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좀 잃으면 어때.

2021년 2월 4일

by 한상진

초심을 잃은 것 같다.


입사 초에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던 신입사원이 회의적으로 바뀌었을 때, 회사가 성장하면서 친근했던 대표님과 거리감을 느낄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절대 변하면 안 되는 것이 변한 것처럼.

세상 실망했다는 감정이 담겨 말을 뱉는다.


세상은 시시각각 바뀐다.

사람은 시시때때 변한다.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 마음이 갈대와 같다는 것을.


초심은 잃는 것일까?


다른 초심으로 대체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초심을 잃기 위해서는 새로운 초심이 필요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초심이 생긴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회사를 열정적으로 일을 해야겠다' 생각했던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일 좀 적당히 해야겠다' 생각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초심을 잃은 결과를 보지 말고 맥락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 그들은 초심을 잃을 수밖에 없었는가. 본인이 갑자기 나쁜 마음을 먹어서일까? 아니면 세상이, 조직이, 누군가가 그렇게 만든 것일까?


그리고 이유와 함께 목적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신입사원이 일을 적당히 하고 싶은 이유가 단순히 몸이 편하고 싶어서라면 분명 안 좋은 것이다. 하지만 너무 야근을 많이 해서 안 좋아진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서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것이다.


초심을 잃었다고 해서 실망부터 박고 시작하지 말자. 잠깐이라도 무슨 일이 있나? 생각해보자. 맞는 비유가 아닐 수도 있지만, 세월이 흘러 집 반찬 맛이 변했다고 해서 '엄마가 초심을 잃었나?'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초심 유지를 너무 강요하지 말자.

물론, 나에게도.


살다 보면 가끔 뒤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열심히 일하던 나의 모습, 뭐든지 자신감 있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의 내게 초심을 잃었다고 한숨 쉰다. 타박하지 말고, 질타하지 말자.


초심을 잃었을 수도 있지만,

세상에 적응하는 중일 수도 있다.

어쩌면 어른으로 성장하는 중 일 수도 있다.


단어에 따라 뉘앙스가 달라질 뿐.

같은 말 일 수도 있다.


초심을 잃었다.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리고 뭐, 초심 좀 잃으면 어떠냐.

조금 나 행복하게 살자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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