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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진 Sep 11. 2020

이 세상에 유능한 그로스 해커는 없다.

2020년 9월 17일

올해 초 시작한 크클(크리에이터 클럽)글쓰기 모임을 통해 얻는 에너지가 너무 커, 4분기에는 독서모임 트레바리도 함께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크클 글쓰기 모임에서는 소설, 시, 에세이와 같은 문학적인 것들을 많이 쓰기 때문에 트레바리에서는 일과 관련된 도서를 주제로 모임을 갖고 싶어, 마케팅 서적 읽는 모임을 선택했다. 


모임의 첫 책이 '진화된 마케팅 그로스 해킹'이다. 트레바리 모임에 가려면 독후감을 과제로 제출해야 하는데, 이왕 쓰는 거 브런치에는 내 생각을 담아 과제보다 조금 더 많은 내용을 써서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교보문고에서 배송된 책을 받아보고, 표지 디자인을 보고, 책의 처음과 끝을 한 번 후루룩 훑었을 때 느꼈다. 딱딱한 실용서다. 내가 좋아하는 지적 자본론이나, 리더는 마지막에 먹는다와 같은 에세이나 인문학 느낌의 책이 아닌, 로직으로 꽉 들어찬 완벽한 실용서다. 중간중간 표와 다이어그램이 나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마켓 4.0을 마지막으로 실용서에 흥미를 잃어, 거의 끊다시피 했는데.. 앞이 캄캄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데미안 다음으로 이 책의 후기를 쓰는 게 정말 정말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안 올리기엔 쓴 게 너무 아깝잖아...



두꺼운 양장본이 풍기는 느낌부터 타이포까지 누가 봐도 실용서.




두 번째 독후 콘서트의 주제

"이 세상에 유능한 그로스 해커는 없다."


[그로스 해킹 네이버 검색 결과]
1.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더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접근해 저비용으로 최고의 광고 효용을 추구하는 마케팅 기법.
2. 성장을 뜻하는 그로스(growth)와 해킹(hacking)의 합성어로 상품 및 서비스의 개선사항을 계속 점검하고 반영함으로써 사업 성장을 촉구하는 온라인 마케팅 기법


내가 그로스 해킹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 퍼블리 구독자 인터뷰 때였다. 그 당시 담당자는 빅데이터 관리 및 그로스 해킹을 맡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나도 디지털 마케팅 분야에서 종사 중이지만, 퍼포먼스보다는 캠페인 중심으로 진행을 하고 있었기에 당시, 직무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는 않았다. 대략적으로 여러 소비자 데이터를 분석하여 그에 맞는 인사이트 도출하고, 도출한 인사이트를 바탕으로 향 후 마케팅 계획을 수립하는 직무 정도로 쭉 알고 지내왔다. 당시 나는 갓 팀장 직책을 부여받은 상황이었고, 인스타그램 광고 세팅/구글 애널리틱스 세팅 같은 새로운 마케팅 툴보다는 조직관리에 대해 관심이 더 많았었다. 


그 이후, 책을 통해 그로스 해킹을 마주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읽는 실용서라 약간 부담됐지만 책은 유익했고, 그로스 해킹에 대한 내 좁은 시야를 조금 더 틔어 주었다. 그리고 책은 내게 몇 가지 의문점도 남겼다. 내가 퍼포먼스 마케터가 아니어서 그런 것일까. 물론 그로스 해킹과 데이터/퍼포머스는 뗄레야 뗄 수 없지만, 나는 데이터 수집/분석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 그로스 해킹이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닌 마인드 셋을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로스 해킹팀은 존재해도, 그로스 해커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 마케터가 그로스 해킹을 하기 위해서 바꿔야 하는 마인드 셋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첫 번째는 경쟁심보다는 협동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기성의 것을 따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도전 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것. 세 번째는 내 생각이 틀렸음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이다. 글로 보면 옛날 자기 개발서에나 나올 것 같은 말들이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자신의 부서를 이끌어본 사람이라면 저 흔하디 흔해 빠진 말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을 것이다. 


한국 기업에는 사내 정치질이 판을 친다. 우리는 경쟁 속에서 자라 왔고, 회사 내에서 내 자리를 유지해야 한다. 비단 시니어들만의 이야기인가. 주니어들은 이곳을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워크와 라이프를 구분하고 니일과 내일을 구분한다. 영업은 영업을 열심히 하고, 마케팅은 광고를 만들며, 개발자는 앱을 만들고, 프로덕트 매니저는 제품을 만든다. 우리의 조직은 소비자의 행동과 심리 속에서 어떤 실마리를 발견했을 때 모든 부서가 변화를 할 준비되어 있는가. 마케팅 팀이 와서 소비 트렌드를 이야기하며 앱이나 제품을 어떻게 디벨롭하자고 제안할 때 믿고 반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게 설령 신입사원의 아이디어일지라도? 시장 상황을 볼 때 광고보다는 제품 유통망 유치에 힘을 쏟아야 할 때, 우리 부서에 책정된 예산을 포기하고 영업팀에 예산을 넘길 수 있는가. 내가 만든 제품/앱/광고가 거지 같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59p: 부서들 간에 권한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부서 이기주의 관행이 가장 큰 문제, 최고의 아이디어는 부서를 초월한 협력에서 나온다.
63p: 고객 중심적 활동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지만, 부서 간 소통의 부족이 제품 개발과 마케팅을 더 고객 중심적으로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고 이야기한다.
190p: 가능한 많은 아이디어를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팀원들뿐 아니라 회사 전체의 아이디어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위 문장은 내가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깊게 본 구절들이다. 나는 마케팅 대행사에 있다. 가끔 클라이언트에게 이런 제안 요청을 받는다. 비용은 적게들지만 효율은 좋은 마케팅, 소비자들의 인사이트가 내재된 마케팅. 그럼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말씀 주셔도 우리 회사 내수를 생각하면, 제안드릴 것이 한정적인데..' 서로간의 이해 관계와 상황이 다른 것이다. 클라이언트는 500만원만 써서 5,000만원의 수익을 내고 싶다. 대행사는 500만원으로는 신입사원 한 명 붙여주기도 힘들다. 가끔은 수익을 고려하지 않고 제안을 해도 대표님이 공감을 못하신다던지, 성공 사례가 부족하다던지 하는 이유로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많다.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다른 소속감을 가지고 있을 때, 좋은 마케팅을 하기는 점점 어렵다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미 모두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다른회사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같은 회사 다른 부서라고 크게 다를까? 매출이 잘나오면 마케팅이 잘했는지. 영업이 잘했는지. 제품이 좋았는지. 공의 주인을 논하기 바빠지더라.


디지털 마케팅을 하고 있어서 일까. 원티드 채용공고나 인스타그램 채용광고를 볼 때 그로스 해커를 뽑는다는 내용의 광고와 공고를 꽤나 자주 접한다. 그 사람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 채용 공고를 올린 것 일까? 광고비를 1억 쓰면, 순 수익을 3억 벌어다 줄 수 있는 퍼포먼스 마케터를 뽑기 위해 올린 것일까? 서드파티 툴을 활용하여 모바일 게임 내 적절한 과금 유도로 수익을 올리기 위해 뽑는 것일까? 사람 한 명 잘 뽑으면 회사의 매출과 수익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고 올리는 것일까? 업무를 하는 사람이 그로스 해킹을 할 수 있는 소비자 중심적인 마인드와 패턴과 심리를 읽어내는 능력이 있는지를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그로스 해킹을 도입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가진 회사인지도 다시 한번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로 협동하는 문화, 시기 질투하지 않는 문화, 상호 존중하는 문화, 다름을 인정하고 성장하려는 문화.


결론적으로 그로스 해킹을 통해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고, 더 효과적으로 고객에게 접근해 저비용으로 최고의 광고 효용을 추구하는 마케팅을 하기 위해 조직에 더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그로스 해커가 아닌 그로스 해킹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로스 해킹으로 유명한 회사, 유명한 그로스 해킹 사례, 유능한 그로스 해킹팀은 있을지 언정, 혼자서 드라마틱한 매출을 견인해 내는 유능한 그로스 해커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회사의 모든 구성원이 함께 만들어야 빛을 볼 수 있는 것이 그로스 해킹이라는 업무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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