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화내는 게 아니라 내 기분을 말하는 거야. 나도 내 기분을 말하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
"왜 울어? 기분 나쁘라고 한 게 아니라 알려주려는 거야~. 힘들면 지금 하지 마. 하기 싫을 때 배워봤자 소용없어."
"이 문서 다음에 뭘 첨부해야 돼? 찾아봐. 지금.... ... 세 번째 폴더로 바로 들어가면 되잖아! 순서대로 할 필요 없다고! 시간 아깝게"
"어! 이제 잘하네~! 좀 알겠지? (웃음). 에~이 잘하면서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김대리 이렇게 잘하면서 왜 집중을 안 해~. 자 가서 커피 한잔 하자. 커피 사줄게~ 가자."
우리는 직장에서 가끔 김대리가 된다.
박과장은 뭐하나 가르쳐줄라치면 화부터 낸다.
울화가 치밀어 한마디 하고 싶지만 꾹꾹 참으며 백마디를 삼킨다.
자, 이제 김대리의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보고, 다시 한번 괄호 안의 '마음의 소리'와 함께 읽어보자.
"김대리, 이거 지난번에 가르쳐 준거잖아.
이해한 거야? 이걸 이쪽으로 대입시키라고, 알아 들었어?
알아? 몰라?"
(지난번에 한번 알려준걸 어떻게 다 기억해! 그럼 왜 배우고 있겠어? 그리고 왜 자꾸 소리를 지르는 거야 기분 나쁘게.)
"몇 번을 말해야 알아? 그럼 다음이 뭐가 와야 돼?
뭐?
뭐? 안 들려!
큰소리로 말해야 들리지!"
(아, 자꾸 소리 지르니까 정신없어서 더 생각이 안 나. 머릿속이 자꾸 하얘져. 답이 틀린 거 같으니까 큰소리로 말이 안 나가는 걸 어쩌란 말이야!)
"아~~~ 후~~~~~ (한숨을 쉬며). 그게 맞아?
김대리 진짜 왜 그래? 자꾸? 아까 말한 거랑 똑같은 거잖아.
어제도 알려줬잖아."
(내가 그렇게 한심해 보이나? 저 한숨은 나한테 실망했다는 건가? 난 진짜 답 없는 사람인가 보다. 나는 왜 이렇게 쉬운 것도 모르고, 똑같은 것도 자꾸 틀리는 걸까. 왜 어제 배운 것도 기억이 안 나는 걸까. 나는 바본가.)
"지금 하품하는 거야? 하품하면 가르쳐준 사람 기분 생각해 봤어?
나도 기분이 상해. 배우는 사람이 하품하면!
내가 화내는 게 아니라 내 기분을 말하는 거야. 나도 내 기분을 말하는 거니까 기분 나빠하지 마."
(하품이 나는 걸 어쩌라는 거야~ 이해 안 가는 걸 집중해서 듣자니 피곤해서 하품이 나는데 생리적인 현상을 어쩌라는 거야. 그리고 화내는 거 맞는구먼 뭘 아니래. 기분 나쁜데 어떻게 기분 안 나빠해. 그럼 자기는 왜 기분 나빠하는 건데.)
"왜 울어? 기분 나쁘라고 한 게 아니라 알려주려는 거야~.
힘들면 지금 하지 마. 하기 싫을 때 배워봤자 소용없어."
(아, 진짜 안 울려고 하는데 자꾸 눈물 나네. 우는 나 자신이 더 싫어서 더 눈물이 난다. 나도 지금 안 하고 싶다고! 근데 지금 하자고 한 게 누군데 그래. 내가 나중에 하자고 하면 화낼 거 같으니까 지금 하자고 한 거지 진짜 하고 싶어서 그런 줄 아나. 나도 안 배우고 싶다고!)
"이 문서 다음에 뭘 첨부해야 돼? 찾아봐. 지금...
... 세 번째 폴더로 바로 들어가면 되잖아!
순서대로 할 필요 없다고! 시간 아깝게"
(익숙하지 않은데 어떻게 자기처럼 한 번에 찾을 수 있냐고! 나도 단계별로 하다 보면 익숙해질 텐데 그걸 못 기다려주나? 자긴 첨부터 잘했어?
내가 생각할 시간을 좀 줘야지. 조금 생각하려고 하면 한숨 쉬니까 나도 집중이 안 되는 거라고!)
"어! 이제 잘하네~! 좀 알겠지? (웃음). 에~이 잘하면서 그래. 그래! 바로 그거야~!
김대리 이렇게 잘하면서 왜 집중을 안 해~. 자 가서 커피 한잔 하자. 커피 사줄게~ 가자."
(얼씨구! 화낼 땐 언제고 웃으면서 끝내고 싶은가 보지? 성질대로 해놓고 막판에 좋은 소리 하면서 웃으면 아까 일은 다 잊어버리는 줄 알아보지? 나 바보 아니라고!)
성질 나쁜 상사, 박과장이 뭔가를 가르쳐 줄때마다 위와 같이 인격 모독을 하면 어떨까.
화딱지가 나서 밤에 잠이 안 온다.
회사생활 더러워서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화가 나는 것은 잠시이고 자괴감이 들 것이다.
'내가 정말 그렇게 못난 사람인가. 나는 왜 이렇게 못하는 걸까.'
자존감이 떨어지고 만사에 자신이 없어진다.
이제,
저 위의 굴욕적인 대화의 김대리 자리에
내 아이 이름을 넣어보자.
나는 박과장이 된다.
그리고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
가끔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쳐 준다.
유달리 똘똘한 편이라고 할 수 없는, 평범한 내 아이는 한번 알려준 것을 다음번에 제깍 기억해 내지 못한다.
속이 터지고 답답해서 한대 쥐어박고 싶어 진다.
그럴 땐 쥐어박는 소리라도 한다.
'얘가 계속 이모양인 걸 보면 시험 망칠게 뻔하네' 걱정이 되니 더 화가 난다.
남은 속이 타는데 지겨워하는 기색이 역력하고 하품까지 하면 미칠 노릇이다.
자세는 점점 틀어지고 몸은 자꾸 기울어지는 것이 집중하려는 한치의 노력도 안 보인다.
울컥 화가 치밀어 참지 못하고 독설을 한번 내뱉으면 막힌 것이 터진 듯 찰나의 후련함을 느낀다.
그러다 곧 시무룩한 아이 얼굴이 보이고 눈가에 눈물이 어리면 안쓰러운 마음과 부아가 치미는 마음이 공존하여 더 괴롭다.
'내가 지가 미워서 그러는 건가. 잘되라고 그러는 거지.'
'그리고 큰 소리로 말해야 집중하니까 크게 말하는 거지. 상냥하게 얘기하면 금세 딴짓하고 장난하니까.'
나도 마음이 좋지 않으니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하지만,
아이도 사람이고 부모 자식 관계도 인간관계이다.
모욕감은 어른만 느끼는 것이 아니다.
위의 대화에서 김대리와 내 아이의 차이점은 결말 부분이다.
박과장은 성질 부린 것이 겸연쩍어 좋은 분위기로 마무리하려 들고, 이에 김대리는 버럭 더 화가 치민다.
'여태껏 진상짓을 해놓고 이제 와서 차 한잔 사주면서 앞에 일을 다 잊으라고?' 삐딱선을 탄다.
김대리는 돌아서서 속으로 쌍욕을 한번 내뱉거나 동료 정대리와 함께 소주를 마시며 박과장을 씹어대는 것으로 마음을 풀 것이다.
그러나 내 자식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는다.
사랑하는 나를 소주 한잔에 삼겹살과 같이 씹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
아이는 다시 부드러워진 부모가 반갑다.
그 전에 아무리 화를 내고 자존심을 건드려도 부모가 다시 웃으면 아이는 함께 웃어준다. 배알도 없다.
아이는 늘 나를 용서해준다.
나를 용서했다고 아이가 이 기억들을 다 잊는 것은 아니다.
아이는 어리므로, 부모를 사랑할 뿐 아니라 부모의 말이 생각의 기준이 된다.
한심해 하는 눈빛, 한숨소리, 답답해하는 말투, 고개를 좌우로 젓는 실망에 찬 행동, 차가운 표정....
독설이나 물리적 폭력이 없어도 이 모든 것들은 자식의 마음에 크고 작게 새겨져 자존감을 허문다.
부모 자식의 관계도 인간관계이므로 쌓아놓은 신뢰의 벽돌이 다하게 되면 맨바닥이 드러난다.
부모가 강하게 나올 때 아이는 부모가 의도하는 대로 말을 잘 듣는다. 이 방법은 효과가 좋으므로 부모는 점점 강해진다.
그때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뭉툭한 슬픔과 공포에 가깝다.
아이가 커가면서 이런 경험이 자주 반복되면, 그 슬픔과 공포는 분노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를 보호하고 양육하되, 아이의 감정을 부모와 동등한 인간의 감정으로 존중해야 한다.
아이도 굴욕감을 느낀다. 아이도 치사한 것을 알고, 서운해한다.
그러나 부모를 너무 사랑하므로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어, 하루 종일 화를 낸 부모가 웃는 모습만 보여도 마음의 상처를 잊고 부모를 안아준다.
그 상처가 반복되어 고칠 수 없는 흉터가 되지 않도록, 부모인 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