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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11. 2021

세계사 선생님

선생님은 답을 다 알까?

세계사 선생님은 똑똑했다. 

자신이 서울대를 나왔다는 사실을 3번 수업에 한 번씩은 말해주셨다. 

우리도 그분이 똑똑한 사람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었다. 


수업에 들어올 땐 항상 세계사 교과서 한권만 딱 들고 들어오셨다. 

뒷집을 진 두 손, 한 손엔 교과서를 신문처럼 반으로 접어들고 어슬렁어슬렁,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교탁 위에 책을 올려놓고 펼쳐보지도 않는다. 


늘 팔짱을 끼고 지난 시간 했던 수업 다음 내용부터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진도를 나간다.

나는 모든 것을 머릿속에 넣어놓아 교재를 볼 필요가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다부진 체격에 팔뚝이 엄청 굵고 주먹이 큰 사람이었다. 


한창 선생님 무서운 줄 모르는 고등학생 남자아이들도 세계사 선생님 시간에는 척추를 곧게 펴고 전방을 주시하고 수업을 열심히 들어야 했다. 

카리스마와 약간의 독설, 주먹의 위협 때문에 수업시간이 긴장되긴 했지만 지루하지는 않았다. 

그만큼 이야기가 풍부하고 아는 것이 많아 집중해서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세계사 이외에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 우리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셨다. 

대부분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정신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협박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서울대를 가려면 모르는 문제가 한 개도 없어야 돼. "

"뭐하고 살 건지 생각을 하고 살아야 돼. 미래는 지금과 달라."

상냥하진 않지만 맞는 말들. 


어느 날 수업시간. 

그날도 생각 없이 앉아있던 우리의 미래를 걱정하시며,

우리가 앞으로 뭘 하고 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하고 계셨다. 

"너희 다들 공부를 잘할 수는 없어. 그럼 미래에는 뭘 하고 살아야 할까. 미래는 지금과 달라. 집에 돈이 있어? 돈 조금 있는 걸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난 공부 안 하고 장사할 건데요? 슈퍼마켓 차리면 되죠? 천만에!

미래에는 대기업이 유통을 다 쥐고 있어. 동네 슈퍼에서 물건 사는 게 아니라 대기업이 모든 물류와 유통을 손에 쥐고 상권을 지배한다고."




졸업을 하고 몇 년 후 서울 변두리 우리 집 근처에도 까르푸가 들어왔다.

곧 이마트가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솟아올랐다. 

몇 정거장 단위로 홈플러스가 말뚝을 박듯이 줄줄이 들어섰다.  

동네 슈퍼들이 정말 서서히 영업을 접고 우리는 일주일에 한두 번 대형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산더미처럼 사기 시작하던 그때,

세계사 선생님이 생각났다. 


대형 마트도 힘들어하는 요즘, 느닷없이 그 선생님이 또 생각난다.


선생님은 어디서 미래를 예측하고 계실까?

선생님, 주식 지금 다 팔아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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