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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소금 Nov 12. 2017

박열과 후미코처럼 뜨겁게 살고 싶다.

나도 이들처럼 뜨겁게 살아갈 수 있을까?
나도 이들처럼 용감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해고만 무려 4번이나 통보받은 대한민국 보통의 26살 여자.

이 시대, 영원한 실패자로 기억될 4번째 해고의 기록.

그림 그리기만 무려 20년째 이어오고 있는 어느 무명작가의 영화감상문.



영화 <박열>

영화 '박열'을 봤다. 나는 항상 그림을 통해서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주된 토크는 해고, 취업, 면접, 연애초보 등 한정적인 이야기밖에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이런 내게 영감을 주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키우게 한 영화가 있다. 그건 바로 영화 '박열'이다.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사진
가네코 후미코와 박열 일러스트
26살, 겁쟁이 여자의 카타르시스

나는 겁쟁이다. 항상 소극적이다. 언제나 나의 주장대로 살아갈 수 없게 그렇게 자라왔다. 해고 1번만으로도 사회에서는 리스크가 큰데 무려 4번씩이나 해고를 당했다. 아무리 나의 억울함을 토로해도 받아주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언제나 나 자신을 자책했다. 내가 나 자신을 창피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의 잘못이 아닌데, 내가 피해자인데..."라고 속으로 말한다. 여기서 만약 내가 울어버리게 된다면 나를 해고했던 회사와 사회에게 지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자신감이 바닥까지 추락하고 말았다.


박열

나는 '박열'과 '후미코'의 여유와 당당함에 반하고 말았다.

<줄거리>
항일운동 단체 「불령사」의 리더 박열.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기 위해 폭탄을 구입하려던 중 일본에서는 관동대지진이 발생한다. 일본 정부는 성난 민심을 잠재우기위해 조선인들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려 조선인들을 무참히 대학살 한다.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사건을 은폐하고,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고자 불령사의 박열을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다. 일본의 계략에 눈치를 챈 박열은 일본의 만행을 알리기위해 후미코와 함께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기로 했다고 자백한다.

박열은 공판을 앞두고 4가지 요구사항을 말한다.
 "죄인 취급을 하지 말 것 / 조선의 관복을 입게 할 것 / 재판장과 동등한 좌석을 설치할 것 / 조선말로 말하게 것"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박열 일러스트

가네코 후미코

한국 이름은 박문자. 후미코 또한 아나키스트이며 박열의 영원한 동지이자 부인이다.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져 학대를 받아 자라왔다. 같은 여자 입장에서 그녀의 초년 시절은 너무 가슴이 아프다. 후미코는 어묵집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사회주의자들과 교류를 하였는데, 이 때 박열이 쓴 '나는 개새끼로소이다'라는 시를 보고 그에게 반해 동거를 제안한다.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솔직한 감정표현을 하는 여인. 그 장면을 보고 "정말 멋있고, 매력 넘치는 여자다!"라고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고 자신의 주장을 확실히 표현하는 가네코 후미코를 영화를 통해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부디 우리를 함께 단두대에 세워 달라. 나는 박열과 함께 죽을 것이다.
박열과 함께라면 죽음도 오히려 만족스럽게 여길 수 있다.
그리고 박열에게 말해두고자 한다.
설령 재판관의 선고가 우리 두 사람을 나눠놓는다 해도
나는 결코 당신을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가네코 후미코 일러스트 (가네코 후미코가 옥중에서 쓴 옥중수기인 '나는 나'를 꼭 읽고싶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박열의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_ 일러스트 & 손글씨 작업

박열과 후미코의 강한 정신력을 닮고 싶다.
당당하게 나의 주장을 말하고싶다.

클라이언트는 곧 갑. 디자이너는 을. 창조적 개성을 담아야 하는 디자인 분야에서 "개성은 죽어 마땅하다"라고 말하는 일부 어떤이들.
언제까지 구석에 박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껴야만 하는가?

조금만 독특하거나 튀기만 하면 손가락질을 하는 세상. 아무리 세상이 변했어도 개성을 존중한다고 말한대도 현실에서는 사회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사회의 첫 발을 내미는 순간 우리는 경력 5년 차쯤은 되어있어야 하는 걸까? 사람들은 말한다. 그냥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 나의 주장을 말한대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그래서 그게 정답인 줄 알았다.

"그냥 조용히 있어야지. 튀지 말아야지... 내 주장에 대해 이제부터 말하지 말아야지.."라며 입을 꾹 닫는다. 사람을 쉽게 버리고 사람을 소중히 생각하지 않는 회사에서 그렇게 나는 어이없는 이유로 4번씩이나 해고를 당했다. 그 당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언제나 직원은 '을'이라는 생각에 피해는 고스란히 사회초년생에게로 돌아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욕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나왔을 텐데, 내게 단 1%의 잘못이라도 있다면 해고를 받아들이겠지만 사실은 아니기에, 나는 결백하기에 "그저 재수가 없었다"라는 말이 그나마 위로가 될지 모른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친구들. 친구들은 점차 나를 내려 깎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피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연락을 끊어버렸다. 영원히 그들의 기억 속에 나는 쭈구리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들이 나를 보고 쭈구리라 말한다면 그 앞의 수식어를 붙여 "아름다운 쭈구리"라고 부르라고 할 것이다. 이제 나는 그들을 피하지않고 솔직한 감정표현을 할 것이다.



재판장에서 조선말로 말하며 일본인 앞에 기죽지 않는 그 당당함! 영화를 보는 내내 이들의 당찬 매력에 푹 빠져 아직까지 여운이 남는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독립운동가에 대한 감사함뿐만 아니라,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느끼게 해 준 영화였다.


박열의 무릎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후미코.

그 어떠한 두려움도 느낄 수 없는, 당당함이 느껴지는

조선 최고의 아나키스트 박열과 후미코.




나는 내게 묻고 싶다.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무서운가?

이들처럼 뜨겁고 용감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림을 그리고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예술활동 또한 솔직한 감정표현이다. 그림 앞에서는 당당하지만, 인간 한소금으로써는 그리 당당하지 못했다. 이유는 '취업실패자'와 '해고만 4번째'라는 꼬리표 때문이다. 나는 당당하다고 자신 있다고 외치지만 자본주의 사회 앞에서 나도 모르게 작아지고 만다.

나의 잘못이 아니다.
해고면역력으로 두려움을 떨쳐내자.

지금까지 회사원이 되지 못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니다. 회사원이 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4개월짜리 직장인이었던 시절이 있었으니 회사원으로써는 잠깐 살아봤다. 해고가 나의 가슴을 찢어도 계속해서 구직활동을 해왔던 나는 도전 자체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훗날 미래를위해 이력서 한 줄의 기록을 남기기위해

어떤 회사에 소속되어있는 디자인팀 경력 1년 차로 살아갈 수 있을지 솔직히 모르겠다.

그리고 4번의 해고 기록에서 5번째 기록을 세울까봐 걱정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속담처럼 나에게는 해고면역력이 생겼다. 이제 그 어떠한 것도 무섭지 않다. '나' 자신이 곧 '브랜드'이기에 어떠한 바람이 나를 흔들더라도 꽃 피울 것이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이 모든 과정이 꿈을 이루는 순간이에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조선에 아나키스트가 있다면,

2017년, 어디에도 소속되어있지 않은

영원히 재미있는 그림을 추구하는 어느 "자유파"가 있다.

팝아트/일러스트 작가 한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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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www.instagram.com/hansalt58

블로그 blog.naver.com/skdbs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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