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빌런, 악역과 악인의 차이.

2021년 3월 16일

by 한상진

타노스 재평가 시급.


작년 코로나가 기승일 무렵, 인구 활동이 줄어들자, 야생 동물 활동이 늘고,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접한 사람들이 남긴 댓글이었다. 사람들이 콘텐츠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의 콘텍스트(맥락)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과거 '절대악'으로만 보던 빌런을 재해석하여 보는 일들이 많아진 것 같다. 그냥 나쁜 놈이 아니라 사연이 있는 놈, 인류와는 입장이 다른 놈 등으로 빌런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뀐 것 같다.


이는 우리가 평소에 즐기는 콘텐츠뿐만이 아니라, 과정이나 맥락을 중요하게 본다던가, 다양성이나 개인성을 존중하는 것과 같이, 사회 전반적으로 일반화를 피하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빌런에게도 공감 능력을 발휘하는 시대.

우리는 직장 내 빌런에게도 우리의 뛰어난 공감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만약 발휘하게 된다면 어떤 빌런에게 그럴 수 있을까?


이 사람, 저 사람을 떠올려 보았고, 일단 '상사는 다 빌런'이라는 생각으로 1차 결론을 냈다. 대표, 팀장, 부서장, 관리자, 사수 등 '다른 사람의 스케줄을 컨트롤해야 하는 역할을 가진 사람은 특정 시점, 특정인, 특정 상황에 빌런'이 된다. 그게 단 한 명이라 할지 라도.


상사 빌런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는 생각이다. 하나는 '어벤저스의 타노스'이고 다른 하나는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이다. 난 이 두 부류를 악역과 악인이라고 구분하려 한다. 당연하게도 악역 상사에게는 공감의 여지가 있지만, 악인 상사에게는 눈곱만큼의 여지도 없을 것 같다.



악역과 악인을 구분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요소 '태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고 다 좋은 이야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착한 팀장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도 아니다. "퇴근 10분 전에 미안합니다. 옆 팀이 너무 바빠서 오늘은 다 같이 야근을 해서 도와야 할 것 같아요. 갑작스럽지만 우리 모두 힘냅시다 ^^" 이 문장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더 최악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오늘 야근해야 되니까, 약속 있는 사람 다 취소하세요. 언제 야근할지도 모르는데 평일에 약속이나 잡고.. 하여튼 요즘 직원들은 회사생활 편하게 한다니까." 이렇게 말투부터 아니꼬운 태도로 말을 하는 것 보다야.. 말이라도 이쁘게 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났다는 생각이다.


이런 틱틱거리고, 비꼬는 투로 말하는, 소위 말해 싸가지가 없는 사람들은 일도 정말 정말 잘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아, 저 사람 말투만 저렇지 엄청 착한 사람이야" "저 사람 원래 좀, 츤데레야"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 태도를 잘해야 본전이라도 간다.



모든 관리자와 부서장을 누군가의 빌런으로 만드는 '상황'

위 말한 예시를 이어서 쓰자면 옆 팀 일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선택지는 두 가지이다. 옆 팀에게 도와줄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옆 팀의 빌런이 되는 것과 도와주겠다고 말해 우리 팀원들에게 빌런이 되는 것이다.


관리자는 빌런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나마 어느 한쪽에는 빌런이 되지만, 어느 한쪽에서는 고마워할 수도 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는다. 이런 결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만든다. 우리 팀을 위해 혹은 옆 팀이나 회사 일을 위해 관리자는 어느 한쪽의 악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난 이런 갑작스러운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회사생활을 했었다.


그런데 진짜 빌런은 어쩔 수 없는 야근을 가져오지 않는다. "자자~ 옆 팀 야근한다는데 일찍 퇴근하면 눈치 보이니까, 우리도 오늘은 야근 좀 합시다." 불필요하고, 이유 모를 야근을 가져온다.


상황을 이어 쓰다 보니 예시가 조금 비약적이지만, 불필요한 일을 만들어서 하는 상황은 종종 일어난다. 불필요한 보고, 과한 보고서 디자인, 필요 이상으로 앞서 나간 기획안, 확정도 안되었는데 진행한 프로젝트 같은 것들. 현재 흐름이나 상황에 상관없이 습관적으로, 계획적으로 불필요한 것을 지시하고 시키는 관리자는 악역이라기보다 악인이라 생각된다.



주변 사람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나만 위하는 '탐욕'

결정적으로 악인에게 없는 결정적인 한 가지가 있다면 바로 '명분'이다. 그래서 이해하기가 어렵고, 공감하기가 어려운 것 같다. 악역에게는 명분이 있다. 어벤저스 타노스 같이 세상을 우주를 구하고 싶다는 명분이나, 비밀의 숲 이창준 같이 썩은 조직을 바꾸겠다는 명분 말이다. 회사로 치면 '거래 성사를 위해 꼭 가야 할 주말 미팅' '연말 부서 성과급을 위해 고생해서 일해야 하는 기간' 같은 것.


악인의 행동에 있어 명분을 굳이 찾자면 '나' 아닐까?

내 돈. 내 진급. 내 기분. 내 욕구.

악마를 보았다의 장경철을 다시 훑어 봤는데 진짜 지 밖에 모르더라.


회사에서 빌런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직장 동료, 회사, 등등 피해를 주는 행동 자체는 피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지만 피해를 준 것도 모자라 피해를 준 이유가 오로지 '나를 위해서'라면 당연하게도 공감은커녕 욕을 먹을 수밖에..


지나고 보니, 되뇌어 생각해보니, 생각을 정리해보니.

악인에게는 '명분'이 없더라. '핑계'만 있을 뿐.

모든 행동은 개인 탐욕 때문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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