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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진 Nov 03. 2020

엉덩이의 무게

2020년 11월 3일

네이버에 '엉덩이가 무거워야'라고 검색했다.


검색 결과를 스크롤링했다.

세상에, 엉덩이만 무거우면 뭐든 할 수 있고, 될 수 있다.


'편집자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만화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

'비서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죠.'

심지어 '부동산 투자도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라고 한다.


이 중 가장 인상 깊은 글의 제목은 '팀장은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라는 글이었다. 약간 사회복지와 관련된 카테고리에서 일을 하시는 분 같았는데, 글을 읽어보니 맞는 이야기만 하셨더라.


꽤나 난감했다. '요즘 엉덩이가 무거워져 걱정이라는 글'을 쓰려고 계획 중이었기 때문이다. 네이버 검색은 이 글을 쓰기.. 직전에 그냥 의미 없이, 심심해서 검색해본 것이었다. 요즘 '엉덩이가 무거워서 다행이라는 글'로 바꿔서 써야 하나 잠깐 생각했지만, 그냥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쓰려한다.


입사 한지 벌써 2주가 넘었다. 팀원들과는 하루에 한 번 정도는 농담도 주고받고 이야기를 꽤 하는 편이다. 이쯤되면 다른 부서의 일을 파악하고 공유해야 할 시기인데.. '엉덩이가 무거워서 걱정'이다. 나는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다. 내가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바로 소통이다. 이 무슨 당연한 소리겠냐마는,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고객과의 소통이 아닌 내부 직원들끼리의 소통이다.


우리 브랜드의 이슈, 플랫폼의 오류, 변화, 업데이트, 신규 오픈 등 다양한 이벤트 스케줄을 파악해 놓아야 적지에 효율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업에 있으며 광고는 바이럴이 엄청 되었는데 유통이 아직 덜 돼서 판매가 안 이루어졌다는 음료의 사례도 있었고, 제휴 영상 콘텐츠가 대박이 터졌는데, 온라인몰 서버가 같이 터져버려서 캠페인이 망했다는 소식도 종종 접했다.


마케팅이 진짜 의미가 있으려면 부서 간 소통을 통해, 고객과 커뮤니케이션해야 할 에센스를 발굴하고 적절한 마케팅 시점을 잡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서비스팀에서 가고, 신사업팀에도 가고, 플랫폼 팀에도 가야 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지지 않는다.


누군가 자리에 찾아오길 바래서는 안 되고, 메일만 틱 보내서 내가 필요한 일정과 특이사항을 보내달라고 해서는 안 된다. 분명 오해가 쌓일 것이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필요한 자료를 요청하는 태도에 따라 업무상 필요한 소통이 될 수도, 없던 일을 시키는 지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다른 부서와 일을 할 때는 이 부분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팀장은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팀원들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땐 참 낯가리는 스타일인 것이 원망스럽다. 얼굴에 철판 깔고 천연덕스럽게 말을 거는 것도 필요한데 안타깝다.


결국, 오늘 업무 공유 차원에서 회의를 하자고 타 부서 이사님이 먼저 메신저를 주셨다. 회의는 내일모레지만 그전에 뭔가 살갑게 자리로 찾아가 말이라도 붙여봐야지 다짐한다. 후.. 꼭!


여담으로 다른 의미에서 '팀장은 엉덩이가 가벼워야 한다'라는 생각도 가지고 있다. 내가 신입사원으로 있을 때 본부장님께서 해주셨던 말이다. 당시 직원 대부분이 2030대였던 시절, 본부장님은 혼자 40대였다. 그때 항상 1차가 끝나면 집으로 먼저 가겠다고 말하셨는데, 아쉬운 마음에 2차를 같이 가자고 말씀드리면 이렇게 말하셨다.


"내가 떠야 분위기도 뜬다."


그리고 그 말은 경험상 언제나 옳았다.

역시, 팀장의 엉덩이는 가벼워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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