장의 휴지가 달려와도 소용없다. 아기는 무언가를 계속 엎지르고 줄줄 흘리며 몸의 안과 밖에서도 축축한 것을 발산하고 있다. 아기의 손은 언제나 따뜻하고 발갛고 살짝 끈적거린다. 침을 흘리고 땀을 흘리고 코를 흘리고 쉬를 하고 토를 한다. 수발을 드는 사이 점점 비위는 강해져 치즈 냄새 강렬한 토사물을 닦으면서도 이게 언제 먹었던 거더라? 하고 헤아리게 된다. 당황해하거나 따라 메스꺼워하지 않고 의연한 손놀림으로 닦아내게 된다.  박스로 잔뜩 사놓았던 물티슈를  쓰고, 이것이 환경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나서  이상 물티슈를 사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은 조금  끈끈하고 농밀해졌다.   기를 쓰며 닦고 닦아내는 데도 말이다.


감기와 장염이 겹쳐 위로 올리고 아래로 쏟아내는 꼬마를 돌보다 기진맥진한 새벽. 나는 그 끈질기게 끈끈한 것들에게 대해서 생각했다. 오랜만에 힘을 주어 연 유리병. 입구 가장자리에 끈덕하게 달라붙은 쨈 혹은 소스. 꾸덕하고 눅진하고 농후하고 압축적인 그런 것들. 어쩌면 뭉게뭉게 솜 같은 곰팡이가 피어있을지도 모른다. 대체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를 수상한 내용물들. 이건 흡사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끊임없이 체액을 나누고 비말을 공유하며 끈적거림을 즐기거나 참아주는 사이임에 분명했다. 같이 밥술을 뜨고 아무렇지 않게 김치를 찢어주고 찌개를 나눠 먹으며 하하호호 침을 튀기는 사이. 어린 나 모르는 사이 다른 무언가도 열심히 공유할 그들. 이게 그러니까 도덕 교과서나 가정 교과서에 나오던 가족의 끈끈함 뭐 이런 것일까? 그 끈끈이 이 끈끈이었을까?


일주일 후면 위로 아래로  사단이   모르고, 아직 건강하고 씩씩했던 우리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여름이고 어쩐지 방학 기분도 나니 꼬마와 둘이서 할머니 집에 가기로 했다. 엄마 집까지는 기차로 2시간 40.  무렵 여기가 어디인지도 모를 무렵 아기띠에 들쳐 안고 기차를  이래로 처음이다. 8호차 유아동반칸으로 예약을  놓고도 막상  시간 기차를 타려니 떨리는 마음이었다. 일부러 낮잠 시간이 끼도록 시간을 잡았건만 꼬마의 눈은 똘망해 보인다. 그러더니 제가 먼저 '자장자장' 해달란다.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쪼르르 누우면 선생님이 배를 토닥이며 '자장자장'  주는 모양이다. 옳지, 좋았어.  허벅지를 게끔 눕혀놓고 나는 '자장자장' 시작한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자장자장 잘도 잔다. 시작은 광명 무렵이었는데 대전이 지나도록 눈을 감지 않는다.  감아봐, . 하면 질끈 감았다가도 이내 뜨고 배시시 웃는다. 오던 잠마저  달아났는지 얼굴에 장난기가 서린다. 됐다, 됐어. 그냥 일어나서 놀자. 하여 우리는 열차 안에서 조용히 시시덕거린다. 200미리 우유에 빨대를 꽂아주고 작은 과자들을 나눠먹는다.   나가면 계속 나가자고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꿋꿋하고 의연하게 자리를 뜨지 않는다. 부산역을  앞에 두고서야 들쳐메고 나가 객차와 객차 사이의 작은 화장실, 그곳에서 요령껏 기저귀를 간다. 작디 작은 세면대   작디 작은 공간에 꼬마를 세워두고 그러니까 작은 거울을 등지고 서게  채로 여차저차 기저귀를 간다. 갈면서 생각한다. 대체 쌍둥이는 어떻게 키우는 거람?


무사히 부산역에 도착해 마중 나온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마음 아주 깊숙이에서 우러나오는 환한 웃음을 짓는다. 꼬마는 할미! 할미! 하며 반기더니 아주 유용하게 써먹을 문장을 말한다. '할미 어부바해 주세요.' 이건 꼬마 스스로가 기차 안에서 연습한 문장이다. 할머니 만나면 이 말을 하겠다고 연습했다. 그럼 할아버지 만나면 뭐라고 말할 거야? 잠시 생각하더니 '까끼 안아주세요.' 라고 말한다. 까끼는 꼬마가 만들어낸 첫 신조어,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그렇게 도착한 엄마집에서 우린 3박 4일 동안 요란하게 논다. 꼬마는 물 만난 고기처럼 집안의 온갖 것들을 뒤지며 논다. 청소기를 종일 밀고 다니고 드라이기를 들고 윙윙 소리를 낸다. 잘 서 있던 선풍기를 두어 번 넘어뜨려 날개 한쪽도 부서뜨리고 만다. '이래야 할미 집에 와서 좀 놀았다 하는 거지. 이거 날만 바꾸면 된다. 괜찮다.' 라고 말하는 엄마는 보며 내심 놀란다. 나 어릴 땐 보지 못했던 관대함이 손주 앞에선 마구 터져 나오나 보다. 둘의 사이는 너무나 다정하다. 실로 다정해서 나는 조연처럼 굴어도 좋다. 그래서 슬쩍 방으로 기어들어가 쿨쿨 낮잠도 잔다. 엄마는 나 편히 자라고 꼬마를 들쳐업고 정말이지 어부바를 하고서 마실도 다녀온다. 둘은 주차장에 가서 자동차도 구경하고 마트도 편의점도 들린다. 마침 날은 초복이라 엄마는 꼬마를 업은 채로 생닭도 한 마리 사 오고 만다. 이 더운 날 닭도 삶고 죽도 만들겠다며. '할미, 자두 주세요.' 한마디 말에 냉장고 안 수박은 그대로 두고 자두도 사 온다. 할아버지를 보자 말자 덥썩 안기는 것은 물론이고, 같이 엘리베이터 타러 가자고 뛰어가고 어부바해 달라고 등에 붙어 비빈다. 그런 건 안 가르쳐줘도 아는 모양이다. 반나절 만에 응석이 배는 넘게 늘었다. 집에선 얄짤 없이 제 의자에 앉아 먹어야 하건만, 이제 슬쩍 안겨서 밥을 먹겠다고 해 본다. 그러다가도 싫다고 도리도리 하며 나를 붙잡고 늘어지거나 내 허벅지 위로 올라 도움닫기를 하는데, 엄마는 찡찡대는 손주 비위를 맞추려 애를 쓰고 아빠는 내 옷이 더러워지는 것을 걱정한다. 이제 몸무게 많이 나가서 내가 안기 무겁다고도 걱정한다.


그것은 몹시 생경한 감각이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사사건건 끼어들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걱정과 불안을 담은 잔소리를 늘어놓는 것은 늘 엄마였다. 아빠에게선 걱정하는 말이나 혹은 잔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좋게 말하면 걱정 없이 쿨한 거고 어떻게 보면 무심하디 무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 아빠는 넌지시 그러나 또렷하게 그것도 여러 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식당에서 밥을 먹기 싫다고 떼를 쓰는 꼬마를 훌쩍 들쳐업고 나서면서 나더러 어서 밥 먹으라고 한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는 돌았는지 한참 지난 후에 들어와서 내가 얼마큼 먹었는지를 확인한다. 이게 그런 건가? 내가 식탁 앞의 꼬마를 은근하게 살피며 구슬리고 청하는 그런 것과 같은 것인지.


엄마와 아빠, 나와 꼬마. 우리는 여름밤 모래 반, 사람 반인 광안리를 산책한다. 바다를 보고 선 커플에게 살짝 부탁해 기념사진도 남기고 만다. 꼬마는 바닷물에 발도 살짝 담가본다. 몇 번의 파도를 밟고 서 있더니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가 무릎 위를 덮치자 그만 안아달라고 말한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엄마의 무르팍을 고루 옮겨 다니며 하나뿐인 손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집을 떠난 지 한참, 드문드문 띄엄띄엄 같이 시간을 보낼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내 마음속의 한계는 넉넉히 잡아봐야 2박 3일이다. 그 이상이면 좀 많이 힘들구나. 듣는 말이 곱게 들리지 않기 시작하고 따라서 나가는 말도 곱지 않을 때가 많았다. 짐을 챙겨 일어날 때면 발걸음이 제법 홀가분했다. 이번엔 조금 달랐다. 끈끈한 밀도가 그리 싫지 않았다. 서로 안고 볼을 부비고 등에 달라붙는 사이를 지켜보는 게 좋기도 했다.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기다리면서 엄마는 재빠르게 편의점을 다녀왔다. 내미는 봉투엔 200미리 우유 두 개, 빨대 두 개, 맛밤 한 봉지, 그리고 웃음을 터뜨리게 만든 귤이 있었다. 엄마, 무슨 진짜 할머니처럼 이런 걸 사 와요. 했던 그것은 주황색 그물망에 담긴 작은 귤 네 알이었다. 그 옛날 운동회나 소풍날 같이 귀한 도시락을 챙길 때 왠지 같이 들려 보냈을 것 같은 그런 귤. 내 말에 엄마는 꼬마가 귤을 좋아하지 않냐며 가는 길에 먹으라고 말한다. 한여름의 귤. 엄마의 말은 맞았다. 기차간 안 테이블을 펴놓고 귤을 한 알 한 알 까먹는 꼬마다. 설마 저 걸 다 먹겠어? 했는데 다 먹고야 말았다. 엄마는 역시 많은 걸 알고 있네, 생각했다. 어릴 때 부리지 못했던 응석이 지금 여기 도착해 있었다.




'바르셀로나와 서울에서 보내는 편지'는 바르셀로나의 박민아 님과 함께 2022년부터 시작한 프로젝트입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도시에서 8시간의 시차를 공유하며 한 달에 두 번 같은 주제로 에세이를 씁니다. 이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어떻게 흘러갈지 아직 알지 못하나 우리는 정말 즐거운 기대를 안고 노트북을 열었습니다. 꾸준히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써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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