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3일
두 달 전 읽은 데미안을 주제로 크리에이터 클럽 독서 모임에 가게 되었다. 알을 깨고 날아가야 한다는 이야기와, 카인의 표식에 관련된 이야기. 내면을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운명은 정해져 있다 등 이런저런 책에 대한 후기가 오고 갔다. 그중 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바라길래 약간 신기했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나에게도 데미안처럼, 나를 성장시켜주는 멘토가 나타났으면 좋겠다.'라는 말이었다. 신기해서 검색도 하고 찾아보니 다른 후기에도 데미안 같은 멘토를 만나야 한다는 글들이 참 많더라. 그 말을 듣고 엉뚱한 생각이 들어, 데미안이라는 인물을 그동안 읽었던 조직관리, 리더십 관련된 책과 오버랩하며 들여다보게 되었고, 나 혼자 뇌피셜로 내린 결론은 이렇다. "데미안이 현생에 있었다면 꽤 괜찮은 사수였겠다."
첫 번째 독후 콘서트의 주제
사실, '데미안이란 고전 명작을 이런 식으로 보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을 먼저 든다. 표현력이나, 대사 하나하나가 주옥같고, 영감을 주는 요소들이 너무 많아, 뭔가 감각적인 예술을 실용성으로 평하가는 듯한 이질적인 기분이 들어 찜찜하다. 문학은 가슴으로 느껴야 하는데, 난 문학과 역시 잘 안 맞나 보다. 데미안이 좋은 사수일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엔 몇 가지 정도가 있는데, 그래도 고전 문학 후기인데 번호까지 매겨가며 설명글처럼 쓰지는 않으련다. 데미안이란 인물은 언제나 개인의 선택을 존중한다. 하지만 해줘야 할 말은 꼭 한다. 그리고 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인내심도 가지고 있다.
데미안 같은 멘토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데미안이 내 사수라면 어떨까 상상했다. 싱클레어를 내 신입사원 시절로, 데미안을 회사 선배라고 생각했다. 클레어가 크로머를 만나고 온 세상이 파괴되는 경험을 했듯, 나도 주니어 시절 처음 PM을 맡고 클라이언트를 만나면서 온 세상이 파괴되는 경험을 했다. 후우. 끔찍했다. 당시 디지털 광고 대행사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클라이언트가 아이디어를 계속 뒤집었다. 영상도 만들려다가 안 만들고, 사이트의 기능도 넣었다가 빼고.. 아침에 수정 요청을 받으면 점심에 고민해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문서 작성해서 보내고, 그러면 또 아침에 수정이 와있고 점심에 그걸 고민하는.. 그런 세상이었다. 난 생 처음 겪는 상황이다 보니, 어찌 대응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그냥 시키는 대로 내일 달라면 내일 주고, 수정해달라고 하면 수정해줬다.
그때 데미안 같은 선배가 나타났다면, 아마 새벽 햇살 같은 후광이 그의 등 뒤를 비추며 나타났겠지.
선배가 이렇게 말한다. "그 클라이언트 너무 힘든 거 아니야?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네가 그렇게 일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을.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물론 네가 원한다면 말이야. 난 널 곤란하게 하지 않아. 그건 믿지? 난 너의 클라이언트가 아니니까." 데미안의 대사를 인용하다 보니 대사가 뜨악하긴 한데, 어려움에 처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를 도와준다니, 고마움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될 것 같다. 물론, 중요하건 도와준다는 말을 했고, 해결해준 것 자체가 아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데미안의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꽤 많은 착하고 일 열심히 하는 선배들은 이렇게 행동한다. "아! 다 했어? 줘봐. 고생했네, 내가 마무리할 테니까 먼저 들어가 봐." 다음 날 메일을 보니 선배가 완전 처음부터 새로 했더라. 내가 작성한 건 단 1도 들어가 있지 않더라. 게다가 선배는 밤늦게까지 야근하느라 새벽에 들어갔더라. 아, 난 자괴감에 빠진다. 뭐 이건 양반일 테지. 어떤 사람은 '이게 뭐냐. 널 믿는 내가 스튜핏이다. 됐고 전기세 아까우니까 퇴근해라. 처음부터 내가 할 걸.' 이렇게 말하고 지 혼자 야근한다. 순식간에 난 일 못하는 X신이 되고, 그 사수는 신입 도와주는 착한 사수가 된다. 물론, 비약해서 표현한 것이지 저렇게 하면 못난 사수라는 걸 요즘은 다들 알더라.
주니어/신입들은 단순히 일이 해결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조금 더 고생하더라도 이 일을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가길 원한다. 소위 말해 사수가 일을 뺏어가 해결해버리면, 그 일은 해결이 될지언정, 해결 방법을 모른 체 지나가 버리게 된다. 즉, 성장하지 못한다.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 똑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 주도적으로 일할 기회를 주고, 알려 주기 전까지 그 방법을 평생 모른 체 사회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다. 데미안은 싱클레이어의 일을 해결하는 것뿐만 아니라 싱클레어의 입장과 감정까지 존중한다. 그래서 뻔히 정해져 있는 답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상황을 만들어 준다. 답을 강요하는 것과 그 답을 설득/유도하는 것은 다르다. 나는 이 차이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이 상황과 유사한 스토리가 하나 더 있는데, 싱클레어가 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한창 술독에 빠져 있을 때가 있었다. 이때 우연히 만난 데미안이 술을 자주 마신다고 걱정하 해주는데 여기에다가 대고 싱클레어는 "그것 말고 무슨 할 일이 있겠어? 아직까지는 재미있는 일이니까. 누구나 파우스트 같을 수는 없으니까."라고 말한다.(인성 무엇?) 세상 모든 사람이 우습고,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사람처럼. 마치 경력 좀 쌓인 3~4년 차 대리 마인드 같다. 요즘 주니어들은 사회생활을 모르고, 시니어들은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생각하는 마인드. 그렇다. 내 이야기다. 지금 생각하니 다시 낯짝이 뜨거워진다.
정말 다행인 것은 당시 나에겐 데미안과 같은 리더가 있었다. 경쟁 PT와 같은 제안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고, 나를 믿고 지지해 주었다. 하지만 누구나 말하듯 회사는 학교가 아니기에, 성장이 전부가 아닌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퀄리티는 맞춰야 했고. 결국 밤새도록 함께 남아 조언과 코칭을 해주셨다. 뺏어 가서 하셨으면 더 좋은 결과가 났을 텐데.. 그 당시 내가 최종 제출한 제안서를 다시 보면 아까 보다 낯짝이 더 뜨거워진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인내심이 정말 대단하셨다.(리스팩)
데미안은 인성질하는 싱클레어에게 "이런 걸로 다투지 말자, 나는 네게 잔소리를 하려는 게 아니야. 우리들 마음속에 모든 것을 아는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으면 도움이 될 거야."라고 이야기하며 가벼운 조언을 묵직하게 던진다. 술 마시면 뭐가 안 좋은지를 1시간 넘게 강요하지 않고, 가벼운 조언으로 마무리한다. 어른 싱클레어를 믿는다. 멘토와 꼰대, 보스와 리더는 사실, 해야 할 말을 한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경험과 견해를 토대로 피드백이라는 것을 주어야만 하는 상황은 같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같은 역할임에도 다르게 불리는 가장 큰 차이는 상대방의 입장(부사수, 팀원, 직원, 조직원 등)을 이해하고, 배려하고, 신뢰하느냐. 아까도 말한 상대방을 존중하느냐에 대한 태도에 달려 있다.
위에서 마음가짐을 강조했지만, 데미안의 행동 중에도 눈여겨볼 점이 있다. 싱클레어에게 계속해서 별일 없는지 물어보는 점이다. 일을 시키는 사람이라면 이 정도 사리분별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새파란 신입한테 일을 맡겼는데. 별일이 없을 리가.. 그런데 신입 중에 별일을 이야기할 정도의 신입은 누가 있으며, 심지어 별일과 별일이 아닌 일을 구분할 수 있는 신입이 과연 있을까. "모르면 물어봤어야지! 이걸 이렇게 가져오면 어떡해!" 이 말은 타자로 치면서도 소름 돋는다. 정말 이 극협 3종 세트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 같다. 모르면 물어봤어야지! / 그걸 말해줘야 알아? / 니가 책임질 거야? 차라리 나 때는 말이야가 이 세 가지보다는 나을지도..
좋은 선배와 나쁜 선배 모두 달성해야 하는 목적은 같다. 일을 일정 수준에 맞게 잘 해내는 것. 하지만 그 속에서 사람을 생각하고 있느냐, 일만 보느냐가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한다. 신입은 모를 수도 있다는 이해심, 후배도 사람인지라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는 배려심. 저 사람도 잘할 수 있을 것이란 믿음.
결국 좋은 사수/리더란 실력과 능력보다 마음가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좋은 멘토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싱클레어에게 마음을 다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 생각해 보면 좋을 듯하다. 나와 함께 일하는 내 사람에게 마음을 다 주었는가. 그 사람의 안위를 생각하는가. 그리고 반대 입장이라면 안타깝게도 나는. 날 믿어주지 않고, 내게 맘을 열지 않고, 나의 개인의 성장, 감정, 안위,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일만 보는 선배를 만났을지라도 나는 바뀐 선배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많은 사람이 오해할 수 있지만 이건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 독서 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