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에서 보내는 편지
긴장: 백과사전적 해석
심리적 스트레스
생리학 적으로 근육이나 신경중추의 지속적인 수축이나 흥분 상태
긴장: 개인적 해석
잔침의 꼴깍거림, 잠들지 않는 신경, 초대하지 않은 침입자
처음 긴장했던 기억을 더듬어 볼 때, 그 기억은 정말 어이없게도, 학급 대표가 되고 나서의 어떤 봄날이다.
발표도 좋아했고, 친구들 앞에서 말하는 것도 좋아했던 나는 학교 다닐 때, 학급 반장이나 학교 회장 선거에 나가서 유세도 하고, 공략도 발표하곤 하는 일을 수없이 하곤 했는데, 이 초대하지 않은 긴장이라는 침입자는 어이없게도, 수업이 시작되고 끝날 때 선생님께 인사 지도를 해야 하는 타이밍에 찾아왔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언제나 반장이 수업이 시작되고 끝날 때 ''차렷, 경례''하고 구령을 붙이곤 했다. 어떤 봄날, 차렷, 경례! 를 해야 하는데, 잠시 타이밍을 놓치고 다른 짓을 했다가 선생님이 ''이 반 반장이 누구야?''하는 소리를 듣고 하던 딴짓을 멈추고 구령을 붙여야 하는 그 0.5초의 시간 사이에 갑자기 60명 반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렸고, 그것과 함께 초대하지 않은 긴장이라는 침입자가 함께 쑥 치고 들어왔다. 일 년 학교생활 216일, 각 5-6교시마다 계산하면 1,000여 번 이상을 반복하던 짧은 단어 ''차렷, 경례!"에 갑자기 긴장이 찾아온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 이후 마흔이 될 때까지도 작고 큰 긴장의 인생을 살아온 기억을 한다. 주로 긴장 없이 느긋한 날을 보낸 날은 손에 꼽지 않을까 싶다. 유독 외부 사람들을 계속 만나고, 내 숫자를 논리 있게 설명하고 대립되는 이해를 관철시켜야 하는 일과 회의를 수없이 해야 하는 직업을 꽤 오래 해오면서 자면서도 긴장상태가 계속되었다는 사실에 화들짝 놀라며 얇은 잠결을 걷고 일어나던 아침이 많았다. 밤새워 수백 개의 엑셀 파일을 뒤적이며 숫자를 맞추다가 일어날 때는 출근해서 자리에 앉을 때까지 밤새 갖고 씨름한 숫자들이 머릿속에 빙빙 돌곤 했다. 가슴에는 늘 진동이 울린다. 그 진동은 계속된다. 크게 벌렁거릴 때도 있고, 잦아질 때도 있지만, 완전히 사라진 적은 없다. 그 울렁거림의 진동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삶.....
'근육이나 신경중추의 지속적인 수축 상태'.....
빽빽한 빌딩이 모여있는 여의도 어느 빌딩에서 일을 할 때, 늦은 점심을 지하 식당에 내려가서 먹곤 했다. 그 빌딩에서 한 달 이상을 일하며, 우리는 늘 시간에 쫓겨서 빌딩 밖 공기를 맡으러 점심을 먹으러 갈 수가 없었기에, 사람이 붐비지 않는 시간에 지하 식당에 가서 후다닥 점심을 먹곤 했다. 자매인지, 친구인지 하는 3명의 아줌마가 불 맛이 확 나는 오징어볶음에 당면을 후다닥 볶아서 내주는 메뉴가 제일 인기였다.
밤새 꿈에서 엑셀 파일과 싸우고 출근해서 이어지는 회의 끝에 결국은 '처음부터 다시 검토를 해보는 것으로다' 이런 식의 결론이 나곤 하던 시절, 그 식당에서 한 손으로 웍을 휙휙 돌려가며 동료와 끊임없이 다음 주문
과 나갈 메뉴 등을 확인하며, 손님들의 빈 찬을 매와 같은 눈으로 확인하며 채워주는 식당 아줌마를 한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던 기억이 난다. ''나도 저런 삶을 살면, 몸은 고단할지언정, 밤마다 웍질 하는 꿈을 꾸진 않겠지? 적어도 밤엔 단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가슴의 진동이 계속 울려 되는 삶은 내려올 수 있지 않을까? 고되게 일하고, 단잠을 잘 수 있는 삶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땐 15년 이후에 내가 그 아줌마와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부엌에만 들어가면 손을 배거나 그릇을 깨곤 하던 내가 웍질 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리고 또 그 삶에서는 긴장이라는 침입자를 떼어놓고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믿었다.
아침에 눈이 반짝 떠졌다. 아침이 아니었고, 새벽이었다. 다시 자려고 했지만, 다시 잘 수가 없었다. 그때 꽤 오랜 기간 잊고 살았던 진동이 울리는 것을 느꼈다. 살짝 가슴이 계속 두근거리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 어? 이 느낌, 오랜만"
나는 새 가게를 준비하고 있다. 거기에는 프로젝트가 따른다. 그리고 수많은 공사와 서류 작업들, 그리고, 사람과의 소통이 이어진다. 전화는 하루에 수십 번 울린다. 그리고 많은 돈이 쑥쑥 빠져나간다. 내가 쉬지 않고 손목 빠져라 웍질 해서 모은 돈... 엔지니어가 있고, 건축가가 있고, 철거 작업자가 있고, 벽돌공이 있고, 배관공이 있고, 전기 작업자가 있고, 목공사가 있고, 가스 전문가가 있고, 그 모든 관계는 서류와 돈이다. 그 서류와 돈을 결정짓는 소통의 과정은 나의 모국어가 아니다. 구글 번역기를 수백 번 때려 돌려도 못 알았듯고, 손짓 발짓으로도 분명하지 않지만, 어떻게 꾸역꾸역 밀고 나가 보겠는데, 문제는 클레임이다. 해 놓은 일이 맘에 들지 않을 때, 나와 말한 대로 일해 놓지 않았을 때, 터무니없는 시간이나 자잿값을 청구했을 때, 나는 따져야 한다. 조목조목 너의 잘못과 나의 맞음을 그들의 언어로, 나에게는 외계어로 싸워야 한다.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부조리함이다. 합당하지 않은 것, 물론 그 부조리함과 불합당함은 나의 기준이겠다. 하지만 나는 내가 공정하고 합당한 사람이라는 믿음이 너무도 강하기에 나의 합당한 기준을 심하게 벗어난 자들과는 어떻게든 싸워야 한다. 나는 또한 동정심과 공감 능력이 필요 이상으로 있기에, 미친 듯이 싸우겠다고 나서다가도, 뜬금없는 동정심이 발동할 때는 갑자기 전투력을 잃곤 한다.
철거와 타일 작업을 맡았던 자우마와의 관계가 그러했다. 자우마는 제대로 교육받지 않은 사람이란 것을 첫눈에 알아봤지만, 솔직히 싼 맛에 계약을 해버렸다. 그는 나에게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음성 메시지를 남기곤 했는데, 카탈란 어만 사용하는 그의 말을 나는 일도 못 알아들었다. 내가 문자로 남겨달라고 하자, 자우마는 외계어를 남기기 시작했는데, 그의 철자는 100% 틀렸기에 내가 구글 번역기를 돌릴 때마다 ''그녀가 벽돌을 내일 올 것입니다''라는 식의 해석이었다. 그와 철거공사가 간신히 끝나고 나서 나는 다른 타일공을 알아봤는데, 그는 간절히 타일 작업을 하고 싶다고 하였다. 그에게 어린 딸과 일 안 하고 주로 술만 마시는 와이프가 있다는 사실을 나는 중간에 알게 되었는데, (그가 와이프와 심하게 싸우고 와서 이혼하겠다고 하길래 와인 한 병을 쥐어 주며 와이프와 화해를 독려하기도 했다) 나는 그의 삶이 고단해 보여, 그가 정밀한 타일 작업을 할 수 있는 타일 공이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았지만, 그에게 다음 일을 주고 말았다. 그는 딱 내 직감대로 일했다. 온갖 이유로 일을 한 달 동안 질질 끌었고, 타일은 개떡같이 붙여 놓았으며, 그가 만든 화장실 벽은 구렁이가 한차례 넘어간 것처럼 구불거렸다. 그러고는 딱 계약한 시간의 2.5배를 청구한 후, 잔금을 입금하지 않으면 마무리 작업을 하지 않겠다고 일이 끝나기 전부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나는 그와 싸우고 싶지 않았고, 그가 딱 고만큼 행동할 인격과 배움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긴장하지 않았다.
나는 네가 개떡같이 일을 해 놓은 것 니 눈으로 똑바로 봐라. 그래도 네가 일한 시간은 돈을 주겠다. 하지만 네가 뻥 불린 시간까지 받을 기대는 일찌감치 버리는 게 좋다. 쓰레기를 치우고 폐기물을 제대로 갖다 버린 서류를 갖고 오면 네가 일한 시간 돈은 주겠다고 하였다. 그는 내가 호락호락 으름장에 뻥 불린 시간을 지급할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순순히 폐기물은 갖다 버리고, 서류를 내주었다.
나는 그에게 약속한 돈을 주고는 말했다.
''네가 만든 구불거리는 화장실 벽은 너의 예술작품이라고 칭해 놓을게.''
단순하고 무식한 자우마를 다루는 것은 나았다. 다음은 배관공 미구엘이었는데, 그는 아주 젠틀하게 나타나서 크나큰 믿음을 주고는 옴팡 덤터기를 씌우고 그걸 캐묻거나 잘못된 일을 지적하면 바로 심한 응수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코딱지만 한 화장실의 배관 작업을 하고 그는 어마어마한 청구서를 보냈다. (10평방미터의 화장실에 75m의 수도관 파이프를 썼다고 청구를 했다) 나는 다음 작업이 급했기에 다음 작업 날짜를 약속받고는 눈물을 삼키고 청구서의 돈을 보냈는데, 그는 입금을 확인하고는 바로 나에게 '너와 작업하기 힘들겠어. 나는 내가 한 일에 대해 이렇게 저렇게 평하는 사람과는 일할 수 없거든'.이라는 문자를 날렸다. 이 똘기 가득한 인간은 화장실 문이 열릴 수 없게 변기를 모셔놓았다. 그는 모든 설계도를 갖고 있었고, 그에게 나는 앉힐 변기와 문짝을 보여주며 문짝이 안으로 열려야 하니 변기를 앉힐 때 사이즈를 잘 고려해야 한다고 수십 번 침 튀기며 말해주었는데, 그는 변기를 좁디좁은 화장실 가운데에 앉혀 놓았기에 당연히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모든 화기를 누르고 그를 다독여 변기 위치를 바꾸게 하고는 이것은 너의 실수이니 이 돈은 청구하지 말아라 했는데, 그는 이 말에 열이 받았다. 하지만, 그의 실수임은 너무나도 자명했다. 어쨌거나 열받은 배관공이 크리스마스 열흘 전에 다음 일정을 취소한다는 것은 일월 이내에 가게를 오픈하기 글렀다는 뜻이었다. 나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교묘하게 덤터기 청구서가 입금될 때까지는 다음 일정을 확인해 주던 이 미구엘 맥주 같은 놈이 입금되자마자 스케줄을 취소해버리는 그 무책임함과 변명의 불합리함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 계략에 내가 말려든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오랜만의 진동 울림은 그날 아침이었다. 이 불합리한 놈을 응수하리라. 하는 묘책. 그것은 입금 취소 신청. 이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또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오랜 은행 감사 경험으로 알았다. 새벽부터 시작되던 긴장은 오늘 은행 문이 열자마자 뛰어가서 담당자가 이 입금 취소를 하게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때마침 나의 오랜 담당이었던 다비드가 떠나, 처음 보는 담당에게 이 업무를 시켜야 했으니, 새벽부터 긴장의 진동이 울리는 것은 당연하였다. 은행 담당자는 안된다고 하였다. 하루가 지났고, 같은 은행이기에 바로 입금이 진행되었다고 했다. 나는 코비드 칸막이 앞에 코를 갖다 대고 떠들기 시작했다. 취소 코드 뭐를 썼지, 이 코드를 써보지 그리고, 같은 은행이기에 바로 입금도 되고 바로 취소도 가능하거든. 네가 못하면 내가 조작해 볼게. 하고 나는 아이 예 직원 자리로 뛰어갈 자세를 취했다. 안다. 진상.
어이없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던 그는 다시 해보고 연락을 준다고 했다. 다음 미팅이 있으니 꺼져달라고 했다.
아니, 네가 할 때까지 여기 있을래. 네가 못하면 나라도 그 취소 조작을 꼭 해야 하니까.
난감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쳐다보며 자판을 몇 번 두들기던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취소됐다''고 했다.
나는 긴장이 싫다. 팽팽함. 단침의 꼴깍거림, 끊임없는 진동, 막힘과 상충
긴장을 피해서 살고 싶어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이 무사 태평한 나라에 와서 생전해 보지 않은 웍질을 업 삼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삶에 긴장은 계속된다.
수축과 이완....
나는 지금 3개월째 이완의 타이밍을 놓치고 수축만 해대며 살고 있다.
목덜미와 어깨의 뻐근함이 느껴진다.
서진이에게 쉰 소리를 해본다.
재미없어. 하고는 쌩하고 들어간다.
잠시의 신경의 이완은 또 실패다.
자우마가 개떡 칠을 해 놓은 타일 시멘트 수정 작업과 구불거리는 벽에 수십 겹의 플라스터를 바르고 벗겨내야만 했던 참혹했던 화장실이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