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일까 열정이 볼드모트가 된 게.

2021년 1월 29일

by 한상진

언제부터일까. 열정을 열정이라 부르지 못하게 된 것이.

가슴에서 출발해, 목구멍을 지나, 입 밖으로 탈출하려는 열정을, 오늘도 난 입 속에 가두었다.




어제 신입사원 면접이 있었다. 신입 채용이라 대부분의 지원자에게 경력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채용의 기준은 이력을 통해 추측되는 성향, 성품, 성격, 적극성 등이 되었다. 어떤 지원자는 유튜브에서 영상을 통해 꾸준히 자신을 PR해 왔으며, 어떤 지원자는 몇 년 동안 캠페인, 광고 리뷰를 블로그에 꾸준히 업데이트 해왔다. 열정 넘치는 청년들이었다.


그 열정을 리스펙 하고 싶었다.

대단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멋지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주어를 입에 올리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렇게 나는 말을 빙빙 돌렸다.


"뭔가를 꾸준히 해온 끈기가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그리고 자신이 맡은 것에 대한 책임감도 높아 보이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시도하려는 도전 정신도 멋진 거 같아요. 남들이 시키지 않아도 뭔가 주도적으로 나서서 하는 적극적인 면이 있으시네요. 개인의 성장을 위해 끊임 달리시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배우겠다는 자세가 있으신 분들은 대부분 일도 빨리 배우시더라고요. 일도 잘하실 것 같아요."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었다.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은 "열정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멋집니다." 였는데..


나보다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열정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무섭다. 청춘을 착취하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아 무섭고, 꼰대처럼 보일까 봐 무섭다. 사실 열정이라는 단어는 죄가 없는데.. 열정 뒤에 붙는 수식어가 문제인데 말이다. 열정 페이. 열정 강요. 열정 이용. 열정 착취가 나쁜 것인데.


모두가 유튜버를 꿈꾸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개인 창작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노력한다. 창업자의 비율은 점점 더 늘어나고, 퍼스널 브랜딩은 이제 보편적인 말이 되어버렸다. 국가를 위해 열정을 쏟고, 회사를 위해 열정을 쏟는 것을 지나, 자신에게 열정을 쏟는 시대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어느 때 보다 열정의 질이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열정은 구멍에 들어가 빛을 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어찌 보면 나를 위해 열정을 쏟는 것도 강요당하는 느낌이라서 그런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를 이해할 것이라 생각되는 팀원이나, 동생에게는 가끔 열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물론 구구절절한 해명과 함께이지만.


"나는 OOO이 열정이 있어서 빨리 성장했다고 생각해. 물론 요즘 열정이라는 단어가 많이 퇴색되기는 했지만, 나는 열정 자체는 좋다고 생각하거든. 열정을 대가 없이 이용하려는 것이 나쁜 거지. 열심히 해줘서 고맙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준비할 수 있도록 나도 회사도 노력할게."


조금은 아쉽다.

열정을 입에 올릴 때 해명을 붙여야 한다는 것이.

열정 있는 것을, 열심히 하는 것을, 노력하는 것을 흑우로 보는 시선이 존재한다는 것이.


하지만, 아쉬워도 어쩔 수 없다. 모두 기성 사회에서 자초한 일이기 때문이다.


열정이 없는 것은 나쁜 게 아니다.

열정이 있는 것도 바보 같은 게 아니다.

없는 열정을 강요하고, 매도했던 것이 문제다.

있는 열정을 이용하고, 착취했던 것이 문제다.


나는 열정 있다는 말을 들을 때 칭찬으로 들었다. 행복했다.

다시 그런 시대가 올 수 있게 노력할 것이다.

(여기 흑우 하나 추가요..)


*표지 타이틀 출처: Warner B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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