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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진 Dec 17. 2023

떡국을 먹어도 나이를 먹지 않는 1월 1일

이제 더 이상 나이 배송 이모티콘과 짤로 드립을 칠 수 없다니..

2023년 6월 28일.

우리도 만으로 나이를 세게 되었다.


어제 술자리에서 내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다. 여러모로 이제는 나이보다 태어난 연도를 말하는 것이 익숙하다. 89년 생이라고 말했고, 상대방은 "89년이 몇 살이죠?"로 답했다.


구체적인 나이를 물어보면 말이 길어진다.

"아 34살이요. 아 이건 만 나이고, 예전 나이로는 35살입니다. 곧 36살 되는 거죠."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도 요맘때가 되면 '새해 계획'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이것저것 생각해, 메모장에 적는다. 헬스도 끊고, 책도 사고, 취미 용품도 산다. 물론 '새해 계획'을 그대로 지킨 적은 평생에 단 한 번도 없다.


지키지 못할 것을 알지만, 꼭 새해 계획을 고민하는 시간을 갖는 편이다.


내게 있어 '새해 계획'을 세우는 행위는 내년에는 어떤 루틴으로, 얼마나 부지런하게 살아갈 것인가를 정하기 위함이라기보다, 내가 올해를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고, 어떤 것이 아쉬웠으며, 어떤 꿈과 미래를 그리며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위함에 가깝다.


이렇게 미래 계획을 세우다 보면 나이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35살이 되기 전에 꼭 얇더라도 내 책을 꼭 써야지! 그러니까 내년엔 어떤 책을 쓸지 주제를 정하고 그에 맞춰 브런치 글을 조금 부지런히 써보자!' (재작년 계획이었다..)


'광고 일을 평생 할 수는 없겠지? 50살 정도에 은퇴하면 술이나 빚으며 살란다! 그러니까 내년에는 소주 말고 다른 술도 많이 마시고, 테이스팅 노트를 쓰면서 마셔보자! 가능하다면 조주기능사를 따는 것도 좋을 것 같아!' (작년 계획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생각이 이렇게도 흐른다.

'벌써 OO살이다. 한 살 더 먹었는데, 나는 이대로 괜찮은가. 은퇴는 빨라지고, 많은 사람들이 어린 나이에 성공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 조금 더 부지런히 움직여 뭔가 해내지 못하면 안 된다.'


나의 미래를 생각하다가,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나를 올려치거나 내려친다.




지금도 유명한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광고 업계에 내려오는 꽤 유명한 광고가 하나 있다. '일본 마라톤 광고'라고 말하면 누구나 알던 광고다.


'인생은 마라톤이 아니다. 누가 결정한 코스인가? 누가 결정한 결승점인가? 어디를 달려도 좋다, 어디를 향해도 좋다. (중략) 길은 하나가 아니다, 결승점은 하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수만큼 존재한다. 모든 생명은 굉장하다. 누가 인생을 마라톤이라고 했는가?''


https://www.youtube.com/watch?v=kaKQHsUM3Po


별 것 아닐 수도 있는데, 우리는 1월 1일 나이를 먹는 것으로 인해 태어남과 동시에 조금 더 정해진 코스와 순위와 경쟁에 무의식적인 강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똑같이 한 살로 시작하여, 매해 1월 1일에 같이 나이를 먹고, 8살이 되면  초등학교를, 14살이 되면 중학교를, 17살이 되면 고등학교를 가고, 20살에 대부분이 대학 진학을 택한다. 그 과정 속에서 대부분 같은 것을 보고 배운다. 그 와중에 할 수 있는 다른 선택은 사교육, 문과/이과, 대학 학과 정도? 혹은 반항이나 자퇴라는 큰 선택을 마음먹는 것 정도다.


그동안 1살로 시작하고, 똑같이 나이를 먹는다고 자율성이나 독립성이 떨어졌을지 모르다는 것이. 만 나이로 바뀌었으니 사람들의 개인성과 독립성이 올라가지 않을까 하는 것이. 논리적 비약일지 모른다.


'이제는 나이 배송 짤을 쓸 수 없겠구나'로 시작한 생각이 어쩌다 보니 이렇게 끝나버렸다.


새해를 앞두고 센티해진 것일까.

식상한 말에 꽂혀 의미부여를 했다.

결국, 남들보다 빨리 갈 수 있는 길, 남들이 옳다고 하는 길보다.

내가 꼴리는 길로 가야 한다.


오늘을 기점으로 나는 내일부터 어떤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게 될까?

내일의 나에게 바란다. 그게 뭐든 내가 가고 싶은 길, 하고 싶을 일을 선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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