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놀러 다니던 오랜 동료들이 중고등학생 학부모가 되면서 아이들 공부 문제가 심심치 않게 얘기의 주제가 된다.
나라고 걱정 안 될 리가 있나.
초등학교 때는 책 읽는 습관 들이는 것, 영어를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 딱 그것만 집중하기로 했는데, 한 달 내내 수학 문제 한 개를 안 풀다가 매번 재시험을 받아오는 아들을 보고 있으면 한숨이 나오긴 한다.
자식을 공부로 닦달하지 않으려는 부모들이 무너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자유롭게 키우려는 내 욕심이 애를 망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이라고 한다.
나 역시 그런 생각이 종종 든다.
한편으로는 공부는 일종의 재능이고, 자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가 아니면 절대로 열심히 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애한테 억지로 시킨 들 효과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든다.
학교 숙제를 스스로 하는 것, 알림장에 적힌 것을 도와주지 않아도 혼자서 챙기는 것, 매일 열 줄 정도의 영어 문장을 읽고 외우는 것, 저녁에 독서를 하는 것. 본인이 좋아하는 무술학원과 미술 학원을 다니는 것.
내가 보기에 내 아이의 현재 역량은 딱 거기까지이다.
거기서 조금이라도 더 얹어주려고 하면 기존에 하던 것까지 무너진다.
수학학원을 잠시 보낸 적이 있었는데 억지로 학원을 다니게 하니까 정작 학교 숙제도 시켜야 하는 부작용이 생겨 그만두게 했던 이력이 있다.
그래도 수학시험에 늘 반타작인 것은 걱정이 되었다.
학교 공부는 학생의 의무이니 재시험은 피해보자는 생각에 얼마 전에 우리 부부는 특단의 조치로 매일 저녁 아빠와 함께 하는 수학 공부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리가 집에 와서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은 약 두 시간 남짓이다. 그동안 놀이터에 가서 30분을 놀고, 집에 돌아와서 샤워를 하고, 30분간 독서 시간을 가지면 잘 시간이 된다. 잠들기 전까지 약 30분 동안 같이 뒹굴뒹굴하며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기, 농담 따먹기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저녁에 아이와 수학 공부를 하려면 이 중 한두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
아이가 하루 종일 기다리는 놀이터 시간을 포기하는 것은 설득이 안 된다. 그래서 독서시간, 뒹굴뒹굴하는 시간을 희생해서 수학 공부를 시도했다.
놀이터에 다녀온 후 책상에 앉아 수학을 하면서 아들과 아버지의 에너지는 서서히 고갈된다. 아들은 집중하지 않고 아빠는 화를 꾹꾹 참으며 설명을 해준다. 남편이 아무리 상냥하게 설명해도 이 시간의 집안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그렇게 수학 공부가 끝나고 나면 우리 모두는 지친다. 그리고 피곤하고 힘든 상태로, 어떤 날은 조금씩 화가 난 상태로 잠자리에 들게 된다.
며칠간 해 보니 하루의 마무리가 그렇게 되는 것이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해보면 좋아질 수 있겠지만 좋아지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큰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상의 끝에 수학 공부 시간을 접기로 했다.
원래대로 놀이터에 다녀와서 씻고 거실에 모여 앉아 독서 간식을 먹으며 독서를 한다. 독서가 끝나면 내가 영어책을 한 권 읽어주고, 잠자리에 누워 아들은 좋아하는 만화책을 보고, 나도 책을 좀 읽다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정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고민이 많고 뭐가 맞는 것인지 모르겠다.
부모가 돼서 아이가 편한 대로만 두는 것이 잘하는 것인가, 좀 힘들어도 학교에서 성적을 유지할 만큼 공부를 시켜야 하는 것 아닌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번뇌가 든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드는 것, 상쾌하게 아침을 맞는 것, 엄마 아빠와 아침에 헤어지는 것이 아쉽고 저녁에 부모가 퇴근하고 오는 것이 반가운 것. 이 정도 행복감을 느끼고 살게 해주고 싶다.
이런 행복감에 적절한 공부가 포함된다면 더없이 좋겠지만 아직은 답을 못 찾겠다.
오늘 행복한 아이가 미래에도 행복하다는 생각.
그래도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미래에 힘들어질 것이라는 불안감.
하지만 학원에 가고 저녁 공부를 하는 것이 과연 이 아이가 지금 해야 할 일인가라는 의구심
지금 이 글을 쓰고 나서도 끊임없이 고민이 되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즐겁고 설레는 저녁시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