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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금 Nov 12. 2017

22세기 반고흐의 고백

나의 그림은 영원히 남는다.

요즘 KBS 드라마 고백부부를 재미있게 시청하고 있다. 현실에선 불가능한 일들이 드라마 속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니 그래서 나는 드라마가 좋다. 고백 부부를 보면 마치 나 자신도 과거로 돌아간 기분이다. 흘러 보낸 과거의 아쉬움 속에서 후회의 순간들을 돌릴 수 있는 시간.

내게도 지금 타임머신이 필요하다.

극 중 진주가 돌아가신 엄마를 만나는 장면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나도 과거로 돌아가 엄마를 만날 수만 있다면. 드라마 속 진주처럼 엄마와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 같이 있었으면...

지금 내게 연애는 사치일뿐이다.

나도 시간이 흘러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 드라마 고백부부 8회에서는 아들 서진이가 태어난다. 병원에서 돌아가신 엄마 사진을 보며 펑펑 우는 진주의 모습. 사랑하는 내 아이를 사랑하는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는 슬픔. 그 모습은 마치 나의 먼 훗날 미래의 예고편을 보는 기분이었다.


엄마에대한 그리움은 시간이 갈수록 짙어져만 간다. 정규직과 프리랜서의 갈림길 사이에 서 있는 내가, "연애는 사치"라며 사랑을 멀리하는 내가, 과연 결혼은 할 수 있을까? 가정을 만들 수 있을까? 나의 미래는 아무도 모르지만 확실한 건, 엄마가 내 옆에 없다는 것.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지나간 과거는 붙잡을 수 없다. 지금 내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내가 두 명이라면 모자란 나의 부분을 채울 수 있었을텐데
6년 전 20살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엄마와의 추억을 만들고 싶다. 내가 처음 번 월급을 엄마에게 통째로 주고 싶고, 비싼 레스토랑에서 외식도 하고 싶고, 반짝이고 예쁜 귀걸이를 사주고 싶고, 매일 하루하루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고 하고 싶은게 너무 많다.

3년전 방안에 박혀 이력서 쓰기에만 바빴다. 도저히 쓸 곳이 없어도 어떻게해서든 채용공고를 찾아보고 억지로 이력서를 넣었다. 그래야 마음이 편했다. 작은 기회라도 놓치고싶지않았고, 너무나 간절했다. 엄마얼굴을 본 횟수보다 채용공고를 본 횟수가 더 많은것처럼 첫 직장 실패라는 나의 실수를 만회하고싶었다. 나도 언니처럼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 되기위해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기위해. 그러나 이 모든 행동이 잘못되었다는걸 뒤늦게 후회하고있다. 이력서를 쓰기보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편지를 쓸 걸. 많은 추억을 남겨둘 걸. 여행을 다닐걸. 셀카사진말고, 엄마와 함께 사진을 많이 찍어둘걸. 그 시간을 취업에만 목숨을 건 내 자신을 자책한다.


그래도 내가 가장 잘 한 일 중에 하나는 사진 찍기와 동영상 촬영이었다. 우리 집 공식 사진사로 장 수는 엄청 많지는 않지만, 식사 준비를 하는 엄마, 엄마의 손 맛이 묻어난 김밥 재료들, 엄마 자는 모습, 클로즈업으로 찍은 엄마 얼굴, 철쭉꽃 앞에서 찰칵, 엄마와 할머니가 같이 있는 모습을 담은 영상들. 영상 속에는 내가 없지만, 엄마와 언니가 함께 있는 모습도 담았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여러 USB에 폴더별로 사진을 옮기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엄마의 사진은 나의 보물 1호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독자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과 사회부적응자라는 꼬리표의 껍질을 벗기위해
채용공고 속에서만 365일 살다가 옆을 돌아보니 엄마의 빈자리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니 부디 부모님과 함께 추억도 많이 만들고,
무엇보다 사진과 동영상 촬영도 많이 찍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나이 26살. 엄마를 만날 시간이 과연 몇 년이나 남아있을지 모르겠다.

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그림을 시작했다면,

지금은 먼훗날 죽어서 나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그림이라는걸.

내가 가는 길은 사방이 막힌 사막. 오아시스를 발견한 줄 알고 착각하지만, 자갈밭 모서리에 찍혀 상처투성이가 된 발을 바라본다. 나는 실크로드처럼 비단길을 언제 걸을 수 있을까?

살면서 단 한 개의 작품밖에 팔지 못한 고흐. 고흐가 죽어서야 그제야 사람들은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게 된다. 나도 살면서 유명한 작가가 될 자신이 없다. 혹시 내가 죽어서 내 그림이 조금이나마 알려지게 된다면 그렇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외로움 속에서 오랜 시간 꿈을 이어오는 이유. 내가 정말 많은 그림을 남기는 이유는 단 하나, 엄마를 위해서 오늘도 나는 그린다.


엄마가 바라던 정규직 직장인의 삶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일을 잘 선택한것같다는 엄마의 말처럼 이렇게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있어요. 그리고 브런치를통해 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나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 버티고 그려왔어.
엄마, 나 정말 잘했지?

일러스트 작가 한소금의 브런치

인스타 www.instagram.com/hansalt58
블로그 blog.naver.com/skdbs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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