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자.
‘채무자 회생법’이 일가족 4명을 죽음으로 내 몰았다.
-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자.
한영섭
금융정의연대 운영위원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 센터장
5월 5일 어린이날 시흥에서 34살 남편, 35살 아내, 4살 아들과 2살 딸, 일가족 4명이 차량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남편은 아들을 꼭 껴안고 있었고, 엄마는 딸을 끌어안은 채 발견되어 사회적인 충격과 안타까움이 이어지고 있다.
경찰은 “차량 문이 닫혀 있었고,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차량 내부와 가족의 옷 등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경찰은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두고 사건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에서는 유족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부부가 부채 때문에 무척 힘들어했다는 진술이 있었다고 전했다.
조사된 자료만 살펴보면 부부는 쌓여 있는 부채 7,000만 원 때문에 법원 파산신청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법원에서 개인회생으로 사건을 옮겨 진행을 했고, 매월 최소생계비를 제외하고 80만 원으로 상환하고 있던 것으로 조사되었다. 부부 가족은 이를 감당하지 못해 어린 자녀들과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모는 ‘채무자 회생법’
부부가 죽기 전 법원을 통해 공적 채무조정 제도를 이용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법원의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이하 ‘채무자 회생법’)은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하여 파탄에 직면해 있는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자ㆍ주주ㆍ지분권자 등 이해관계인의 법률관계를 조정하여 채무자 또는 그 사업의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거나, 회생이 어려운 채무자의 재산을 공정하게 환가ㆍ배당하는 것’을 목적으로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제정되었다.
채무자 회생법에서 개인의 채무조정은 주로 개인파산·면책과 개인회생절차를 통해 진행할 수 있다. 개인파산·면책은 채무자의 재산을 환가ㆍ배당하고도 남은 채무를 상환할 수 없을 경우 채무상환 의무를 면해주는 즉 탕감해주는 제도이다. 쉽게 말해 보유하고 있는 재산과 장례의 소득으로 채무를 상환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상환의무가 없어지는 것이다.
개인회생절차는 재산보다 부채가 많고, 정기적인 소득이 있을 경우 신청할 수 있는 제도이다. 소득에서 법에서 정한 생계비를 제외하고 남은 소득으로 부채를 3년간 변제하면, 3년 뒤 남은 잔존 부채의 상환의무를 면하는 제도이다.
채무자 회생법은 일각에서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진영이 있다. 그러나 이는 채무자 회생법의 몰이해로 발생된 것이다. 기본적으로 재산과 소득이 부족한 채무자가 다시 재기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제도를 통해 채무자는 빠르게 사회에 복귀할 수 있고 장래에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에 선진국에서도 장려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최근 법원에서 채무자 회생법을 집행함에 있어 여러 문제가 발생되고 있다. 법원에서 개인파산보다 개인회생으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법을 집행함에 있어 굉장히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회생 변제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줄어든 것에 영향을 받아 일정 부분 돈을 갚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은 일이라고 판단하는 듯하다. 법원에서 개인파산보다 개인회생을 선호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법의 집행은 판사의 선호와 채무자의 도덕문제가 아니라, 당사자 채무자의 경제적 상황이 가장 중요한 법의 집행 근거가 되어야 한다.
또 하나 현행 채무자 회생법의 문제는 개인회생의 경우 부양가족 수에 따라 생계비 기준이 이 있다. 앞서 사례의 부부처럼 4인 가족일 경우 2019년 기준 매월 생계비는 276만 원이다. 만약 소득이 356만 원이면 276만 원 만으로 생계비로 사용할 수 있고, 나머지 80만 원은 채무를 변제하는데 써야 하는 것이다. 생계비 기준의 증감 폭이 있지만 일반적은 경우는 기준 금액으로 생계비가 책정이 된다. 276만 원 4인 가족이 살아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개인회생에 있어 최저생계비 기준이 낮다는 이야기는 여러 해 동안 지적을 했던 부분이다. 이번 일가족 사건도 이런 불합리한 제도로 인해 만들어진 참사이다.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은 죽을 때까지 갚아야...
현행 채무자 회생법에는 여러 문제가 많지만 그중 가장 이상한 독소조항은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의 비 면책 조항이다. 이는 ‘취업 후 상환 학자금 대출 특별법’에 의한 채권은 파산을 신청하더라도 죽을 때까지 갚아야 하는 것이다. 법에서는 개인회생은 가능하고, 파산은 불가능하게 되어 있다. 법이 이렇게 차별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청년에게 가해지는 차별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청년은 파산이 잘 되지 않는 것은 업계(?)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사지가 멀쩡한데 일을 해서 갚을 생각을 해야지 파산·면책받을 려고 하냐’는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이 청년을 두 번 죽인다. 장기간 실업에 놓여 있고, 저소득과 불안정안 노동환경에 처해 있는 청년의 현실을 본다면 법원의 인식과 판단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고, 후진지 알 수 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제도를 바꾸자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 하지만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누구라도 한 순간의 실수와, 경제 위기로 넘어질 수 있다. 넘어졌을 때 사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가 중요하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마치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는데, 너의 잘못으로 넘어졌으니, 너 스스로 빨리 일어나라고 비난하고 채찍질하기 바쁘다. 무릎에서 피가 나 나오고 있어도 그거 별거 아니니 툭 털고 일어나라고 한다. 참 냉혹한 세상이다.
공동체라면 우선 아프냐고 물어보고, 피를 닦고, 일으켜 세우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 사는 세상이다. 그리고 다시 넘어지지 않도록 방법과 자원을 알려줘야 한다. 이 정도가 무리한 요구일까? 우리 사회는 채무자에게 너무 가혹하다.
이번에 발생한 사건으로 유명을 달리한 4명의 목숨은 너무 안타깝다. 특히 2살, 4살 된 애기들은 무슨 죄란 말인가. 못난 부모를 만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제도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재산이 있으면서 돈을 무조건 갚지 않는 사람을 옹호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서 죽음밖에 길이 없다면, 누가 돈을 빌리겠는가. 건강하고, 건전한 시장경제를 위해서라도 채무자의 권리보호가 시급하다. (끝)
본 글은 '레디앙'에 기고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