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상진 Jul 20. 2023

영화 감상과 영화 소비, 그 어디 쯤.

이나다 도요시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을 읽고

광고일을 하고 있지만, 광고가 나오면 99%는 스킵 버튼을 누른다. 


광고를 봐야 할 때는 TVCF에 들어가서 동료들이 괜찮다고 말했거나, 인기 순위가 높거나, 썸네일이 재미있는 광고들을 몰아본다. 일에 필요해서 보는 거라 중간에 끄기도 하고, 한 광고에 여러 편이 있으면 몇 개만 골라본다.


내가 일 때문에 필요해서 광고를 보는 패턴이, 내가 퇴근하고 여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넷플릭스에서 콘텐츠를 보는 패턴과 다르지 않다. 애초에 광고는 감상을 하기 위해 보는 콘텐츠가 아닌데, 넷플릭스 콘텐츠를 이렇게 보는 것이 맞는 걸까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광고 콘텐츠나 넷플릭스 콘텐츠나 이제는 같은 콘텐츠로써 똑같은 처지에 놓여있구나.




학생 때 자기소개를 하다 보면 꽤 많은 친구들이 영화감상, 음악감상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요즘 취미나, 주말에 뭐 하시는지를 물어보면 많은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본다고 말한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취미는 영화 감상일까? 넷플릭스를 보는 걸까?


술을 마시는 것과 음미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길을 걷는 것과 산책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영화를 감상하는 것과 넷플릭스를 보는 것은 영상을 본다는 행동은 같아도 보는 이유와 소비하는 영감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결국 콘텐츠 시장에도 양극화가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양극화의 기준은 "아, 괜히 시간만 버렸네"라는 말을 피하기 위한 양극화다. 


해당 양극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영화 예시는 '아바타: 물의 길'과 '범죄도시3' 인 것 같다. 


범죄도시는 책에서 이야기한 요즘 콘텐츠 소비자의 특징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만든 영화라고 생각된다. 모두가 결말을 예측할 수 있고, 어떤 장면들로 우리 머릿속 도파민을 팡팡 터뜨려 줄지 역시 알고 있다. 보는 내내 불안하지 않고, 어려워하지 않고 시원하고 통쾌하게 볼 수 있다. 새로운 영감과 베네핏을 주지는 않지만 실패하지도 않는다. 동네 자주 가는 국밥이나 떡볶이 같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바타는 책에서 콘텐츠 제작자들이 소비자들에게 원하는 감상 행동을 그대로 이끌어낸 영화다. 일단 러닝타임이 세 시간이 넘는다. 보기 전에 큰 맘을 먹고, 심신을 경건히 하기 위해 화장실을 꼭 들러야 한다. 무조건 용산 아이맥스로 봐야 한다는 후기가 도배되어 있다. 후기를 보면 사람들은 단순히 아바타의 스토리만 즐기지 않는다. 영상미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각 장면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해석한 후기들이 줄을 잇는다.


두 영화를 즐기는 방법은 다르다. 그래서 책을 기준으로 했을 때 시사하는 바도 다르다. 그런데 공통점은 둘 다 박스오피스 천만을 달성했다는 것이다.




모든 산업이 양극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현상인 것인지. 아니면 지금이 양극화로 갈 수밖에 없는 시대인지는 모르겠다. 이 양극화 딜레마는 광고 콘텐츠를 만드는 우리에게도 항상 눈엣가시인데.. 광고를 얼마나 친절하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이고, 디테일에 어디까지 리소스를 투자해야 할까 고민하게 만든다.


정답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오답은 알고 있다. 사실 나만 아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알고 있다. 어느 하나 집중하지 못하고 어정쩡하면 이도저도 안된다는 것. 미친 듯이 소비되는 콘텐츠, 상징적으로 감상하고 싶은 콘텐츠 둘 중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머리로 알아도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욕심과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람이 봐줬으면 하는 욕심에 대중적인 코드를 넣고, 이해하지 못할까 두려워 은유적인 연출 대신 직관적인 설명을 추가하니까. 


그래서 저자가 이야기 한 "광대한 세계관을 준비해 두는 겁니다."라는 이야기에 공감했다.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 사람도 즐기고 저 사람도 즐길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 '콘텐츠를 이렇게 즐기는 사람이 쉽게 웃고 넘길 수 있는 내용과, 콘텐츠를 저렇게 즐기는 사람이 심오하게 분석해 보는 재미가 있는 복합적인 구성'으로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역시도.. 머리로는 알고, 말은 쉬운데,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영감을 주는 문장들 1: 실패하고 싶지 않고, 모든 러닝타임에 쾌락이 있기를 원하는 영상 시청자들

33p: "재미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보여주지 않으면 잘되기 힘든 시대인 것 같아요.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내용을 즐기는 사람들이 줄어든 세상이거든요."


178p: 지금까지는 작품 단위로 좋고 싫음을 판단했지만 요즘은 장면 단위, 감정 단위로 좋고 싫음을 따진다. 싫은 부분은 건너뛰는 것뿐이다.


202p: 같은 영상을 반복적으로 보이는 이유에 대해 "새로운 걸 보려면 체력이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의미에서 좋아하는 장면만 반복해서 보는 것은 궁극적인 쾌락주의다.


영감을 주는 문장들 2: 영상 작품을 감상한다는 의미가 퇴색된 시대, 타겟은 누구인가. 

74p: "월정액으로 영상을 감상하는 서비스는 어떤 변화를 가져왔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작품 하나하나의 가치가 줄었다."


191p: 빨리 감기로 영상을 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작품 감상자'라는 의식이 약하다. 그럼 무엇일까? 바로 '콘텐츠 소비자'다.


241p: 앞으로 콘텐츠 제작자들은 '알아봐 주는 사람(코어팬)에게만 전달되는 양질의 작품을 성실하게 만들기' 어려워진다. 만드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늘 빨리 감기나 건너뛰기를 하는 사람들이 '주요 고객'임을 전제로 해야 한다.


252p: "광대한 세계관을 준비해 두는 겁니다. 깊이 파려면 얼마든지 깊이 팔 수 있고 그렇게 하지 않아도 게임을 즐길 수 있게요. 어떤 수준으로 그 세계를 체험할지는 플레이어의 자유예요"


*책<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중에서



trevari: https://trevar.ink/NTdtrW

instagram: https://instagram.com/sangjin_library

threads: https://www.threads.net/@sangjin_library


매거진의 이전글 유능한 기획자는 박애주의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