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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춘춘 Apr 13. 2021

뉴욕에 가자

그리운 것 중 하나

2019년 10월 어느 날.
김민식 PD의 책을 읽다가 매년 해외여행을 한다는 저자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앞으로 매년 해외여행을 한다고 쳐도 60세까지 18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구나 60세까지 매년 여행을 갈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부자가 될 가능성도 없으니, 노후에는 씀씀이를 더 아껴야 할 수도 있다.


한편, 아들은 벌써 10살이다. 앞으로 10년 후면 어른이 될 것이고, 그때는 엄마와의 여행을 '봉사' 정도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긴급히 가족회의를 열었다.
 “어느 나라에 가보고 싶어?”
 “엄마, 나, 자유의 여신상 보고 싶어.”

의외로 아들이 먼저 툭하니 의견을 냈고, 남편과 나는 서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 그래 미국 가자. 언제 가지?”


달력을 찾아보니 2020년은 5월에 황금연휴가 있었다. 창립기념일까지 겹쳐있어 9일을 붙여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은 바로 비행기표를 검색했고, 나는 ‘2020 뉴욕’이라고 크라프트 메모지에 적어 현관 옆 고리에 걸었다.


그렇게 우리는 7개월이나 남은 2020년 5월 황금연휴를 위한 뉴욕 여행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대한 서적을 미리 읽고 가면 여행이 즐거워진다. 더구나 이번엔 아이도 함께 가니 사전에 많이 알고 가고 싶어서 뉴욕에 대한 책을 열 권도 더 샀다. 아이는 뉴욕에서 먹을 베이글 사진에 종류별로 동그라미를 쳐 놓았다. 


여행 책자 부록으로 받은 지도를 벽에 붙여놓고 주말마다 가고 싶은 곳을 형광펜으로 칠하며 동선을 짰다.


심사숙고 끝에 미국 느낌이 물씬 나는 고풍스러운 호텔도 예약했다. 바깥이 환히 보이는 현대식 호텔을 예약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뉴욕에서는 왠지 짙은 색깔의 가구가 있는 호텔에서 묵고 싶었다. 뉴욕의 숙소 가격은 매우 비쌌지만 미리 예약해서 할인을 많이 받을 수 있었다. 


어느 날 시트콤 프렌즈 사진이 있는 노트를 발견한 우리는 그것을 ‘2020 뉴욕'이라고 이름 붙였다. 각자 뉴욕에서 하고 싶은 일들이 생각날 때마다 노트에 적었다. ‘뉴욕 노트’는 볼거리와 음식, 할 일들로 채워져 갔다.


‘뉴욕 여행 계좌’도 만들어 외식비를 아껴 입금을 했다. 더 모을수록 여행이 즐거워지리라.


뉴욕 여행의 꽃 뮤지컬 ‘라이온 킹’ 예매 첫날, 거의 첫 타자로 예매를 했다. 예상보다 훨씬 좋은 자리인 것을 확인하고 우리 가족은 얼싸 안기까지 했다. 유튜브로 ‘라이온 킹’ 영상을 보려다가 미리 보면 ‘스포’가 될 수 있다는 아이의 말에 영상을 껐다. 잠깐 본 영상 속의 기린과 코끼리는 어른인 나의 가슴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버스 안에 앉아 길에서 하는 공연을 보는 ‘더라이드’라는 것을 알도 되었다. 

버스가 정차할 때, 지나가던 행인인 줄 알았던 사람이 버스로 다가와 춤을 춘다. 멀쩡한 길이 갑자기 무대로 변하는 화려한 영상을 보고 또 보았다. 


여행을 준비하는 3개월이 너무 행복했다. 앞으로 4개월이나 남았지만 그동안 여행 자료를 찾는 즐거움에 지루할 것 같지 않았다.




2019년 말, 뉴스에 바이러스 기사가 자주 보였다. 

중국에 파견 나간 시누이네 가족과 올 설에는 못 볼 것 같으니 추석에 만나자는 인사를 전화로 주고받았다. 회사에서는 한 직원이 중국 출장을 다녀온 후 바로 출근한 것이 나중에 밝혀져 소란스러운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듬해 2월에 들어서자 해외여행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변에 ‘우리 여행 취소해야 할까?’ 의견을 물어보니 5월이면 한참 남았는데 무슨 소리냐며 그전에 바이러스는 정리될 것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3월, 뉴욕은 ‘코로나 19’ 최대 발병지역으로 부상했다. 뉴욕주는 주 방위군을 투입했다.


결국, 우리는 더 늦기 전에 위약금을 조금이라도 돌려받기 위해 뉴욕 예약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비행기와 숙소 비용을 일부 돌려받을 수 있었다. ‘라이온 킹’ 공연은 무기한 연기되어 전액을 환불받았다. 돈을 받으며 예매대행업체와 서로 힘을 내자는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남편과 나는 그 업체가 망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2021년 아직도 뉴욕 여행은 요원하다.

현관 옆 ‘2020 뉴욕’ 메모지 고리는 ‘마스크’를 걸어 놓는 자리가 되었다. 아직 마스크 뒤에 메모지는 걸려있다. 메모는 ‘2021 뉴욕’을 거쳐 ‘2022 뉴욕’으로 바뀌었다.


가끔 책꽂이에 아직도 가지런히 꽂혀있는 여행 책들과 ‘2022 뉴욕’ 메모를 보며 언젠가는 저 여행을 가자고 말한다.

그 숫자가 2023, 2024로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해외여행이 영원히 사라질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전 세계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이 고통이 사그라드는 쪽으로 희망을 품어본다. 

그리하여 인류가 여행이라는 행복을 잃지 않기를, 우리 가족이 또다시 벅찬 마음으로 뉴욕 여행 계획을 세울 수 있기를, 오늘도 일상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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